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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공연을 하는 김성애 씨 1
판소리 공연을 하는 김성애 씨 1 ⓒ 김성애
“아이고 내 못 살것다. 이애 방자야 너와 나와 우리 결의 형제허자. 야 방자 형님아 사람 좀 살려라.”
“도련님 대관절 어쩌란 말씀이오.”
“여보게 방자형님. 편지나 한 장 전하여 주게.”
존귀허신 도련님이 형님이라고까지 허여놓니 방자놈이 조가 살짝 났든 것이였다.
“도련님 처분이 정 그러시면 편지나 한 장 써 줘보시오. 일되고 안되기는 도련님 연분이옵고 말듣고 안듣기는 춘향의 마음이옵고 편지 전하고 안전하기는 소인놈 생각이오니 편지나 써 줘보시오.”


음반에서 걸쭉한 ‘아니리’가 나온다. 아니리가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는데 이 대목을 보니 소리보다 더한 매력이 있어 보인다. ‘아니리’는 판소리의 구성요소 중 북은 치게 놓아두면서 말로 하는 부분을 말하는데,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의 전환 등 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구실을 하고, 특히 해학적인 대목은 ‘아니리’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맛깔스런 ‘아니리’를 누가 하는 것인가?

음반의 설명을 보니 동초제 판소리를 완창한 김성애씨이다. 그럼 동초제란 무엇인가? 판소리의 유파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서편제, 동편제가 있고, 충청도 이북에서 불렀다는 중고제, 전남 보성에서 박유전이 시작한 ‘강산제’가 있으며, 동초 김연수(1907~1974) 선생이 이룬 ‘동초제’가 있다.

판소리 공연을 하는 김성애 씨 2
판소리 공연을 하는 김성애 씨 2 ⓒ 김성애
이중 동초제는 김연수 선생이 1930년대 여러 명창의 소리 중 좋은 것을 골라 짠 소리제를 가리키는데, 사설이 정확하고 너름새(동작)가 정교하며, 부침새(장단)가 다양하다. 또 정확한 발음을 강조해 가사 전달이 확실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도 특징이라는 평가이다.

김연수 선생의 이 동초제를 오정숙 명창이 배워 계승했고, 1972~1976년 동초제로만 판소리 5바탕을 완창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김연수제 춘향가 기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김성애씨는 이 오정숙 명창을 잇는 소리꾼으로 연극배우와 대중가요 가수, 방송 사회자를 넘나드는 만능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김성애는 타고난 목소리에 감칠맛 나는 ‘아니리’를 어떻게 소리내게 되었을까?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타고났음을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195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여성국극단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박옥진 여사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5살 때부터 아역으로 여성국극 무대에 서게 되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소리와 연기에 한꺼번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또 언니는 마당극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김성녀씨이다.

중간에 그녀는 언니와 함께 비둘기 자매를 결성하고, ‘까투리사냥’ 등으로 인기를 끌었던 20여 년의 대중가요 외도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여성국극에 돌아왔을 때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내가 이 길을 놔두고 뭘 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성애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완창발표회 음반 표지
김성애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완창발표회 음반 표지 ⓒ 김성애 우리소리방
김성애씨는 다시 판소리를 시작하면서 1989년 전주대사습놀이 일반부 장원, 1993년 목포 전국판소리 명창대회 대통령상 수상 등을 했으며, 199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가 되었고, 현재 (사)동초제 판소리보존회 서울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김성애 우리소리방’을 통해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녀는 또 한국방송 텔레비전 ‘6시 내고향’에서 ‘김성애의 고향노래방’을 진행했고, 또 한국방송 텔레비전 ‘김성애의 소리기행’을 진행하는 등 방송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이번에 내놓은 음반은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완창발표회를 실황녹음한 것으로 전반부는 2001년 5월 18일 공연한 것으로 3장이며, 후반부는 2003년 4월 27일 공연한 것을 녹음한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음반은 김성애씨가 운영하는 ‘김성애 우리소리방’이 직접 기획 제작한 것이다.

