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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옛 교문과 교사는 바뀌었지만, 오가는 등교길을 정답게 맞아주던 벚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
ⓒ 한석종
얼마 전 한 달에 한 번씩 들르는 이발소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 녀석을 만났다. 내가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녀석은 눈을 지그시 감고 졸면서 이발소 아저씨에게 희끗희끗한 머리를 통째로 내맡기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신문을 뒤적이다 전면에 걸려 있는 커다란 거울 속에서 동창 녀석을 만났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너 누구 아냐?" "그래, 맞아! 그렇지. 이게 얼마만이냐?" 반갑게 악수를 나누면서 그의 입을 통해 30여년 세월을 잊고 지냈던 몇몇 초등학교 동창 녀석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와 헤어지고 며칠 후 녀석에게서 핸드폰 메시지가 날아왔다. 인터넷에 동창회 카페를 개설하였으니 시간 나면 가끔 방문하여 동창 녀석들의 안부나 챙겨주라는 것이다.

▲ 30여년 세월 까맣게 잊고 지내왔던 그리운 동창 녀석들의 가슴 따뜻한 소식으로 모락모락 훈김 돋는 인터넷 카페.
ⓒ 한석종

▲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 속 깊이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가는 초등학교 명패.
ⓒ 한석종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 카페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아주 낯익은 녀석들의 이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건만, 엊그제 만나고 헤어진 것처럼 시공간을 사뿐 뛰어 넘어 코흘리개 녀석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번졌다.

카페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영희야 이리와 놀자" 구절로 우리들에게 놀림이 되었던 영희,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는 남자 아이들을 단숨에 쫓아가 된통 혼내주던 경옥,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던 갈대처럼 가냘파 보호본능을 자극했던 경애, 그림 솜씨에 입심까지 겸비해 어디 가나 감초로 대접 받던 인구, 전교생을 휘어잡았던 카리스마 병률, 요즈음 한창 인기 있는 K1의 골리앗 최홍만처럼 꺽다리 삼쇠…. 그 시절 그리운 녀석들이 다 모여 있었다.

카페 게시판에 코흘리개 그 시절, 어느 한 동창 녀석이 여자동창 누구를 짝사랑(?)했노라고 고백을 토해내자 뒤를 이어 풋사랑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도 좋아했던 여자애가 있었지만 나보다 한발 앞서 어느 녀석이 벌써 점찍어 놓았다는 걸 30여년이 훌쩍 지난 이번에야 알 수 있었다.

"장허다. 녀석들아!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로맨틱한 감정들은 펄펄 살아 숨쉬고 있었구나!"

이곳에서는 힘들었던 지난 과거도, 바동대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 모두 결코 허물이 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뛰어놀다 넘어지면 누구라도 먼저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듯 서로를 위로하고 또한 위로 받았다.

카페 문을 열면 입구 옆에 '어렵게 사는 동창생 돕기 모금함'이 놓여 있다. 천원 한 장이라도 기꺼이 받는다는 글귀가 선명하게 다가와 카페 분위기를 아늑하고 훈김 돋게 만든다.

요즈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일 매서운 한파가 대단한 위세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유달리 올해에는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나 구세군 냄비에 예년과 다르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하다고 한다.

경제가 힘들어진 탓일까? 아마, 우리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탓일 것이다! 이 엄동설한에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우리 동창 카페 분위기가 사회 곳곳으로 번져나가 이 한파를 거뜬히 이겨내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시골 고향마을 오두막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처럼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 이승복 어린이의 겨드랑이에 낀 책가방이 낮익고 정겹게만 느껴진다.
ⓒ 한석종
▲ 평생을 고향 학교를 지켜온 선생님, 후배들 착하고 아름다운 인재로 키워주실거죠?
ⓒ 한석종
▲ 중년을 훌쩍 뛰어넘은 이 나이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어깨동무.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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