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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23일 오후 대국민사과와 함께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황우석 박사의 논문은 예상대로 조작으로 드러났다. 황 박사의 성과가 세계적이었으니, 이 사태로 인한 망신도 국제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국민의 90%를 졸지에 바보로 만들어버린 황우석 해프닝. 21세기에 일어난 이 황당무계한 사태에 우리의 언론들은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

언론, 대중을 선동하다

언론의 책임은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 단계는 < PD수첩 >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다. 이때만 해도 언론이 대중을 이끌었다. 즉, 황우석 박사가 이룩했다는 '위대한 업적'에 눈이 멀어, 그게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이때만 해도 황 박사를 의심할 근거가 없었으니 딱히 언론에 이 부분의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제 막 출발한 줄기세포연구가 당장 척추손상 환자들을 걷게라도 해줄 것인양 거짓 희망을 노래한 책임, 330조니 33조니 하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거론하면서 이 연구의 가치를 부풀린 책임, 나아가 성과에 눈이 멀어 배아복제나 난자 채취에 따르는 윤리문제를 가볍게 처리한 책임은 오롯이 언론의 몫으로 남는다.

대중이 언론을 이끌어가다

후폭풍... 11월 26일자 <동아일보> 1면 보도. 11월 22일 < PD수첩 >의 황 교수 윤리 문제에 대한 비판 방송 이후 대중의 분노는 이상하게 황 박사가 아닌 MBC쪽을 향했고, 이 즈음 언론의 대중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동아 PDF
두번째 단계는 < PD수첩 >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후다. 이때부터는 거꾸로 대중이 언론을 이끌기 시작한다. 난자 채취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고, 황 박사는 그로 인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런데도 대중의 분노는 이상하게 황 박사가 아닌 MBC쪽을 향했다. 이런 대중의 윤리적 도착증과 부조리한 행태를 자제시키기는커녕 언론은 이 부조리한 분노에 편승하기에 바빴다.

이미 논문의 진위에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언론이라면 중립적 위치에서 누가 참말을 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가려야 했다. 언론이 제 임무를 방기하고 일방적으로 황 박사의 편을 드는 사이,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은 '브릭'의 젊은 과학도들에게로 돌아갔다. 이들의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공론화한 매체는 <프레시안> 밖에 없었다.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인터넷 매체로는 <오마이뉴스>와 <업코리아> 정도가 비교적 공정성을 유지했고, 나머지 매체들은 온과 오프의 구별 없이 MBC의 살을 뜯어먹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일보>를 비롯한 마이너 신문들의 보도도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KBS와 SBS 역시 진실보다는 MBC 때리기를 은근히 즐기는 듯했다. 거국적으로 반성들 해야 한다.

YTN의 '공작'

▲ 지난 4일 YTN의 김선종 연구원 인터뷰 보도 화면.
ⓒ YTN TV 촬영
단연 고약했던 것은 YTN과 조선일보. 물론 YTN에서 MBC의 취재윤리 위반을 보도한 것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YTN의 취재 경위에는 앞으로 밝혀져야 할 수상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김선종씨는 YTN 인터뷰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진술번복(?) 역시 황 박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밝혔다. 한마디로 YTN이야말로 황 박사와 손잡고 국민을 기만하기 위해 강압 취재를 한 셈이다.

YTN의 것은 '보도'가 아니었다. 보도를 하려 했다면, 김선종씨가 < PD수첩 >에서 한 발언의 진위를 꼼꼼히 따져봤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 PD수첩 >의 취재윤리 위반만 부각시켜 그것으로써 애초의 인터뷰에 담긴 실체적 진실을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외려 덮으려 드는 것. 이것도 '보도'라 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의 '선동'

<조선일보>는 좀 다른 맥락에서 고약했다. 그들은 < PD수첩 >에 쏟아지는 분노의 파도를 타고 랄랄라 즐겁게 이념공세의 서핑을 했고, 그 결과 과학논문의 진위 논란이 졸지에 좌우의 이념대립이 되어 버렸다. <조선일보>의 공세는 MBC에 그치지 않았다. <한겨레>, <오마이뉴스>는 물론이고, 애먼 민주노동당과 과거의 운동권, 나아가 좌파 일반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YTN과 <조선일보>의 것은 '보도'가 아니었다. YTN이 '공작'을 했다면, <조선일보>는 '선동'을 했다. 군중의 폭력에 영합한 다른 언론사도 책임이 있겠지만, 적어도 YTN과 <조선일보>만은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 두 매체는 국민을 기만하고, 이견을 가진 시민들을 음해한 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를 못한다?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를 못 하겠다." 몇 달 전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민주노동당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방해하고 있단다. 알고 보니 민주노동당에서는 이미 있는 자료를 비공개로 열람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뿐, 새로운 자료를 만들어 제시하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고 한다. 이 정당한 요구를 <조선일보>는 '황우석 때리기'로 규정했다.

