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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고등학교에서 소설을 가르친다. 정규교사는 아니고 일종의 외부강사 개념이다. 정식명칭은 보조교사란다. 어쨌거나 그 고등학교에 가면 나는 남자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담배도 태우고 토막 잠도 잔다. 가끔은 다른 교사들과 대화도 나눈다. 하루는 그 휴게실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때리겠다, 못 맞겠다고 하는 실랑이였다.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그 학생은 교칙을 어겼다. 학교 밖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는데, 그게 교장과 다른 교사들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그 학생을 때리려는 교사는 그 학생의 담임교사였다.

▲ 그림
ⓒ 강우근
선생은 처음엔 일단 엎드려라, 그리고 맞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러나 끝내 학생이 거부하자 왜 맞아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너 때문에 교장과 나를 포함한 다른 교사들은 물론 학교 이미지까지 실추됐다, 나에게는 너의 부모님을 대신해 너를 교육할 의무가 있다고. 그런데 그가 쥐고 있는 매라는 것이 당구 큐에 가까운 크기였다. 성인인 내가 봐도 섬뜩했다. 게다가 그 논리라는 것도 학생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학생은 계속 거부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선생에게 “내가 왜 맞느냐, 교칙대로 처리해달라” “선생님이 뭔데 나를 때리느냐” “엄마도 술 마신 걸 안다. 하지만 엄마도 나를 안 때렸다, 그런데 왜 선생님이 그러느냐” “요즘 시대에 누가 맞고 다니느냐”고 항변했다. 말이 좋아 항변이지 거의 대드는 격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마음 속으로 학생을 지지했으나, 나중에는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 당구 큐만한 매를 든 교사와 교사가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대드는 학생. 실랑이는 길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 교사는 학생을 때리지 못하고 교실로 돌려보냈다. 교칙으로 처리해라, 맞기 싫다, 당신이 뭔데 나를 때리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제자에게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학생이 돌아간 후 그는 담배를 태워 물었고, 뒤늦게 들어온 교사들과 요즘 학생들의 태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의 내용은 옛 시절이 좋았다, 요즘 아이들은 되바라졌다, 교사짓 못 해먹겠다, 학부모들이 더 난리다, 위에서 체벌하지 말라고 하는데 현장에서 그게 되나, 아이들은 조금 과하게 맞아도 된다, 이런 식이었다.

그때 내가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인권에 대한 우리들의 이중의식이다.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정작 현실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교사들. 그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가 아닐까.

나는 그때 그들을 비웃지 않았다. 그것은 교실로 돌아간 학생이 자신의 친구들과 나눌 대화의 내용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담탱이('담임'의 은어)를 기죽여놨다고, 자신은 쫄지 않았다고,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담탱이 따위가 자신 몸에 손대느냐고, 그랬다간 당장 경찰에 고발하거나 부모님께 알려 버릴 것이라고 후까시('폼'의 은어)를 잔뜩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그의 말에 동조하며 그를 영웅시할지도 모른다.

‘요즘 시대’ 운운하며 담탱이를 한방 먹였다고 우쭐댈 그들. 이들의 모습 또한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일 것이다. 인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그것을 몰염치한 자유로 오해하는 것.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경찰관이 무엇인가를 정당하게 지적했을 때, 오히려 경찰관을 고소하거나 민원을 넣겠다고 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소란을 떨며 동정을 구하는 사람들. 결국 경찰관은 귀찮아서 혹은 더러워서 피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한 지인이 해준 이야기이다.

“그거야, 경찰관들이 워낙 권위적이니까 하는 행동이지. 게다가 우리 나라 경찰이 어디 제대로 된 경찰이라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정말 경찰관만 탓할 수 있는 노릇인가? 그것은 어쩌면 인권에 대한 미성숙한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인권은 분명 역사적이고도 사회적인 개념이다. 전쟁과 폭력, 부조리, 고문, 강자의 약자에 대한 일방적인 폭행, 약탈과 착취.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인권은 그토록 극단적이지도 강렬하지도 않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인권유린에 대한 감각은 고통보다는 수치심에 가깝다.

이것은 법과 제도로, 또 각종 단체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것이다. 결국 그것은 우리들의 인권의식 속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권의식은 충분한가? 또 그에 대한 교육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가? 교사와 학생, 둘 중 누가 잘못한 것일까? 인권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상 속에서의 인권 문제를 접하면 착잡해지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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