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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앤아이스틸 당진제철소 내의 한 사업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종준
지난달 8일 낮 3시경 아이앤아이스틸 당진공장. 이 회사의 협력업체인 ㈜영진 소속의 정모(42)씨가 자욱한 먼지 속에서 유선리모컨을 이용해 5톤 기중기로 이송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또 다른 협력업체인 ㈜명진의 기중기 기사가 운전하던 65톤 기중기가 갑자기 다가왔다. 작동해야 할 안전장치는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추돌사고가 발생했고 거대한 65톤 기중기에 받힌 5톤 기중기는 힘없이 밀리면서 들고 있던 기계장치가 정씨를 덮쳤다.

무선 리모컨만 있었어도… 취약한 장비 사고 불러

정씨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부러진 갈비뼈가 다른 장기를 찌르면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같은 ㈜영진 소속의 박모(48)씨는 "5톤 기중기를 조정하는 리모컨이 유선이 아닌 무선이었거나 유선이라도 최소한 선이 더 길기만 했어도 정씨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아이앤아이스틸의 한 직원은 "5톤 기중기의 리모컨을 무선으로 바꿔달라고 오래 전부터 요구했으나 지금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앤아이스틸은 지난해 한보철강을 인수한 후 열연강판의 상업생산을 재개하는 등 공장가동률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사내 하청(협력화)을 통해 비정규직을 확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아이앤아이스틸 공장 내에서 일하면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과 처우를 받아가며 근무하고 있다. 더욱이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숙련도가 떨어지고 안전교육이 미비한 상태에서 오히려 더 위험한 사업장에 투입되고 있어 산재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고 있다.

아이앤아이스틸과 현대하이스코 당진공장에서는 최근 1년 간 사망사고만 4건, 발목절단·인대파열을 비롯해 공식적으로 보고된 부상사고만 17건이 일어났다. 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이윤확대에 골몰하는 원청회사와 한계선상의 공사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들이 비용절감이나 공기단축에만 매달리며 위험한 일은 가장 임금이 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재해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한국산업안전공단이나 노동건강연대 등의 조사와 통계를 보면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원청업체 노동자들에 비해 재해율에선 2배 이상,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 산재사망자 수)에선 4~10배 이상 높다.

정씨가 기중기 추돌사고로 숨지던 당일, 아이앤아이스틸 B지구의 코렉스 2호기 해체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2명이 13미터의 높이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중상을 입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일이 있기 불과 한 달 전인 10월 9일에는 현대하이스코 당진공장에서 협력업체인 천보산업 소속 배모(60)씨가 천정기중기 운전실에 들어가다 기중기가 주행되면서 목이 끼어 숨지기도 했다.

사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숙련도가 떨어진다. 숙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사고는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협력화'를 통한 사내하청이라는 '이중적 고용구조’의 개선이 근본적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진단이다. 이들은 "이 같은 고용방식은 근본적으로 이중착취의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노동법상의 책임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반노동적, 반사회적 고용형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산재사고 일지

▲2004년 12월 30일 : 서해상공(공사업체) 서모(62년생)씨 낙하물에 의한 목관절 골절로 사망.

▲2005년 3월 8일 : 아이앤아이스틸(당진공장) 경선산기(협력업체) 홍모(45)씨 구동휠(주행차륜)에 협착되어 발목 절단.

▲2005년 3월 28일 : 아이앤아이스틸(당진공장) 인영산업(협력업체) 성모(32)씨 몰드가 넘어지면서 허벅지부에 협착되어 인대 손상.

▲2005년 6월 21일 : 현대하이스코(당진공장)내에서 (주)다원(협력업체) 손모(30대 후반)씨 시운전 작업 중 지상에서 약 5~6m 아래로 추락해 사망.

▲2005년 7월 6일 : 아이앤아이스틸(당진공장) 태흥건설소속(엠코하도급)작업자 홍모(48년생)씨 외 6명이 수지절단 및 골절상.

▲2005년 9월 10일 : 아이앤아이스틸(당진공장) 고려계전(공사업체) 소속 채모(40)씨가 T/R단자(6600V)에 손이 닿아 화상.

▲2005년 10월 9일 : 현대하이스코(당진공장) 천보산업(협력업체)소속 배모(60)씨가 천정기중기 운전실에 들어가다 주행되어 목이 협착(끼어)되어 사망.

▲2005년 11월 8일: 아이앤아이스틸(당진공장) (주)영진(협력업체) 소속 정모(42)씨 65톤 기중기에 추돌, 부러진 갈비뼈가 인접장기를 파열시켜 사망.

덧붙이는 글 | 주간 <당진시대> 12월 12자로 보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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