그때 <조선일보>의 매도가 없었다면, 황 박사에게 들러붙은 의혹들은 더 일찍 밝혀졌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제기하는 의혹이 마음에 안들면, 취재를 통해 그 의혹의 진위를 밝힐 일. 하지만 <조선일보>는 해야 할 취재는 하지 않고 황우석 박사의 말만 옮겨 적었다. 취재를 안 한 것도 문제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진실을 밝히려는 남의 노력까지 방해했다는 점이다.

PD는 PD다?

< PD수첩 > 사냥... < PD수첩 >을 강하게 비난하는 12월 6일자 <조선일보> A3면 보도. 하지만 결국 < PD수첩 >의 보도는 진실로 밝혀졌다.
ⓒ 조선 PDF
재미있는 것은 한학수 PD의 과거 전력을 들먹인 부분이다. 과거에 한 PD가 좌파 운동권의 PD계열에 속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학생 시절에 운동을 한 것과 제보를 받아 취재에 나선 것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단 말인가? <조선일보>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과거에 운동권이었던 민주노동당과 연결되어 있다며, 황우석을 내세워 좌파와 진보 사냥에 나섰다.

'황교수 물고 늘어지고 PD 수첩 편들고... 민노당 도대체 왜?'라는 12월 8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민노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황 교수 문제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이념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좌파들의 "이념"이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논문의 진위를 가리는 과학의 일상은 졸지에 이념적 사건이 되어버린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김대중 칼럼은 <조선일보>의 정치적 리비도다. 12월 6일자 칼럼의 첫 머리. "'황우석과 MBC PD수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상한 현상을 목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좌파 매체와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MBC PD수첩의 보도를 옹호하거나 더 나아가 '황우석 깎아내리기'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공격은 이제 진보매체로까지 확장된다. 그는 <한겨레>, <오마이뉴스>, <서프라이즈>, <프레시안>을 차례로 도마에 올린다.

왜 그럴까? 물론 진보성향의 매체들을 씨잡아 매도함으로써 다가올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유리한 매체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속셈이다. 더 황당한 것은 김대중씨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대목. "이런 것들이 '황우석 사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일반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왜 제 입으로도 "일반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그 짓을 하는가?

보통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

선동... 12월 6일자 <조선일보> A34면 '김대중 칼럼'. 이 글에서 김대중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좌파 매체와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황우석 깎아내리기'에 동조했다"고 비난했다.
ⓒ 조선 PDF
이 정도야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 칼럼의 제목. '보통사람들에 대한 마녀 사냥'. '마녀사냥'이란 다수가 소수에게 행하는 부당한 탄압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무엇인가? MBC가 보통사람들을 사냥한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보통사람들이 떼지어 MBC를 사냥하지 않았던가. 보통사람들에 의해 방송사의 광고가 모두 끊어지는 사태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었고, 세상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 설사 MBC가 제기한 의혹이 그릇된 것으로 밝혀져도 집단적으로 광고까지 중단시키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게다가 군중들이 PD의 가족사항을 게시판에 공개하고, 이견을 가진 사람들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쫓아가 폭언을 퍼붓고 공공연히 협박까지 가하는 게 어디 정상적인 상황인가? 그런데도 마녀사냥을 당한 것은 대중이란다. 이게 바로 <조선일보> 특유의 도착적 성취향이다.

