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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식

바람의 언덕을 지나는 길에는 억새 무더기가 새하얀 그리움을 실어 나르는 중이다. 깊어가는 가을도 잊어버린 듯하다. 이 녀석은 언제나 들 뜬 마음을 바로 잡아 주는 능력이 있다.

한 계절을 지배하고 있는 억새가 발목을 붙잡지 않았다면 손해가 클 뻔 했다. 제주 4.3평화공원 옆에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아스라한 추억을 만났다. 양지바른 언덕에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억새와 어울리고 있었다. 보리수나무를 제주에서는 '볼래낭'이라 부른다.

어린 시절, 들에 나가면 늘 반겨주던 볼래낭 열매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반갑다. 시골 생활에 대한 향수가 볼래낭에 맺혀 있어서일까. 들과 산으로 쏘다니며 잘 읽은 열매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새롭다. 산열매를 따다가 누이에게 나눠 주던 추억이 묻어 있기도 하다.

ⓒ 김동식

그 맛도 달콤하고 새콤하다. 떫은 맛도 적다. 설령 입맛이 바뀐들 고향의 맛이 어디 가랴. 함께 뛰놀던 동무들의 정다운 얼굴들이 볼래낭에 걸리고, 뿔뿔이 흩어진 고향식구들의 온정이 이 작은 열매에 머무는 것을 어찌하랴.

ⓒ 김동식

ⓒ 김동식

보리수나무에는 잘못 알려진 이야기가 많다. 슈베르트의 가곡에 등장하는 성문 앞 샘물 곁에 서있는 보리수, 아니면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 토종 보리수나무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 김동식

가곡의 린덴바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불교의 보리수와 혼동하여 잘못 옮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수나무가 자랄 수 없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도를 깨친 인도 보리수가 우리나라에서는 추워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불교신자들이 대용 나무가 필요하여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피나무(달피나무)나 보리자나무를 '보리수'란 이름을 붙여 널리 심었다고도 한다.

보리수나무를 부르는 이름도 많다. 지방에 따라서 보리똥나무, 뻐루똥나무, 보리화주나무, 볼레나무로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호퇴목(虎頹木)이라고 하고 그 열매를 호퇴자(胡頹子)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호랑이를 물리치는 나무라는 뜻이다. 잔가지와 열매에 호랑이 무늬와 닮은 얼룩점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것 같다.

비슷한 나무로 보리장나무, 보리밥나무, 뜰보리수(왕보리수)나무가 있다. 가을에 열매가 작고 둥그스레하게 열리는 나무가 진짜 보리수나무다. 봄에 열매가 크고 타원형으로 열리는 나무는 보리장나무 또는 보리밥나무이며, 제주에서는 이를 보리볼래낭이라 부른다.

ⓒ 김동식

동물이나 식물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우리 이름을 붙여 자연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쏟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볼래낭에 쏟아지는 햇살만큼 추억의 나무에 그리움이 뭉클하다.

ⓒ 김동식

덧붙이는 글 | 김동식 기자는 제주 서귀포시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서귀포감귤박물관에서 마케팅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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