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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밤 방송된 황우석 교수의 난자 줄기세포 관련한 MBC PD수첩 방송화면.
지난 15일 밤 방송된 황우석 교수의 난자 줄기세포 관련한 MBC PD수첩 방송화면. ⓒ MBC화면

"황 교수는 언제 처음으로 환자유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성립됐는지를 기억하지 못했고, 테라토마 실험을 어디서, 누가 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과연 줄기세포는 만들었으나 기억을 잘 못한다는 것이 진실이었을까?"

MBC < PD수첩 >팀이 지난 '황우석 연구논문의 진실'을 추적하던 과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

< PD수첩 >팀의 김보슬 PD는 지난 27일 발행된 <문화방송 노보> 특별기고 'PD수첩 이렇게 제작되었다'는 글을 통해 2005년 사이언스 표지논문 조작을 추적하게 된 동기와 과정, 고통과 고민을 생생하게 털어놨다. 김 PD는 최승호 책임PD, 한학수 PD와 함께 난자매매 의혹부터 황 교수 연구 의혹을 추적해 온 담당자다.

김 PD는 이 글에서 < PD수첩 >이 어떻게 처음 제보를 받았는지, 제보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제보하기에 이르렀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또 김선종 연구원을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쫓아간 이유와 황우석 교수팀과의 이면합의 과정, 그리고 그 합의가 어떻게 깨졌는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특히 김 PD는 취재 과정에서 황 교수가 보여준 모습을 통해 연구논문이 허위로 작성됐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제보자들, 스승 공격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우선 김 PD는 제보자들을 만나게 된 사연을 밝히면서 그들이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상세히 소개했다.

김 PD는 "그들 중 한명은 그 동안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엄청난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렸고,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들어준 것만으로도 많은 짐을 덜었다'며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제보자는 '국민들에게 황우석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얘기들이 얼마나 받아들여질까, 지금 하는 얘기들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각오하고 있다'며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고 썼다.

이어 제보자들이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스승을 공격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괴로움을 느낀다"며 고민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제보를 바탕으로 한 취재 과정에서 줄기세포의 실체를 보지 못한 논문 공동저자들이 상당수라는데 놀랐던 < PD수첩 >팀은 연구결과가 상당부분 부풀려졌다는 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 뒤 김 PD는 '결정적 증언'을 듣기 위해 한학수PD와 함께 피츠버그대학의 김선종 연구원을 찾아갔다.

김PD는 이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위반한 사실에 대해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을 각오하고 왔음에도 막상 현실 속에서는 그런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던 것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잘못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사죄 드리고 싶다"고 머리를 숙였다.

MBC는 <PD 수첩> 취재진이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논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4일 '9시뉴스'를 통해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MBC는 취재진이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논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4일 '9시뉴스'를 통해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 MBC화면촬영
"황 교수, 언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성립됐는지도 몰랐다"

한국에 돌아와 황우석 교수 연구팀을 만난 김 PD는 인터뷰 과정에서 더 큰 확신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김 PD는 "약 4시간 동안 계속된 인터뷰 내내 황 교수는 미리 준비해 온 듯 답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제작진의 질문에 연구진들과 혼선을 빚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125년 역사의 <사이언스> 표지를 장식했던 그 대단한 논문의 제1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더라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PD는 "황 교수는 언제 처음으로 환자유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성립됐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테라토마 실험을 어디서 누가 했는지도 알지 못했다"며 "과연 줄기세포는 만들었으나 기억을 잘 못한다는 것이 진실이었겠느냐"고 말했다. 황 교수의 미심쩍은 답변과 태도가 제작진의 의혹을 더 키웠다는 것이다.

김 PD는 또 DNA 검증을 위해 샘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황 교수팀이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특히 김 PD는 황 교수측이 최초 제보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것까지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애초 황 교수가 요구한 계약 내용에는) 심지어 (DNA검사) 결과가 제보자가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나올 경우 그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에 MBC가 협조해 줄 것을 요구하는 문항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PD는 마지막으로 "비록 취재윤리를 어겨 MBC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죄는 지워지지 않겠지만 '특종에 환장한 꼴통'들이 아닌 '진실에 환장한 꼴통'들을 믿어주신 조합원들에게 PD수첩 제작진 모두가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거듭 사과의 말을 남겼다.

다음은 < PD수첩 >의 김보슬 PD가 MBC노보에 기고한 제작기 전문이다.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진위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MBC <PD수첩> 최승호 CP와 한학수 PD가 지난 2일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황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검증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진위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MBC 최승호 CP와 한학수 PD가 지난 2일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황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검증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PD수첩 > 이렇게 제작되었다

< PD수첩 >이 어떻게 제작되었고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제작진이 밝히는 취재후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PD수첩 제보란에는 하루 평균 20~30여 건의 제보가 올라온다. 주로 개인적인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단체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6월 1일. 제보란에 '황우석 교수 관련한 제보'라며 쓰여 있는 내용은 기존의 것들과는 너무나 다른 충격적인 것이었다. "2005년 논문은 거짓이다."