'소폭' 지원하면서 '대폭' 지원도 하고

이랬던 조선일보가... 12월 7일자 <조선일보> A2면 보도. 이 신문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에 정부는 올해에만 30억원을 지원했다"며 "예산만 소폭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 조선 PDF
이렇게 변했다... 12월 19일자 <조선일보> A5면 보도. 불과 12일전인 7일 "예산만 소폭 지원"했다고 비판했던 이 신문은 이날 기사에서는 "황 교수의 연구는 정부예산 400억원이 지원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며 황우석 사태에 대한 '정부책임론'을 들고나왔다.
ⓒ 조선 PDF
<조선일보>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역시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슬쩍 도망갈 때. 많은 이들이 <조선일보>의 도주로를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슬쩍 발을 빼며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노무현 정권에게 뒤집어씌우려 들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런 행태를 보이리라는 것은 종을 치면 침을 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의 행태만큼 명증한 사실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우석이 잘 나갈 때는 야박한 정부가 황박사의 연구를 "소폭 지원"했다고 불평하더니, 황우석이 무너지는 듯하자 갑자기 멍청한 정부가 황우석을 "대폭 지원"해왔다고 말한다. '소폭'과 '대폭'은 논리적으로 서로 배척한다. 어떻게 소폭 지원이 동시에 대폭 지원이 된단 말인가? 논리를 초월한 이 심오함이야말로 <조선일보>의 두개골을 채우는 생명의 신비다.

줄기세포도 포기하다

언젠가 줄기세포의 비밀은 해명될지 모르나, A와 ~A가 동시에 성립하는 <조선일보>의 두개골 속 사정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고 남을 것이다. 언젠가 황우석 박사가 무덤에서 일어나 줄기세포 연구에 성공하면, 이 분들의 뇌부터 치료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줄기세포가 환자 맞춤형이라니, 고민이다. 얼빠진 환자의 머리를 그대로 복제한 맞춤형 머리라고 어디 기능이 온전하겠는가.

결국 황 박사의 창작 시나리오대로 노성일 박사가 김선종 연구원을 시켜 미즈메디에서 확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수정란 줄기세포로 바꿔치기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는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난다고 하니,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줄기세포가 모든 난치병을 치료해도, 이성과 합리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조선일보>의 뇌만큼은 영원히 난치병으로 남을 것인가?

사과가 익어가는 방식

용서? 사과는? 12월 24일자 <중앙일보> 31면 '중앙 포럼'. 이 글에서 이연홍 논설위원은 난데없이 "좌도 우를 용서하세요, 우도 좌를 용서하세요"라고 말한다.
ⓒ 중앙 PDF
몇몇 언론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겸허한 반성을 했다. 제일 먼저 <헤럴드경제>가 지면을 통해 독자에게 사과를 했다. 기계적 균형을 유지했던 <경향신문>은 자신들의 용기 없음을 반성했다. 방송사 중에서는 SBS가 국민을 오도한 점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런데 황우석팀의 진실은폐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YTN만은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계속 뺀질거린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조·중·동은 사과를 하는 방식도 변태적이다. 먼저 <조선일보>를 보자. <조선일보>는 스스로 반성을 하는 대신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이라는 웃지 못할 타이틀을 소유하고 있는 이화여대 유세경 교수를 내세웠다. 진실의 규명을 외면한 경마식 보도행태 등, 그의 지적에는 틀린 말이 없다. 하지만 유 교수는 정작 <조선일보>가 저지른 범죄적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황우석을 내세워 군중을 선동하고 좌파 사냥을 한 점. 이걸 뺀 반성은 반성이 아니다.

<중앙일보>의 변명은 실소를 자아낸다. 중앙포럼이라는 데에 실린 이연홍 칼럼에서 몇 구절 인용해 보자. "황우석도 노성일을 용서하세요. 노성일도 황우석을 용서하세요. … 좌도 우를 용서하세요. 우도 좌를 용서하세요. 그리고 용서받으세요. 좌가 어디 있고 우가 어디 있나요. 우리 속의 하나잖아요." 이제 와서 우리가 '하나'란다. 이거 읽고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여기에 대한 코멘트는 딱 한 줄이다. '이연홍씨, 웃기고 자빠지셨어요.'

황우석에게 준 인촌상을 슬쩍 취소하고, 부랴부랴 어린이용 황우석 위인전도 수거하고 있다는 <동아일보>. 아주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의 반성문 하나 올리고 대충 넘어갈 태세다. 정부도 잘못하고, 과학계도 잘못하고, 국민도 잘못하고, 언론도 잘못하는 와중에 <동아일보>라고 조금 잘못을 안 할 수는 없었다는 식이다. 여전히 "원천기술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황 박사의 후속논문은 <동아 사이언스>에서 실어주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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