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볶은 깨 | | ⓒ 김영진 | 감기가 너무 심해 나흘을 끙끙대다 겨우 일어났다. 그동안 못 먹어서인지 다리에 힘이 없어 걷기도 힘들 지경이다.
마침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엄마가 "지금 네 집에 가려고" 하신다. 어제까지 꼼짝 못했다는 말을 듣고 걱정스러워 길을 나서신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엄마! 거기서 무조건 ○○ 버스 타고 응암동에서 내리세요. 내가 나갈 테니…."
옷을 입고 나갈 차비를 했다. 기운이 없어 천천히 걷다 보니, 엄마는 벌써 버스에서 내려 앉아계신다. 막내딸이 아프다고, 가지고 오신 보따리를 한사코 직접 들고 가신다.
집에 와서 풀어보니, 옛날 할머니께서 자주 끓여주시던 깨죽 재료였다. "그저 아플 때는 잘 먹어야 하는데…." 하시며 주섬주섬 꺼내신다.
| | ▲ 엄마가 가지고 오신 찹쌀 | | ⓒ 김영진 | | 검은깨를 볶아 물과 함께 믹서에 간다.
시골에서 가지고 온 찹쌀이라 좋다며 들고 오셨다. 찹쌀이라면 서울에서도 쉽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검은깨도 직접 볶아 불린 찹쌀과 함께 믹서에 갈아 죽을 끓인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 부엌이 아니라 그런지 영 뭐가 안 잡힌다" 하면서 막 끓여낸 깨죽 한 그릇을 내놓으신다. 찹쌀과 검은깨를 걸쭉하게 갈아서 그런지 맛이 그만이었다. 죽 한 그릇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비우고 말았다. 엄마도 아주 흐뭇하신 눈치다.
| | ▲ 완성 된 깨죽 | | ⓒ 김영진 | | 오랜만에 엄마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저녁 무렵이 됐다. 엄마가 고생하신 것을 어떻게 보상해 드릴까 하다가 내 핑계를 대기로 했다.
"엄마, 며칠 동안 못 먹어 그런지 기운이 없네. 고기라도 먹을까 봐요."
엄마를 모시고 딸아이와 함께 시장을 보자며 나섰다. 얼마 전 딸아이와 갔었던 삼겹살집으로 가기로 했다.
| | ▲ 삼겹살이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모습 | | ⓒ 김영진 | | 3만 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엄마를 모시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앞으로 엄마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진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아직 친정 엄마가 살아계셔서 이렇게 엄마의 맛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겠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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