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자유의 몸으로 고국을 찾은 로버트 김씨와 부인 장명희씨가 19일간의 방문 일정을 마치고 24일 대항항공 KE093편을 이용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로버트 김씨는 이날 출국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친정에 왔다가는 딸의 마음"이라며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크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한다, 조국의 인정과 사랑을 느끼고 간다"고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국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씨는 "돼지저금통을 깨뜨려 후원금을 보내준 초등학생이나 가두모금에서 구겨진 지폐를 성금함에 넣어준 할머니 등 그간 만나뵙고 싶었던 분들을 일일이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다음에는 꼭 만나고 싶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부인 장명희씨도 "국민 여러분의 사랑에 또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정도"라며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실망을 끼치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고 인사했다.
로버트 김씨는 이번 방문기간 중 가장 의미 깊었던 일로 익산 영모묘원에 안치된 부모의 묘소를 참배한 것을 꼽았다. 김씨는 "자식의 도리를 늦게 하게 되어 죄송하지만, 묘소를 보고 가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얼마 전 시작한 '로버트 김의 편지'를 통해 여러분과 대화를 할 수 있길 바란다"며 당분간 이 일에 전념할 뜻임을 내비쳤다.
그간 물밑에서 논의가 오가던 청소년 재단 설립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방향은 잡혀가는 것 같지만,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계획은 미국에 돌아가서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며 아직은 뚜렷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백동일 대령에게는 "며칠 동안 함께 있으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해소하고 앞으로 그의 나아가는 길에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한다"고 축원했다.
배웅 나온 백 대령은 "오랜 시간 모시고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 "고국에서 느끼고 생각하신 것들이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는 선생님의 여생에 활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가족과 후견인회 회원 등 환송객들의 배웅 속에 출국장을 빠져 나간 로버트 김씨는 역사가 자신을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 개인으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으며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로버트 김씨는 이번 방한 기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를 찾아 면담하고, 고향인 여수를 찾아 문중시제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또 각종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 모교인 한양대와 연세대 등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특강 무대에 올라 가정교육과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 | | 로버트 김씨 부부 출국장 표정 스케치 | | | |
| | | ▲ 로버트 김씨와 배웅 나온 후견인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백한승 | 이날 로버트 김씨 부부의 출국장에는 사건의 또다른 당사자인 백동일 전 주미대사관 해군 무관을 비롯, 박성현 로버트 김 후견회장,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를 대필한 김두남 작가 등 가족과 지인들이 자리를 같이해 이들을 배웅했다.
오랫동안 로버트 김씨와 교분을 쌓아온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은 "정부가 외면했던 사건을 국민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원해 동포애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이 사건이 조국에 기여하는 흙과 거름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동생 형곤씨는 "무엇보다 건강하게 다녀가서 다행"이라며 "내년 1월 캐나다에서 있을 아들의 결혼식에 형님이 자유의 몸으로 참석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웃어 보였다.
로버트 김 후견회 박성현 회장은 "한국에서도 안정적 노후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 로버트 김 부부에게는 아무런 생계대책이 없어서 걱정"이라며 "후견인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선생님을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김씨와 학창시절 친구이자 40년만에 만나 회포를 푼 박희종씨는 "앞으로도 한국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특히 본인이 청소년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만큼 그 일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웅진 전 로버트 김 후원회장은 "한 시대의 한 사안이 본인의 양보와 이해로 마무리되는 시점"이라며 "이것이 끝이 아닌, 앞으로도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시는 첫 걸음이 되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