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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가지
영어 구사력도 신호 역할을 수행한다. 영어 시험으로 취업이나 승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곧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구분해 내기 위한 방법이다. 실제로 교육 수준이 직장 생활에 큰 기여를 할지 아니면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에 기업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을 선호한다. 직장에서 영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영어 실력을 중요하게 보고 채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능력이 이만큼이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김상택 교수의 <쉽게 배우는 경제학> 중에서)

일자리에 비해 취업 희망자가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구직자들은 ‘일자리만 주면 열심히 잘할 수 있는데’하고 불평을 하지만 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기업은 이런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보다 더 나은 사람을 뽑으려 합니다.

그런데 기업이 노동시장에서 구직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적절한 정보를 얻으려는 기업에 대해 구직자들은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그것은 쉽게 보낼 수 없는 종류여야 합니다. 그래야 차별화되겠지요. 이 때 대표적인 신호가 영어 구사력입니다.

스펜스 교수는 이 신호(signaling)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높은 교육 수준이라든가 학력 외국어실력 등이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는 신호가 된다는 이론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이유로 세계화를 듭니다. 쓸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지요. 필요가 있으니까 익혀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 점에 크게 토를 달수는 없습니다. 우리말을 어떻게 지켜내며 글로벌 시대에 동참할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화에 ‘내가 영어를 얼마나 쓰면서 산다고∙∙∙’하는 푸념을 늘어놓는 이도 있습니다.

한숨 섞인 넋두리에 현실을 직시하라며 일침을 가하는 것이 신호이론입니다. 사실 좀 노골적입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면 좋은 신호를 많이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훈계입니다. 외국어 공부 상당 부분이 특정 시험에서 높은 점수 획득을 위한 것임을 감안할 때, 신호를 보내기 위한 몸부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이는 보기에 따라서, 명품 하나쯤은 들고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천박한 수준의 인식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호 보내는 일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신호는 정보를 제공하는 유용성이 있습니다. 만약 기업이 제비뽑기로 채용이나 승진을 결정한다면 불행한 일이니까요. 다만, 신호를 보내는 일이 일방적 행위로 그치지 않고 소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신하는 편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있는 힘껏 보내는 신호를 소중하게 받고 그 안에서 대화를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신호이론에서 말하는 신호는 외국어 구사능력 ‘그 자체’입니다. 허나 경제학적 측면을 벗어나 생각한다면, 언어는 또한 표현되는 그 모습 그대로 신호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교류하는 수단입니다.

말을 익히고 배우는 일이 소통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유창함을 보여주는 데 그친다면 그것 역시 불행한 일입니다. 이 점은 우리말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배우는 경제학+ - 김상택 교수의 경제원론 첫걸음

김상택 지음, 민음인(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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