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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울이가 이청준의 <눈길>을 읽고 등장인물 '나'에게 쓰는 편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정한울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주제 넘게 나마 당신을 책 속에서 만나 느꼈던 점, 당신께 충고 드리고 싶은 점이 있기에 이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당신에게 여쭤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단지 빚이 진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면 '나 몰라라' 하면 그만인 그런 관계입니까? 저는 적어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 아끼며 사랑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식이라면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그런 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노인'이라 부르며, 원망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돌아가신 형님을 대신 하여 장남으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했다는 것일 테지요. 하지만 당신은 앞으로도 어머니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습니다.

어머니는 수 개월 동안 고생하신 끝에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며, 당신을 뒷바라지 해주며 몇 십 년을 고생만 하신 그런 자랑스러우신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집을 다시 지으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으신데 그것을 들은 척이라도 못할망정 정작 자신은 빚 진 것이 없다며 외면하는 당신을 바라보며 저는 화가 났습니다.

▲ 눈길 책표지
ⓒ 문학과지성사
당신은 아직도 어머니가 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당신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해 주셨던 그날을 기억하실 테지요. 그리고 어머니와 같이 걸어갔었던 눈길도 말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팔린 집을 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잠시 빌렸고 당신 앞에서는 걱정이라도 할까봐 아무 내색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당신을 보내는 것이 아쉬워 어머니는 당신과 같이 그 추운 바람을 뚫으며 눈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깊은 잠에 빠진 척하였지만, 새벽에 아내와 어머니가 나누던 그 대화를 들었겠지요. 어머니는 눈길을 되돌아오면서 당신과 나란히 걸었던 눈길의 발자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고, 햇살이 너무 밝았기에 그 눈물을 들킬까봐 한동안 지붕을 바라보며 동산에 서 계셔야만 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활짝 열고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으며 당신 또한 어머니를 사랑하며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망이 들어가는 '노인'이 아닌, 당신을 위해 일생을 바쳐 오신 '어머니'를 말입니다.

물론 저 또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저도 지금부터라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럼 당신이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바라며, 이 주제넘었던 편지도 줄이겠습니다.


한울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부모와 자식 관계를 우리는 예부터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고 하여 삼강오륜의 으뜸으로 일컬어 왔다. 이 말을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고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친(親)'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를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부자유친은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정해 준 것이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로 풀이 된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고마움을 모른다고 흔히들 말한다.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른 패륜아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고마움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단지 말로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 어설플 뿐이다. 때로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에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그리고 스스로의 잘못도 알고 있다. 한울이는 <눈길>의 등장인물 '나'에게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충고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빚이 있고 없고의 관계가 아니라 조건 없는 아낌과 사랑의 관계라고. 그래서 부모를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또 주제넘은 충고임을.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빨리 그리고 쉽게 아이들을 내 생각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 버릇을 고치려고 애를 쓰는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에 대한 나의 성급한 판단을 반성한다. 아이들에게도 생각의 깊이가 있음을. 그리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내가 좀 더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함을.

그리고 <눈길>에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되돌아본다. 내 또한 부모, 교사된 이로서 우리 아이들이 힘들 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 적이 있었는가 되돌아본다.

눈길

이청준 지음, 문학과지성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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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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