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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모처럼 아빠노릇 좀 하고 난 뒤 아이목욕까지 말끔하게 시키고 나서는 차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슬그머니 아내가 아이 학급의 학부모 모임에서 보냈다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내용인즉슨-정확한 단어는 아니지만- '매번 같은 사람들이 교실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예외 없이 모든 학부모들이 순번으로 돌아가며 교실청소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과 '설사 맞벌이라 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조퇴를 해서 교실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무시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학교 홈페이지 학급 란에 버젓이 그 주에 교실청소를 하신 학부모들의 명단이 올라있는 것을 보며 나와 아내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우리부부는 맞벌이다. 1998년 11월에 올라와 가진 것 없이 출발한 서울살이가 7년이 넘어간다. 그 때부터 우리는 쭉 맞벌이였다.

맞벌이 부부에게 "학교 청소 하라" 할 때

경제력이 없으면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여간 고단하지 않다. 맨 주먹 붉은 피로 시작한 이상만으로 그런 경제력을 만들기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일하는 것 말고 나나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주어야 하는 살이 닿는 교감마저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을 대부분 엄마와 떨어져 보내야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참기 힘든 고역이다.

▲ 인터넷 게임은 엄마와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기 전까지 아이의 유일한 친구다
ⓒ 김지영
서울살이 탓에 아이는 생후 두 달을 갓 넘기면서부터 지금까지 휴일을 뺀 평일에는 유아원과 유치원과 방과 후 학원, 그리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보내야했다. 그래서 항상 아이에게 미안하다. 늦은 시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이의 잠든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면 짠하다는 생각에 울컥할 때가 많다.

내 아이는 아주 어릴 때는 처형이 키웠다. 유아원을 다니면서는 형편이 조금 나아져 한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자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고 학교에 들어간 올해 무렵에는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에서 살아가려니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아이는 서서히 혼자 지내는 법을 터득하고 있지만 그 혼자 지내는 법이란 것이 이 살기등등한 서울에서 집 밖 활동일 수는 없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흥미진진하고, 시간을 훌쩍 보내기에 아주 유용한 디지털 문명에 길들여졌고 TV리모컨과 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져 버렸다.

어릴 적부터 혼자 지낸 아들

과거 내가 어렸을 때 향유한 동네 놀이문화를 지금에 와서 아이에게 원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란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이가 자연 속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고 싸우고 울고 웃고 할 수 있는 길이 과연 없을까를 상상해보곤 했다.

알다시피 요즘 아이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땅이 아닌 공장에서 나오는 음식을 주로 먹고, 뛰어 놀 공간이 없어 TV나 컴퓨터에 매달리고, 어른과 마찬가지로 자정을 넘겨서야 자고….

이런 생활이 아이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최근 많은 연구발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때 이른 성인병은 공장에서 나오는 음식과 관계있고, 일부 아이들의 난폭한 성격은 먹을거리와 함께 협동놀이 부재에 그 원인이 있으며, 늦게 자는 생활은 아이들 성장 호르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김지영
물론, 돈이 있으면 좀더 나은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주고 체험하게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 나나 아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이는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도 든다. 얼마 전 혼자 살다 개에 물려 죽은 아이의 뉴스를 들었을 때 그 불쌍한 아이의 불쌍한 가정환경이 특별하게만 여겨지지 않은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아이가 작년에 학교에 들어가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나의 이런 고민은 더 심해졌다. 아이를 계속 이런 환경에서 키워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부부는 결정했다. 서울생활을 접기로.

결국 서울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정하다

나는 곧바로 경상도 지리산 자락 언저리의 어느 '교육생태공동체 마을'에 입주 예약 신청을 했다. 물론 그 곳에서는 이곳보다 훨씬 여의치 못한 경제 활동들을 해나가야 하지만 나와 아내가 지금 벌고 있는 수백만 원의 물리적 총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삶의 질이 돈에서 시작하여 돈으로만 끝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도시에서의 생활은 끊임없이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단지 편리한 것 말고 얼마나 더 많은 유용한 것들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작 그 편리함과 화려함을 얻기 위해 아이의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할 수 없다고 난 생각했다.

아내는 내년 9월이면 그 곳 마을로 아이와 함께 내려간다. 나는 그 후로도 몇 가지 정리할 문제들을 해결한 뒤 뒤따라 내려갈 계획이다.

내년 9월이 되면 아이는 청명한 공기와 아침 이슬에 젖은 흙길을 밟으며 마을을 벗어나 산 위에 아담하게 서 있는 마을학교(대안학교)로 등교하였다가 텃밭을 가꾸고 짐승들을 먹이느라 땀 냄새 밴 엄마의 건강한 웃음을 상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입주할 생태마을 부지 전경
저녁이면 마을 안 야외 공연장에 마을 사람들이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가지고 나와 이동 스크린에 비친 영화를 관람하거나 마을 학교 아이들로 구성된 브라스밴드의 공연을 감상하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아이가 엄마가 직접 연주하는 사물놀이 공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소비할 것도 마땅히 소비할 곳도 없는 마을 안에서 아내와 아이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가난하지만 소박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진정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들을 만들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뭐 먹고 살 거냐고 묻는다면…

이런 내 생각을 듣고 나면 주위 사람들은 대개 "대체 뭐 먹고 살 건데?"하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받고 보면 나는 미안할 정도로 할 말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먹고사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 생활비라야 아이 학비와 약간의 문화비를 빼면 근심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월 1백만 원이 조금 넘어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런 일을, 가능하면 마을 안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거나 아니면 가까운 도시에서 할 작정이다.

이 시대의 맞벌이 부부들이 반드시 나와 같은 전철을 밟아 달라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인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한 번쯤은 자문해 봤으면 한다.

물론 지금도 아이는 시골로 내려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비데와 만화영화 채널과 인터넷 오락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듣고 나와 아내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정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고 또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행복하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안타까운 사람이 되어선 안 되겠다. 가능하면 행복하기 위한 삶보다는 아예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응당 지금의 모습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의 인생도 어쨌든 그러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들이 해주어야 할 대단히 중요하고 절박한 몫이라는 것이다. 어떤 부모를 만났든 아이들은 제발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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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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