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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만든 차(Secret of Temple Tea) 표지
산사에서 만든 차(Secret of Temple Tea) 표지 ⓒ 정리출판사
유명 사찰이 자랑하는 산사 음식을 소개하는 'Korean Temples & Food'(2002)는 영문판으로 냈지만, 이번에 출간된 '산사에서 만든 차'는 한글판이 먼저 나왔고 내년 5월쯤 같은 내용이 영문판이 출간된다.

이정애씨가 사찰의 전통 음식과 차를 영문판으로 계속 펴내는 이유는 우리 전통의 한 부분을 서양 언어의 맛에 맞춰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1972년 유학을 떠난 이후 24년간 미국에 머물면서 중앙일보 뉴욕지사 사진기자를 거치는 등 영어의 맛에 익숙한 이정애씨의 영문판 서적들은 우리의 전통을 그들의 언어 맛으로 소개하여 절묘한 동서 문화의 융합을 이룬다.

눈이 편안한 그의 사진들은 저자의 표현대로 "책상 위에 차(茶)처럼 펴놓고 아무데나 펼쳐지는 대로 읽어도 좋도록" 실었는데, 책에 적힌 각종 차 제조법대로 따라만 하면 사찰의 귀한 차들을 집에서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이정애씨는 그의 책에서 원래의 차를 의미하는 녹차만을 '차'라 하고 기타의 차는 '대용차'로 구분하고 있다. 정통 녹차 이외의 다류 일체를 대용차라 부르는 이 분류법은 타당해 보인다.

다른 차들도 자료 수집이 녹록치는 않았겠지만, 특히 꽃차 자료 수집이 어려웠다는 저자의 말이다. 꽃차의 원료가 되는 꽃이 제 철에 피었단 소식을 듣고 달려 가보면 간밤의 비에 꽃잎이 다 망가져 다시 일 년을 기다리는 수고가 허다했다고.

차는 배부르라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얼핏 생각하면 '요즘 먹고살기도 힘든 데 한가하게 차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 시각엔 미개인으로 보이는 종족들도 손님에겐 가장 정중한 그들의 예법으로 그들 식의 차를 대접하곤 한다. 이렇듯 차를 만들고 마시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문화 행위의 하나이기도 하다.

24년의 긴 미국생활에서 온 일종의 정신적 부적응으로 이정애씨는 아직도 자신의 한국 생활을 스스로의 표현처럼 "어눌하게 한다." 그는 그것을 그저 '문화적 쇼크'로 표현하며 쇼크를 줄이기 위해 애쓸 뿐 자신의 방황을 숨기지 않는다. 유신 정국에 고국을 떠났다가 지난 1995년에 돌아왔지만 돌아온 조국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외형만 발전했지 정신문화가 황량해 진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런 조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는 안아준 피난처가 사찰이었단다.

그가 원래 사찰과 인연이 있던 것은 아니나 조국의 사회 변화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던 이정애씨에게 우연히 찾은 사찰은 정신의 피난처였고 "먹는 것은 다 맛있다"는 그에게, 정갈한 사찰 음식과 차는 그를 유혹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분명 비법으로 절집의 대를 이어 내려왔을 차 만들기를 그저 술술 풀어놓지는 않았을 터. 각종 제다법을 듣기 위해 깊은 산 속의 사찰을 멀다 않고 서너 번 이상 찾아가 스님과 인사길을 트면서 전통 문화를 밖에 소개하고 싶은 자신의 순수한 뜻을 알려야 했다고.

소나무에 스친 바람을 우려낸 '바람소리차'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마실 거리는 이정애씨가 말하는 대용차의 대상이다. 모든 먹거리나 유사 먹거리는 성분을 물로 우려낼 수만 있다면 원재료의 적절한 가공을 거쳐 차로 변화시켜 마실 수 있으므로 모든 먹거리를 차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순차 버섯차 등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하지만 그 차향은 가히 독보적이다.

바람소리차. 바람의 색이 녹색이었나.
바람소리차. 바람의 색이 녹색이었나. ⓒ 이정애
이정애씨의 책에 '솔바람 차'와 ‘바람소리 차’로 명명되어있는 청량사의 솔잎차는 차 맛도 모르면서 그 이름만으로도 상큼하다.

촉각으로 느껴질 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미각으로 느껴질 뿐 눈에 보이진 않는 차 맛으로 바꾸어 마시는 민족, 바람의 느낌을 차로 마시는 민족이 있을까. 바람을 차에 넣어 마신다고 생각한 민족이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엄격히 얘기하면 솔바람 차, 바람소리 차는 솔잎을 넣었음을 빙자한 바람차(風茶)가 아닐까. 하긴 우리 선조들은 흙도 우려서 차로 마셨으니 바람을 우려서 차로 마시는 일이 희한할 것은 없다.

우리 선조들은 황토를 일상생활에서 애용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멀리 했었다. 황토의 특별한 효능이 이론과 실제로 입증되면서 황토제품은 고가에 팔리는 건강상품이 됐다. 이 황토를 차로도 마실 수 있다. 샘물에 양질의 심층 황토를 풀고 잘 저어준 후 하룻밤 재우면 황토 입자가 가라앉아 위에 맑은 담황색 물이 뜨는데 이를 '지장수(地奬水)'라 하며 소화불량 등에 마시기도 하는데 매우 귀한 약물로 쓰였다. 그럼 이 지장수야 말로 흙을 우려낸 흙차(황토차)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머리 속 전통 차의 개념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이정애씨의 책을 보며 한 겨울 추위를 거뜬히 물리칠 따끈한 차 한 잔을 만들어 보려한다. 그의 책이 놓인 책상은 그대로 찻상이 되며 한결 포근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jung publication 출판. 정가 33,000원.


산사에서 만든 차

이정애 지음, 정리출판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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