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의 답변에 나선 천정배 법무부장관.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의 답변에 나선 천정배 법무부장관.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정구 교수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누굴까? '색깔론'으로 지난 재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한나라당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의든, 타의든 천정배 법무장관이 그 효과를 누린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열린우리당 한 법사위원은 대정부질문에 임하는 천 장관의 태도에 대해 "결연해 보였다"며 지휘권 발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고 인상평을 전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지시설'도 부인했다. 이 의원은 당시 노 대통령이 여당 법사위원들과 율사 출신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 회동한 내용을 전하며 "대통령이 '이왕 터진 것 밀어붙여야 되지 않겠나'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며 "그 말을 듣고 '사전조율이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휘권 행사는 천 장관의 '단독 결행'이었다는 얘기다.

대권 도전? "허허허... 욕망은 있지만"

여당의 심각한 내홍 국면에 나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는 정동영·김근태 차기주자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처지의 천 장관은 언론 접촉 빈도수를 높이며 할 말은 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차기 대권 주자로 나설 생각이 없느냐는 유도성 질문을 많이 받는다. 천 장관은 매번 "허허허" 웃으며 즉답을 피하지만 동시에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지난달 인터넷 편집국장과의 만남에선 "나도 정치인이라 나름대로 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자기 생각과 소신을 바꾸거나 왜곡할 생각은 없다"며 "주어진 일을 제대로 수행해서 정치적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천 장관은 일관되게 '욕망이 있다'는 전제를 남기면서도 법무장관직을 그 수단으로 사용하지는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해왔다.

보폭도 넓어졌다. 단지 법무부장관의 일정으로만 볼 수 없는, '대중 속' 행보가 눈에 띄게 늘었다. 강연과 인터뷰, 특히 '정치적 고향'인 광주 방문이 일례다.

지난 달 MBC <100분 토론>을 마친 이튿날, 천 장관은 광주를 방문해 이 지역 교도소를 둘러보고, 장성아카데미 강연에도 나섰다. 이런 공식일정 외에도 열린우리당 광주시당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고, 광주지역 재야인사 등이 참석한 '시니어 그룹' 모임에도 들러 여론을 청취했다.

지난 5일에는 신설 프로그램인 KBS <파워인터뷰> 첫 출연자로 나서 정치인, 장관, 아버지 등 '인간 천정배'의 다양한 면모를 보였다. 패널로 출연한 한 정신과 전문의는 천 장관의 기질·성격 검사(TCI) 결과를 내놓으며 "수줍은 발전지향가(개혁주의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동정·연민의 감정이 많으면서도 개혁, 발전을 위한 충동성이 높은 매우 상반된 기질이 공존한다는 평가였다.

'노무현 정치'로부터 홀로서기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 참석해 수첩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있다.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 참석해 수첩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독자성'을 강조하고 나선 대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른바 '천·신·정'으로 불리는 정동영 장관, 신기남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 천 장관은 "나는'천'일 뿐, '신정'은 모르겠다"(<뉴스메이커> 인터뷰)고 말해 사실상 해체를 암시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첫 포문을 여는 등 '이심전심'이란 말에 빗대 '노심천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적 분신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정작 천 장관은 원칙주의자라는 점에선 닮았지만 성격과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천 장관은 "다른 점이 많지만 대통령 후보로 옹립하고, 이후에도 떠받들어야 할 분이어서 함부로 대들지 못했다"며 "사실 좀 제가 성질을 죽였다"고 말하며 웃음을 섞었다.(KBS <파워인터뷰>)

실제로 노 대통령과 천 장관은 모종의 '길항 관계'에 있어왔다. 특히 작년 국가보안법 처리와 관련 '엇박자'는 대표적 사례. 당시 천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의원총회에 부쳐 공론화할 작정이었으나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의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바람에 대야협상에 곤란을 겪었다.

국보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를 거둬들인 것도 노 대통령이었다. 작년 연말 노 대통령은 4대법안 처리와 관련 '속도조절'을 주문해 원내대표단을 당혹케 했다. 따라서 '당론변경'의 역풍은 고스란히 원내대표의 몫으로 돌아왔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처리 유보도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천 장관측의 불만이다.

이 같은 긴장 기류에는 청와대 386 참모들과 천 장관이 '개국공신'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경쟁관계를 유지해온 점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주변 측근들은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 '홀로서기'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이고 있다.

복귀시기? 법무장관 '숙제' 푼 뒤

참모진의 행보도 분주하다. 이미 대권 행보를 전제한 여러 '기획'들을 준비하는 눈치다. 일단 이번 지휘권 파문으로 지지층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판단, 다음 행보는 저변 확대로 보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무능한 개혁세력'으로 비춰지는 점을 들어 "유능한 개혁세력의 리더"라는 컨셉트를 염두하고 있다.

한 측근은 천 장관이 "주류의 이력으로 비주류의 인생을 살아왔다"는 점, 또한 "여당의 차기주자들 중에 호남을 대변하는 인물이 선명치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지지세력과 외연확대를 동시에 꾀할 수 있다고 봤다.

정동영·김근태 두 차기주자의 복귀 시기와 관련, 당내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천 장관측은 일단 내년 초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수사지휘권 문제로 천 장관과 갈등 양상을 빚었던 검찰 내부에서도 "내년 7월께까지는 낮은 포복으로 가자"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그 때쯤이면 한나라당의 차기 주자들도 대거 당에 복귀해 본격적으로 대권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천 장관측은 "법무부를 한 단계 발전시킬만한 충분한 시간과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등 개혁 난제들이 숙제처럼 남아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