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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을 설명하는 김계선 화백
수상작을 설명하는 김계선 화백 ⓒ 우리안양 제공
"그림을 완성하는 데에는 두 달 남짓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구상하고 생각을 정리하기까지는 30여년이 걸렸습니다."

'제15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한국화 '타임로드(시간의 길)'로 대상의 영광을 거머쥔 김계선(43·지체장애 3급) 화백. 김 화백의 수상이 더 빛나는 것은 불편한 몸으로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투혼을 불태워 온 열정이다.

선천성 뇌성마비로 오른손은 거의 사용할 수 없기에 왼손이 더 자연스러운 김 화백. 미술에 대한 전문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각종 공모전에서 30여 회 수상 경력을 남기며 그의 미술세계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세 차례 특선과 우수상, 장려상 등 수상 경력을 남긴 김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도 연달아 3회 입선하는 등 일반 화단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장애의 벽을 넘어 푸른 꿈을 펼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다. 타고난 끼가 있던 그의 그림은 언제나 단골로 교실 뒤편 게시판을 장식했다고.

4학년 때 담임교사의 권유로 덕수궁에서 개최된 미술대회에 참가했던 것이 그림인생의 물꼬를 트는 계기였다. 그 후 '김계선'이란 이름 뒤에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란 수식어가 꼬리표 되어 붙어 다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에서 활동했던 것이 그가 받은 미술교육의 전부였다. 서울 신길동에서 3남 1여의 막내로 출생, 그는 가슴 속으로 뇌성마비의 아픔을 삼킬지언정 겉으로는 누구보다 항상 밝고 명랑했다고.

김 화백은 "아버지가 일정한 직업이 없어 만날 수제비국만 먹고 살았어요"라며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되었던 아픔을 털어놓는다.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김계선 화백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김계선 화백 ⓒ 우리안양 제공
묵묵히 그림 속에 빠져 살면서도 "왜 배고프지? 이걸 그려서 밥이나 먹고 살까?" 수 없이 고뇌하고 갈등도 하게 되었다. 미술을 배우는 친구나 선후배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토론도 하고, 걸개그림 작업도 도와주며 대학 다니는 친구를 따라 더러는 도강도 했었다고.

뚜렷한 수입이 없는 김 화백은 신체적인 제약과 경제적 어려움이 늘 엄습해 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붓을 놓지 않았다. 학원 강사로 일하며 생활을 꾸려 가는 사랑스런 아내는 좋은 친구이자 언제나 고마운 동반자였다.

김 화백은 "이 상을 받기까진 아내의 힘이 컸습니다. 대상의 영광을 아내에게 돌리고 싶습니다"라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상금으로 먼저 밀린 화실 임대료를 낼 수 있어 다행이라며 밝게 웃는다.

그림 속에서 사는 그였지만 "대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공식 석상에 오든지 말든지 관심 밖이었는데 이젠 꼭 참석해 달라고 요청해 올 정도로 예우가 달라졌습니다"라고 말한다.

수상작 타임로드. 하단에 컴퓨터 자판이 보인다.
수상작 타임로드. 하단에 컴퓨터 자판이 보인다. ⓒ 김계선 화백
하지만 그는 "그림에 여한은 없습니다. 아마도 대상의 의미는 공부를 더하라는 격려 차원으로 압니다"라고 말했다. '타임로드'에서 작가는 원숭이를 통해 원시적 문명과 발달된 현대문명의 컴퓨터 자판을 조화시킴으로 현대 사회의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이 백여 점 되지만, 솔직히 돈이 없어서 개인전은 엄두도 못 낸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그림이 대상작인 '타임로드'라고.

작품 속 시간의 흐름이 너무 좋고 컴퓨터에 성경말씀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김 화백은 어쩌다 그림 판매로 기백만원이 들어오면 가뭄에 단비처럼 씀씀이가 커지지만, 아무리 생활이 쪼들려도 헐값판매는 작가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고.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20여 평의 작업실에서 그는 수강생들을 지도해왔다. 수강료라야 화실 임대료를 보태는 정도라고. 그는 "제자 중에 2명이나 미술 대전에서 입상했으니 작가적 성향을 굳힌 것 아니냐"며 호탕하게 웃는다.

인터뷰 중인 김계선 화백
인터뷰 중인 김계선 화백 ⓒ 우리안양 제공
김 화백은 수강생이 있으면 화실 임대료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어 좋고, 수강생이 없으면 그림 그리는 시간이 넉넉해서 좋다며 긍정적인 성격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박달1동 '열린문교회'에서 무료로 꿈나무들에게 그림을 지도하고 있다고. 그의 소망은 장애인의 휠체어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미술공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공간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교류하며 작업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일반 작가도 배고프고 외로운데 장애인 작가는 얼마나 슬프겠어요.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장애인으로 살며 속타는 심정은 아무도 몰라요."

그 속타는 심정을 함께 공유할 장애인의 쉼터이자 작업실을 갖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자 유일한 소망이다. 그 공간에서 제자들을 길러내며 장애인 미술 발전에 투혼을 불태우고 싶은 게 김 화백의 유일한 꿈이다.

심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화폭에 자신의 혼을 담아 과감하게 그림을 그려온 인간 승리 김계선 화백. 국전출품을 위해 투혼을 불태우는 그에게 새로운 인고의 꽃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우리안양>에도 실렸습니다. 

김계선 화실에서는 수강생을 받고 있습니다. 

전화: 031-447-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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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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