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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팅'은 주먹으로 해결하자는 뜻이다.
ⓒ 김용택
‘센팅이 답이다’ 어떤 학교의 학급급훈이다. 이 급훈의 배경에는 영화배우 박노식이 상대방을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혼신의 힘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사진에 ‘공부가 안 될 때, 집중이 안 될 때, 의욕이 없을 때, 정신을 못 차릴 때, 꿈이 멀어져 갈 때, 그럴 땐 센팅이 답이다.’ 그런 글귀와 함께 사진 아래에는 ‘정신 차려라 얘들아~!!!! 우리가 세계 챔피언인지도 모른다!!!‘라는 설명까지 붙어 있다.

뒷면 학습란에는 영화배우 박노식이 주먹으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그림과 중국 무협영화에나 나오는 주인공이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진까지 붙어 있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 이 글과 사진을 봤을 때 영어실력이 짧아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됐다. 기회가 있으면 영어선생님께 물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언젠가 선생님들과 식사 자리에서 그 얘기가 나왔고 그 자리에 영어선생님도 있었다.

센팅이 무슨 뜻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영어선생님도 그게 영어로 무슨 뜻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은어(隱語)로 ‘주먹으로 해결하자’라는 뜻일 거라는 것이었다. ‘공부가 안 될 때, 집중이 안 될 때, 의욕이 없을 때, 정신을 못 차릴 때, 꿈이 멀어져 갈 때’ 그럴 때는 맞으면 정신이 들어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환경정리용으로만 붙어있다면 학생들의 장난이거니 했겠지만 선생님이 급훈으로 채택할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게 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물론 옛 어른 들은 회초리를 교육의 도구로 사용했던 일이 있다. 선종(禪宗)에서는 좌선을 할 때 승려들에게 경계를 주거나 선승이 설법할 때 위엄을 나타내는 ‘죽비‘라는 불구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체벌이 교육적인 효과보다는 인격을 파괴하고 상처를 준다는 의미에서 체벌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교사의 교육관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급훈이란 교사의 교육관이다. '나는 한 해 동안 이 학급을 맡아 이런 형의 인간을 키우겠다'는 의지와 철학이 담긴 경영목표다. 식민지시대 유물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폐지하지 않고 둿다면 그만한 교육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야 옳다. 그러나 현재 각급학교의 급훈을 보면 교육적이지 못한 내용이 더 많다.

‘생각이 바뀌면 미래가 보인다’ ‘네 모든 것을 걸어라’ ‘서로 돕는 마음씨’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 이런 류의 교훈적인 급훈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에서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수업료는 수박씨가 아니다’ ‘죽어서 자라’ ‘헉헉! 후유!’ ‘오노처럼 살지 말자’ 이 정도라면 그래도 애교로 봐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학급에서는 ‘2호선을 타자‘ ‘삼십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THIS가 한 갑이면 공책이 두 권이다’ 혹은 ‘미치자’ 이정도면 이게 교육을 하자는 급훈인지 장난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언젠가 청소년 인터넷신문 바이러스에서 ‘엽기적인 급훈’을 공모했는데 ‘공장가서 미싱할래 대학가서 미팅할래’라는 급훈이 있어 경악했던 일이 있다. 이쯤 되면 단순히 겁을 줘 공부를 하게 하자는 게 아니다. 졸업 후 노동자로 살아갈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노동을 천시하는 반교육적인 직업관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올바른 교육이란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그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그게 곧 선(善)이라고 가르친다면 이를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최근 사오정현상 등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직업을 선호하면서 성적인 좋은 학생들이 교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 이런 엽기적인 급훈이 등장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념도 철학도 없이 지식만 주입해 개인을 출세시켜 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교직사회에서 토론문화가 정착되고 교원들의 생활 속에서 연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면 교원의 자질향상은 물론 학교가 교육을 하는 곳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educate.jinju.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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