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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밤을 장작불 주위로 놓아서 구워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호들갑 좀 떨었죠.
고구마, 밤을 장작불 주위로 놓아서 구워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호들갑 좀 떨었죠. ⓒ 임준연
서른 번째 생일을 조촐하게 연인과 단 둘이 보내려던 문군은 멀리 떨어진 광주의 친구가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이미 2주 전에 오겠다 약속한 바 있던 고창의 시골집 마당파티로 스케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여러 사람의 축하와 조촐한 선물도 받을 수 있었죠.

무려 4시간 가까이 운전하고 내려온 이곳에서 숯불로 조개와 고구마, 감자, 밤을 구워 먹고 나서 광주에서 오는 커플이 일이 늦어져 담당하고 있던 술이 없어서 허전합니다.

한참을 즐겁게 불가에서 이야기 하던 중에 서울의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싸리눈이 날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첫눈이네요. 앉아있던 여러 사람의 핸드폰이 울리고 그 곳에 있지 못하는 이들로서 모두 첫눈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시간도 늦어져서 다음날로 넘어갈 무렵의 토요일 저녁. 방안에 들어와 자리를 깔고 하나둘 눕기 시작합니다. 먼 길 운전이 피곤했던 모양인지 눕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하는 운전수들. 마당에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일요일. 7시가 되니 이곳저곳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맞춰놓은 알람소리인가 봅니다. 일요일 오후강의가 있다고 나서는 서울의 한 커플. 앗, 이게 웬일입니까. 눈이 발목까지 소복하게 쌓여 있습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자국들이 만든 길입니다. 이렇게 온 것도 처음입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자국들이 만든 길입니다. 이렇게 온 것도 처음입니다. ⓒ 임준연
차를 몰고 눈길을 헤쳐서 갈 생각을 하고 마음이 급해진 커플은 서둘러 손을 흔들며 떠나고, 첫눈을 맞는 것보다 잠이 더 좋은 이들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잡니다. 잠자는 중간 중간 별일은 없는지 핸드폰으로 교신(?)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자, 이번엔 두 번째 커플입니다. 광주에서 결혼식 관련한 일로 11시까지 가야 하는 이들이 늦잠으로 11시가 다 되어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눈이 훨씬 더 와서 한 뼘은 넘게 쌓인 듯합니다. 나가 보지도 못하고 문가에서 인사를 나누고 들어와서 점심을 준비합니다.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광주로 향하고 있을 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마을 입구에 트럭이 빠져서 길을 막고 있는데 다른 길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다른 길은 오르막길을 지나야 합니다. 무사히 가길 빌며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바퀴가 미끄러져서 전후진 몇 번을 시도하다가 눈이 그치기를 기대하고 내버려둔(?) 차입니다. 농촌에서의 뒷배경은 온통 하얀색입니다. 다 덮여서 드러나는 곳이 없는 들판이기에...
바퀴가 미끄러져서 전후진 몇 번을 시도하다가 눈이 그치기를 기대하고 내버려둔(?) 차입니다. 농촌에서의 뒷배경은 온통 하얀색입니다. 다 덮여서 드러나는 곳이 없는 들판이기에... ⓒ 임준연
30분이 지나고 나서 마당에서 단이(강아지 이름)가 세차게 짖는 소리를 듣게 되고 곧이어 임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다른 길을 시도하려 했으나 차가 움직이지를 않아서 겨우 주차했던 곳에 집어넣고 왔다는 말을 하며. 순간 좌중은 서로를 쳐다보며 이 사람 저 사람이 걱정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눈이라고 합니다. 무려 하룻밤 사이에 30cm가 넘게 온 눈. 마당은 이미 길도 없고 지붕위로는 소복하게 쌓인 눈이 하얀 초가지붕처럼 덮여 있습니다. 온통 하얀 세상위로 눈발이 날리고 마을회관 쪽으로 나가는 길을 내기위해 옆집 아주머님이 눈을 치우고 계십니다.

치워진 길을 보니 무릎까지 차오릅니다.

지붕선 위로 쌓인 눈의 두께가 하루에 내린 눈의 양입니다. 엄청나죠.
지붕선 위로 쌓인 눈의 두께가 하루에 내린 눈의 양입니다. 엄청나죠. ⓒ 임준연
종일 내리는 눈과 함께 여러 사람의 핸드폰이 바빠집니다. '고립', '갇히다', '구조'등의 단어들이 등장하며 각자의 직장과 부모님 등과 통화합니다. 결국 예정에 없던 하루를 꼬박 방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세 커플은 확실한 젊은 시절의 엠티를 떠올리며 금방 즐거워합니다.

월요일 오후. 따스한 햇살이 난 틈을 이용해 두 대의 차를 도로 위로 올리는데 성공합니다. 눈 덕택에 하루를 더 함께 보내 즐거운 주말의 모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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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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