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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공무원의 승진과 관련 형평성 문제를 재고하기 위해 마련된 경찰공무원법 개정안 추진과정에서 벌어진 당정청의 엇박자가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26일 국회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ㆍ중앙위원 워크숍.
경찰공무원의 승진과 관련 형평성 문제를 재고하기 위해 마련된 경찰공무원법 개정안 추진과정에서 벌어진 당정청의 엇박자가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26일 국회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ㆍ중앙위원 워크숍.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때문에 법안 처리가 안된다"는 열린우리당의 핑계가 무색해졌다. 경찰공무원의 승진과 관련 형평성 문제를 재고하기 위해 마련된 경찰공무원법 개정안 추진과정에서 벌어진 당정청 소통 문제가 그렇다.

경사로 일정 기간 근무하면 별도의 시험을 치르지 않고 경위로 자동승진할 수 있고, 또 순경·경장·경사 등 하위직의 근속승진 기간을 6, 7년으로 각각 1년씩 단축하고 경사에서 경위로 근속승진 기간을 8년으로 신설 규정하는 것이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의 골자.

이 법안은 여야 합의로 행자위를 통과했지만 지난 8일 종합부동산세 강행 처리에 반발한 한나라당이 본회의 참석을 거부하는 바람에 열린우리당이 다른 야당과 공조해 처리한 법안중 하나다.

그런데 정부와 청와대는 예산과 다른 공무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뒤늦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고, 노 대통령의 거부권 얘기까지 나왔다. 이에 당정청은 26일 급하게 회의를 갖고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안을 접는 대신, 정부가 오는 2월 임시국회에 재개정안을 내는 것으로 일단 봉합했다.

5년 동안 3천억원이나 드는 법안... 소방직과 지방직 등 형평성 제기

하지만 논의과정에서 드러난 당정청 엇박자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간부회의에서 "정부내 조율을 안 거치고 충분한 검토 없이 법을 만드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당과 행자부, 경찰청, 총리실 등의 책임을 두루 꼬집었다.

지난 10월 이 법안을 발의한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당론으로 추인하는 과정에서 당 정책위에서 아무런 이의제기가 없었다"며 "행자부, 기획예산처, 총리실 등에선 반대 입장을 당에 전달했다고는 하지만 문제점이 걸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의원입법은 당정협의 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원혜영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정협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의원입법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조직이나 인사관리에 관한 법률은 당론으로 추진될 것이 아니라 당정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원 의장은 또 "(이 개정안에 대해) 정조위, 상임위 차원에선 논의를 해왔지만 의원 주도로 되다보니 통일성 있는 당정협의를 갖지 못했다"며 논의절차가 허술했음을 시인했다.

당정의 이 같은 소통 미숙이 가져온 파장은 적지 않았다. 청와대와 행자위 등 관계 기관 홈페이지에는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둘러싼 찬반 격론이 일었고, 소방직·교정직·지방직 공무원과 형평성 시비가 일면서 공무원 사회가 들썩였다.

이해 당사자랄 수 있는 경사 이하 경찰 공무원은 8만5천명(전체 85%)이고, 2만8천 소방직 공무원들의 사기 문제도 적지 않다. 또 이 개정안으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예산은 내년 한해 260억원에 달하며, 5년이면 3천억이라고 한다. 이 법을 소방직 등 유사직종으로 확대하면 5년간 1조8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든다고 정부 스스로도 밝히고 있다.

민노당 "심각하고 황당한 상황"... 한나라당 "경찰법 놓고 오락가락"

야당의 비난 공세도 예정된 것이었다. 박용진 민주노동당은 여권의 대통령의 거부권 논의와 관련 "의회의 잘못된 결정이나 오류에 대해 시정과 재검토의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대통령 거부권"이라며 "그런데 이번의 경우 국회와 행정부간 견제의 차원이 아니라 여당과 정부, 청와대 간 갈등과 의사소통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상황이 심각하고 황당하기까지다"고 혀를 찼다.

전용철, 홍덕표 등 농민 사망과 관련 허준영 경찰청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대통령과 정부가 경찰공무원들에게 혼란과 자괴감을 유발하는 무능력과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면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허준영 경찰청장 한 명만 감싸고 있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여당 스스로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해온 한나라당에게도 빌미를 내준 꼴이다. 이계진 대변인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경찰법을 놓고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사학법 날치기를 궁리하느라고 정작 민생과 관련된 법안은 청와대가 여당과 검토와 협의도 제대로 못했다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이 대변인은 "청와대는 여야가 합의한 법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야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불법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하니 청와대가 혹시 '개구리 와(蛙)'자 청와대는 아닌가"라고 비꼬았다.

당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법사위원은 "여당이 당론으로 추진하고, 여야가 합의한 법안에 대해 정부가 곧바로 개정안을 내게 되면 입법부의 꼴이 우스워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 개정안 공표 뒤 곧바로 보안입법

한편 이날 당정협의를 통해 정부는 일단 내년 3월 현행 개정안을 공포한 뒤, 곧바로 보완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법안에서 정부는 경위까지 자동 근속승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은 담되 구체적인 근속승진 기간은 시행령에서 규정키로 했다.

원혜영 의장은 "법의 기본 골격이라 할 수 있는 근속 승진의 취지는 살리되 구체적인 연한은 시행령으로 규정해서 다른 직종 공무원들에 관련된 인사 및 조직 규정과 일치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 법안에서 규정된 순경·경장·경사·경위 등의 근속승진 기간이 그대로 시행령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원 의장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고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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