이 음반에서 듣는 김성애씨 소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시원스럽고 걸쭉한 것은 물론, 힘찬 목소리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녀의 아니리로 여태 다른 소리꾼에게서 듣지 못했던 대단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그야말로 판소리가 재미있고 매력있는 것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성애 씨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성애 씨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 김영조
인터뷰하러 들어간 ‘김성애 우리소리방’에는 따뜻함이 흘렀다. 두 여고생을 가르치고 있던 김성애씨는 혼신을 다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감싸 안는다. 소리 공부를 하던 전남 해남에서 온 전성윤(고2) 학생은 처음엔 그냥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여기 왔지만 이제 선생님의 소리에 빠져서 판소리가 마냥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던지는 말은 “공부할 때는 무섭지만 보통 때 선생님은 엄마보다도 더 착하세요”였다.

김성애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완창발표회 음반
김성애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완창발표회 음반 ⓒ 김성애 국악소리방
김성애씨는 그 학생이 친척집에 머물면서 외로워 하는 것 같아서 부모 대신하기로 했다는 말을 한다. 온화한 목소리로 외출할 때의 옷차림을 거들고, 눈을 맞고 싶다는 학생에게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았다며 말리다가 마지못해 잠시만 나갔다가 오라며 허락을 하는 것을 보면서 바로 어머니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많은 수강생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혼신을 다해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녀의 철학을 읽을 수 있었다.

2005년 을유년이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다. 우리는 을유년 한 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조용히 되돌아 보면서 마지막으로 ‘김성애 동초제판소리 춘향가’를 들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의 판소리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좋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여성국극이 다시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국어학자와 함께 판소리 사설 가다듬었으면"
[인터뷰]동초제 춘향가판소리 완창 김성애씨

▲ 인터뷰하는 김성애씨
ⓒ김영조
- ‘아니리’가 매력적인데 비결은 무엇인가?“어른들은 ‘아니리를 정확하게 하지 마라. 그것은 연극일 뿐이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긴소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아니리의 힘일 것이다. 따라서 소리만큼 잘해서 목구성이 떨어져도 아니리를 통해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리가 30분 이상 이어지면 그 목이 그 목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니리로 이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아니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면 그건 아마 예전에 연극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 가르칠 때 혼신을 다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그 까닭은?
“나는 배우는 이들이 전공하는 이가 아닌 일반인도 피곤할 정도로 혹독하게 가르친다. 취미로 하는 일반인이라도 국악의 매력을 느끼도록 하려면 프로답게 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를 배워도 제대로 하라고 다그친다.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도 최소한 박자나 음 정도는 틀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수강생을 많이 받지 못한다. 혹 어떤 이는 ‘외국인은 잘 모른다’라며 외국인에게 대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을 우리 음악으로 알게 하는 일이다. 적당히는 안 된다.”

- 여성국극에 대단한 애정을 가진 것으로 아는데….
“여성국극단은 6·25전쟁 전에 시작되어 전쟁 직후 임춘앵, 김소희 ,박초월 선생님 등이 주도하여 50년대에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악극이다. 그런데 1960년 이후 명맥이 사라질 뻔하다가 1980년 이후 다시 부흥에 힘을 쏟고 있지만 정부의 여성국극에 대한 푸대접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역시 여성국극도 우리 전통문화의 하나이며, 국민을 재미있게 해줄 대단한 장르인데도 이런 냉대에 가슴이 아프다.”

-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판소리는 몇 시간을 소리와 아니리로 끌어가는 하나의 모노드라마이다. 그런 판소리를 하는데 예전엔 목이 썩어야 명창이 된다고 하여 혹사시켰다. 너무 심한 연습으로 목이 쉬면 청중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다. 가사 전달이 정확히 될 때 감정을 전할 수 있다. 연습은 공연 때 최고의 소리의 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판소리는 참으로 훌륭한 소리이다. 하지만, 사설이 한자로 된 고사성어 등 어려운 대목이 많아 청중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소리도 듣는다. 판소리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이런 사설을 쉽게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를 이해하는 국어학자들이 동참하여 같이 판소리 사설을 가다듬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나는 김성애씨에게 판소리 사설을 가다듬는 일에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한다. 그녀는 내게 그럴 수밖에 없도록 하는 마력을 던지고 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서 나는 김성애씨와 오랜 벗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훈훈한 가슴이 되었다. 그게 판소리, 우리문화를 하는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그런 매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그런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에 판소리를 하게 된 것은 아닐까?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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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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