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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학교 주변의 너른 들판은 거의 비었습니다. 학교 뒤 미타산에도 알록달록한 단풍이 물들어 운동장에서 바라보면 더욱 멋진데, 학교 안의 나무들은 낙엽을 연방 떨구어 몸을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입동 지나 겨울을 대비하고 있는 자연은 한 해의 마감을 재촉하는 듯합니다.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는 마치 낙엽을 떨어내며 생각에 잠긴 나무처럼 내면으로 들어가 서성대고 있습니다. 대안학교 8년! 우리는 잘 살아온 것인가? 원경고등학교의 대안은 과연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 그리고 그 대안은 누구에게 필요한 것인가? 그 대안은 제도의 대안인가, 가치의 대안인가? 이런 질문들을 되뇌면서 말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현실적인 장벽에 봉착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98년 제도권 교육의 획일 교육과 지식 위주 입시 교육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다른 측면의 기준을 가지고 교육하고자 출범했던 여섯 개 대안학교 중의 한 학교로서 자부심은 높았지만, 정작 학생들과 학부모의 자부심은 높지 않았고, 대안학교 하면 응당 갈 데 없는 학생들이 겨우 찾아오는 곳쯤으로 여기는 주변의 인식, 그리고 신입생 모집의 어려움이 그것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도대체 교장, 교감 선생님은 한 없이 성실하고 따뜻하며 열심히 사시는 분이고, 함께 살고 있는 교사들 역시 따뜻한 마음씨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초창기의 그 어려움을 돌파하면서, 불철주야 노력했는데, 왜 그럴까?

게다가 매우 잘 되는 대안학교도 많은데,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어 골라서 뽑다보니 우수한 아이들과 우수한(?) 학부모들로 채워져서, 이제는 정말 들어가기 힘든 대안학교도 있는데, '부적응'이라는 귀찮은 딱지를 떼버리고 소위 '괜찮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양성 교육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선호도가 높아지는 대안학교도 있는데, 우리가 가는 길은 아직도 이렇게 힘든 길이라니!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형태의 대안학교 양극화 현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렇다면 우리가 틀린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없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타개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3년 전부터 선생님들은 학교발전위원회와 교육과정위원회를 설치하여 활동하였고, 올해는 대안학교의 정체성과 방향을 고민하는 연구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토론하고 학습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원경고등학교는 11월 8일에, 10년 전인 1995년부터 자본과 기업의 논리대로만 교육이 종속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을 우려하며 교육적 논리와 교육적 대안을 찾고자 대안교육 모임을 시작하고 이끌어왔던 성공회대학교 고병헌 교수를 초청하여 원경고등학교 교사들의 고민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세 시간이 넘도록 강연과 토론이 뜨겁게 이어졌고, 원경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한 순간이라도 놓칠세라 미동도 하지 않는 집중으로 함께 고민하고 웃고 아파하며 호흡을 주고받았습니다. 비록 단위 학교 17명의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촐한 강연이었지만 대안학교 교사들의 내적인 고민과 강연자의 애정이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병헌 교수는 특히 대안학교에서 대안교육을 한다면서도 자기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교사와 학교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는 참으로 경계할 일이며, "우리가 가르치는 모든 지식과 체험들은 '가슴의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 "교사는 표정 하나에도 그 교사의 가치를 쏟아낸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교사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르치는 사람임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아울러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 사회를 정확하게 전망하면서 그 아이들이 그 미래 사회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소양과 자질을 기르게 하는 교육을 대안학교에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미래 사회에 대한 매우 깊이 있는 전망들을 내놓아 선생님들로 하여금 교육이 무엇에 복무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한국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입시 교육'이 아니라 '철학'이 없는 것이며, 더 큰 문제는 '꿈과 이상'의 상실로 진단하면서 대안학교의 대안교육은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과 철학이 있는 상상력으로 아이들에게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자고 하는 고병헌 교수의 설득에 원경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대안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고병헌 교수는 강연 후에 총총히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원경고등학교엔 원경고등학교 교사들이 남았습니다. 아니 아이들도 뛰어놀았습니다. 또한 '어떻게?'하란 말이냐는 질문에 "답은 없습니다.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 경험을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답변도 귀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무리 속에 아늑해지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금언 같은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이제 다시 웅크려야 하겠습니다. 만물은 겨울에 자라고 밤에 성장한다고 하였습니까? 더 느리게, 더 작게, 더 낮게 가면서 각축과 주류의 톱니바퀴에서 몸을 빼내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다시 기회로 돌려 나가기 위해 많이 버리고 몸을 가볍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연대와 협동, 따뜻한 철학과 맑은 정성으로 교육을 감동으로 되돌리기 위한 새로운 걸음을 다시 내디뎌야 하겠습니다.

▲ 함께 해서 행복한 대안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 정일관

덧붙이는 글 | 고병헌 교수를 모시고 대안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기사를 올리려는데, 교원평가 문제로 온통 떠들썩합니다. 마치 평가를 받기 싫어서 반대하는 것처럼 여론 몰이를 하면서 강행하려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곳곳에서 '물어뜯기'식 상처내기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 모두의 손해입니다. 정녕 강행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강행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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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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