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고국 방문일정을 마치고 24일 한국을 떠나는 로버트 김씨가 출국에 앞서 자신과 '이스라엘 스파이' 조나단 폴라드를 비교하지 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김씨가 입국 당시 "나는 스파이가 아니다"하고 강조했던 것을 재확인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텍사스 주 출신의 조나단 폴라드는 1979년 미 해군 정보국(ONI)에 입사한 후 1984년부터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접촉해 4만 달러의 대가를 받고 미국의 첩보위성이 촬영한 중동지역 군사시설 극비사진 등 1000여 건의 국가기밀을 넘긴 스파이.
로버트 김씨는 지난 20일 강남 교보문고에서 자신의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한길사 刊) 출판기념회와 사인회를 마친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와 조나단 폴라드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조나단 폴라드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같은 미 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던 로버트 김씨는 96년 백동일 해군무관에게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서 폴라드가 연상되거나 자신이 곤란한 지경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가에 대해 "전혀 그런 위험성 같은 걸 느끼지 않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로버트 김씨는 자신의 사건 이후 2003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석재현 교수 중국 억류사건, 김선일씨 피살 사건 등 재외 한국인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국가 간 이해관계를 포함한 방법적 측면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 정부가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건 내용을 조속히 판단한 후 조처한다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귀국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재판이 끝날 때까지 백동일 대령을 귀국시키지 않고 협조했더라면 형량이 그렇게 길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당당한 대처가 아쉬웠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날 자리를 같이한 백동일 예비역 대령도 제2, 제3의 해외동포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의 내실을 키우고 국력을 신장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대령은 "우리보다 힘이 약하다면 모를까 이해관계가 닿아 있는 강대국과의 문제는 우리가 앞설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로버트 김 사건을 둘러싼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상호 우호증진을 위해서라도 로버트 김에 내려진 가혹한 처벌은 지나치다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했는데, 거대국가 미국과의 관계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
백 대령은 "비록 그런 관계라 할지라도 인권에 관한 문제기에 국가가 더 신경 쓰고, 관심을 표명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로버트 김씨는 이 밖에도 "앞으로 인터넷 '로버트 김의 편지'를 통해 매주 여러 분과 만나겠다"면서 "이 공간에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며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잘 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간 고국에 머물면서 여러분께 받은 환대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여러분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 "저는 금강산에 갈 수 없습니다" | | | 독자들과 만난 로버트 김 | | | |
| | | ▲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로버트 김씨. | ⓒ김범태 | 로버트 김씨 부부는 이날 연 '뒤늦은' 출판기념회와 사인회를 끝으로 10년 만에 찾은 고국 공식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로버트 김씨는 이날 이벤트 홀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독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며 국민사랑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
수감생활 당시를 회고하며 간간이 일화를 섞어 강연한 로버트 김씨는 "지금도 후회는 없다"고 말하고 "앞으로 희망을 갖고 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어디에도 한민족과 같은 이런 사랑은 없다"면서 "친정이라는 게 무언지 다시 한번 느꼈다"는 말로 자신을 따스하게 맞아준 고국의 인정에 고마워했다.
로버트 김씨는 특히 "나라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던 중 사고가 났다 하여 그의 장래를 막아버린 당시 한국 정부가 좋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분은 오히려 특진이 되었어야 했다"고 자의반 타의반 예편해야 했던 백동일 전 대령의 처지를 마음 아파했다.
김씨는 입국 당시 인천공항에서 제일 먼저 백 대령과 포옹한 것은 "그에 대한 나의 칭찬과 찬사가 진심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한 시민은 로버트 김씨 부부의 금강산관광을 제의해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김씨는 "초대는 감사하지만 나는 북한의 기밀을 남한에 넘겨준 사람이기에 갈 수 없는 처지"라며 "마음만 받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 110쪽에 따르면 로버트 김 사건이 터진 직후 북한의 중앙방송은 "남괴뢰 대사 백동일과 천인공노할 스파이 로버트 김이 북조선 인민에게 위협을 가할 행동을 하여" 등의 내용으로 방송을 했다고 한다.
로버트 김씨는 이와 함께 "대중교통도 잘 발달되어 있는데 나홀로 차량이 거리를 누비는 것은 문제"라며 "사람들의 소비가 너무 커졌다"고 걱정했다.
그는 "낭비를 조금만 줄이면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붕이라도 얹어 줄 수 있고, 결식아동들에게 세끼 밥이라도 지어 줄 수 있다"며 "낭비하는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범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