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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문화행사 홍보사이트 '이벤트가이드'에 실린 관객 일제 스쿠트케비차의 공개서한 캡처.
라트비아 문화행사 홍보사이트 '이벤트가이드'에 실린 관객 일제 스쿠트케비차의 공개서한 캡처.
공연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라트비아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공연에 다녀온 사람들은 인터넷에 항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제 스쿠트케비차(Ilze Skutkēviča)라는 여성 관객은 공연 직후 라트비아 문화행사홍보 인터넷 사이트 '이벤트가이드(Eventguide)'에 항의서한을 올렸다.

"그 행사는 이전에 홍보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 공연이었다. 그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관객들은 불쾌한 기분으로 비웃고 화를 내며 욕을 하며 공연장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기당하고 속은 기분이며, 자칭 연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라트비아 최대의 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면서, 관객들이 그런 속물적이고 저질적인 공연을 대충 보고 넘어가리라는 상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라트비아 군대창설일인 11월 11일 라츠플레시스의 날과 11월 18일 라트비아 공화국선포일 사이에 정확히 위치한 14일 공연에 소련을 찬양하는 노래를 삽입하는 것이 좋은지 한번도 조언을 받은 적이 없단 말인가?"

일제는 자신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밝히며 연출자의 답변을 요구했다. 친구에게 생일축하 선물로 티켓을 구입했다는 '일바(Ilva)'라는 네티즌은 "티켓을 구입한 게 후회되고 친구에게 부끄럽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상당수의 관객들은 공연티켓 환불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연 1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연출자나 가수의 사과문은 올라오지 않은 상태다.

발트3국 내의 러시아인과 비러시아인

라트비아 내 러시아인들의 연합집단인 슈탑(SHTAB)의 홈페이지. 슈탑은 라트비아의 대러시아 정책 반대 및 라트비아 학교에서 러시아어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반대운동을 진행 중이다.
라트비아 내 러시아인들의 연합집단인 슈탑(SHTAB)의 홈페이지. 슈탑은 라트비아의 대러시아 정책 반대 및 라트비아 학교에서 러시아어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반대운동을 진행 중이다.
만약 그 탱고 연주회 자리에서 미국이나 영국, 일본을 찬양하는 노래가 연주되었어도 라트비아 국민들이 그리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까.

현재 라트비아 전체에서 러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0% 정도다. 그러나 주요 도시에서는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수도 리가의 경우 러시아인 비율이 60%에 달하며, 제2의 도시 다우가우필스에서는 80%에 달해 정작 라트비아 인들이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버렸다.

발트3국 전반에 걸쳐서 러시아인들과의 문제는 비교적 심각하다. 그러나 러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10% 미만을 차지하는 리투아니아나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지만 대부분 공업지대에 살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경우는 라트비아보다 문제의 심각성이 훨씬 덜하다.

제2차 대전 이후 소련공화국 하에 놓여지게 된 라트비아는 공산당 주도하에 급격한 공업화와 산업화를 이뤘다. 세계 최초의 소형카메라인 미녹스 카메라가 2차대전 발발 전까지 리가에서 개발, 생산됐던 점을 보면 라트비아의 공업기술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슈탑에서 제작한 뮤직비디오 'Reforma Net'(러시아어로 "개혁은 안 돼!")의 장면들. 이 뮤직비디오는 러시아 청소년들의 반교육개혁법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으로, 라트비아 정부와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꼬고 있다.
슈탑에서 제작한 뮤직비디오 'Reforma Net'(러시아어로 "개혁은 안 돼!")의 장면들. 이 뮤직비디오는 러시아 청소년들의 반교육개혁법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으로, 라트비아 정부와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꼬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련의 지배를 거부한 라트비아인 상당수가 시베리아로 끌려가거나 라트비아를 탈출했다. 이어 1960년부터는 러시아인들의 라트비아 집단이주가 시작돼 2차 대전 종전 후 75%에 이르던 라트비아 인구비율은 1989년 51.8%로 급격히 떨어졌다.

1991년, 라트비아를 비롯한 발트3국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이뤘으나 러시아 인들은 라트비아를 떠나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이 라트비아에 살기 위해서는 라트비아어를 배우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민권을 취득해야 했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라트비아의 유럽연합 가입 이후 라트비아 시민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러시아인들의 수가 몇 배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260만 라트비아 총인구 중 26%에 이르는 64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비시민자로 분류되어 있다.

진정한 라트비아 독립국이 되려면

그러나 구소련으로부터 지배받던 시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라트비아 인들의 이런 조치에 러시아는 오히려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시민권을 따기 위해 치러야 하는 라트비아어와 역사시험이 러시아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것이라며 라트비아를 공공연히 국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라트비아에 대해 무역금지 조치까지 취한 바 있다.

2004년, 라트비아 정부가 라트비아 내의 모든 학교에서 전체 과목의 60% 이상을 필수적으로 라트비아어로 실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라트비아에 사는 러시아계는 물론이거니와 크렘린에서까지 나서서 러시아 소수민족의 탄압이라며 언짢은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또 각종 국제회의에서 체첸과 같은 러시아 소수민족의 인권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러시아 정부는 라트비아 내에 존재하는 러시아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이 해결되지 않으면 논의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라트비아 내에서 활동하는 러시아인 단체는 라트비아 내 러시아 소수민족의 문제를 전 세계로 공론화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를 열고 있다.

라트비아 정부가 내놓은 대 러시아인 대책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라트비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교직원들이 대부분인 러시아 학교에서 60% 이상을 라트비아어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재 라트비아에 남아있는 러시아인들 중에는 소련에 반대하여 라트비아의 이름으로 그들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 싸운 이들도 있어 반발이 커지고 있다. 그들은 라트비아가 독립을 하게 되면 라트비아 시민권을 자동적으로 획득할 것으로 희망했으나 라트비아 정부가 자신들을 다른 러시아인들과 똑같이 취급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14일 발생한 오페라하우스 사건은 유럽연합의 새로운 일원으로 새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는 라트비아 앞에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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