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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눈은 포근하다. 아니다, 눈은 차다. 눈은 그렇게, 볼 때와 손에 만졌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러나 눈은 포근하다는 볼 때의 느낌이 차다는 만졌을 때의 느낌을 압도한다. 우리는 뻔히 알면서도 눈의 그 차디찬 느낌을 나 몰라라 한다. 우리가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도 눈밭에서 마냥 즐거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냉기가 5분 이상 장갑을 벗고 있기 힘들게 했지만 세상을 덮은 눈밭을 지날 때 나의 마음은 푸근하기만 했다.

ⓒ 김동원
겨울 나무는 앙상해 보인다. 바람이 숭숭 통하는 그 앙상함 때문에 겨울나무는 우리 눈에 안쓰럽게만 보인다. 오늘 눈이 나무의 몸을 반쯤 덮어주고 있다. 안쓰러움이 반쯤 가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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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겨울은 대지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계절이다. 겨울산도 속살이 다 들여다보이는 느낌이다. 그 점에서 보면 대지는 가난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더운 계절엔 겹겹의 초록잎을 두텁게 두르고 살다가 하필 겨울이 왔을 때는 맨살로 오들오들 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 대지의 가난을 눈이 포근하고 하얗게 덮어주었다.

ⓒ 김동원
드디어 치악산 정상에 올랐다. 과연 누구였을까, 치악산의 정상에 저 돌탑을 쌓은 사람은. 치악산 정상에서 돌은 겹겹이 쌓여 더 높이 올라가려 한다. 눈은 그와 반대로 한켜 두켜 쌓여 세상을 덮으려 한다. 돌탑은 그렇게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었고, 눈은 가슴을 대지로 두고 있었다. 눈의 느낌이 따뜻한 것은 그 때문이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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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치악의 정상에 오르고 나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모두가 선 정상에 눈이 있었다. 우리들이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고, 정상의 돌탑이 하늘을 향하여 더 높이 몸을 세울 때 눈은 반대로 그곳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우리에겐 정상이 가장 높은 곳이나 눈에겐 우리가 출발했던 저 아래쪽, 그곳에서도 가장 비루하고 가난하며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이다.

ⓒ 김동원
나는 눈의 길을 거슬러 정상에 오르고, 그 다음엔 눈의 길을 따라 내가 출발했던 저 아래쪽으로 동행을 계속했다. 눈이 외나무 다리를 삐뚤삐뚤 건너가며 이렇게 말한다. 균형을 잘 잡아. 장난기 어린 그 걸음을 따라 팔을 벌리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듯 꼬불꼬불 산길을 내려갔다.

ⓒ 김동원
바람이 흔들자 나뭇가지에 얹혀있던 눈들이 내 머리 위로 우수수 날렸다. 눈이 날릴 때 숲엔 나밖에 없었다. 눈이 올 때면 세상 모두의 눈이지만 눈 온 날 숲에 가면 나 혼자 독차지하는 눈도 있다.

ⓒ 김동원
처음 산을 오를 때 눈은 나무의 앙상함을 가려준 포근함이었는데 이제는 나무가 눈이 지상으로 오는 길이었다. 나무의 길 안내를 따라 그렇게 눈은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김동원
나뭇가지 사이에선 눈이 양쪽으로 팔을 들어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으쌰, 으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가던 길에 잠시 뻐근해진 몸을 풀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도 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따라 팔을 들고 잠시 몸을 풀었다.

ⓒ 김동원
눈밭에 누군가 남긴 발자국이 있었다. 나뭇잎이 잠시 발자국의 흔적을 기웃거렸다. 지난 가을, 저를 유난히 오랫동안 올려본 사람의 체취라도 남아있는 것일까. 눈밭에선 그렇게 모두 자기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곧 사라지겠지만 그러나 눈이 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또다시 확인할 수 있다. 흔적도 없이, 아무 자취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이란 이 세상에 없다. 눈과의 동행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얻어 들은 눈의 전언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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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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