이런 엄청난 제보를 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제보자들을 만나기 전 그들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그들이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과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핵심연구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5년 논문의 허위 여부는 모두 취재진이 밝혀야하고 또 그것이 제보자의 추론과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 결론 날 경우, 우리는 엄청난 시간과 인력만 낭비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필자가 처음 제보자들을 만났던 것은 8월 초, 정식 인터뷰를 하던 날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그동안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엄청난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렸고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들어준 것만으로도 많은 짐을 덜었다며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약 3시간 넘게 지속된 인터뷰. 내용은 제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특히 2005년 논문의 허위뿐만이 아니라 그간의 모든 업적들을 다시 한 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2005년 논문이 허위라는 것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제보자는 국민들에게 황우석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얘기들이 얼마나 받아들여질까, 지금 하는 얘기들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각오하고 있다며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스승을 공격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괴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제보자들은 하나같이 취재하는 몇 개월간 우리가 허위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수십 번 오락가락할 때조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우리가 취재를 계속할 수 있게끔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바로 제보자들이었다.

우리는 시사교양국의 모든 국원뿐 아니라 < PD수첩 >의 같은 팀원들에게조차 비밀로 한 채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이미 2달 여 간의 사전 조사작업이 이루어진 상태였고 취재할 대상을 작성한 목록만 15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그리고 취재라인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외곽에 있는 사람들부터 취재해 나가며 제보자의 모든 증언들을 하나하나 검증하기 시작했다.

2005년 논문의 허위와 함께 제보했던 난자매매와 관련한 내용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정말 믿기 힘든 2005년 논문의 허위 가능성도 점점 높아져갔다. 다만 황우석 교수팀은 그들이 언론을 통제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섭외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특히 수의대 내부를 취재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연구원들조차 황우석 교수의 허락없이 접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기취재는 주로 미즈메디병원과 공동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25명에 달하는 논문의 공저자들을 만나면서 전혀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논문에 버젓이 이름이 올라 있다는 데 놀랐고, 줄기세포의 실체를 보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점점 실제 핵심인력들에 접근해가면서 줄기세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고, 연구결과가 상당부분 부풀려졌다는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10월 말, 미국으로 김 연구원을 만나러 가면서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그가 정말 진실을 모른다면, 그리고 알더라도 말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 엄청난 일에 대해 그는 난생 처음 본 낯선 이들에게 과연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그 날이 계대배양하는 날이라며 곧 연구실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 안에 결코 얻기 쉽지 않은 증언을 들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무리한 취재를 하게끔 만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두 달 동안 현장을 뛰어다니며 취재한 내용 중에서는 '2005년 논문이 거짓이다'라는 명제를 확립시킬 만한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키를 쥐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김 연구원의 증언이 더욱 절실했던 것이 사실이다.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을 각오하고 왔음에도 막상 현실 속에서는 그런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던 것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잘못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사죄드리고 싶다. 여담이지만 사실 그 때 6mm카메라와 몰카, 그리고 녹취용 MP3를 함께 돌리고 있었지만 김 연구원의 결정적 증언은 테잎이 다 돌아간 후 MP3에만 녹음이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MP3가 에러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 결정적 증언이 녹음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게 된 것은 서울에 도착해서였다. 며칠을 애간장을 태웠던 증언인데 결국 취재윤리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나니 그 때 차라리 녹음이 안 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김 연구원과의 대화. 그는 2005년 논문이 허위라는 우리의 이야기에 대해 큰 충격을 받은 듯 했고 모르는 사실이라며 부정했다. 그러나 신원보장에 대한 확답을 받아낸 후에야 비로소 중요한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황 교수의 지시에 의한 데이터 조작. 김 연구원과 함께 있는 박 연구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박 연구원은 바로 황 교수에게 확인해보겠다며 우리의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황 교수팀이 우리가 2005년 논문의 허위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한국에 돌아온 후 황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촬영이 아닌 녹취만을 허락한 인터뷰였다. 밤 9시 반, 수의대에는 황 교수뿐만 아니라 이병천, 강성근 교수를 포함한 공동저자들 1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안규리 교수와 황 교수의 대리인이라는 윤태일을 처음 만난 것도 그 자리에서였다.

황 교수는 한학수 선배와 나를 앉혀놓고 체세포 복제에 대한 브리핑을 10여 분간 하고 난 후 연구실 모니터를 통해 새로 만든 줄기세포라며 몇 개를 보여주었다. 공동 저자들도 신기한 듯이 그 줄기세포들을 구경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도저히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당당한 모습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새로 루프스 환자의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이건 또 뭐지?

그리고 시작된 인터뷰. 약 4시간 동안 계속된 인터뷰 내내 황 교수는 미리 준비해 온 듯 답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제작진의 질문에 연구진들과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125년 역사의 사이언스 표지를 장식했던 그 대단한 논문의 제1 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더라는 것이었다.

황 교수는 언제 처음으로 환자유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establish되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고, 테라토마 실험을 어디서, 누가 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과연 줄기세포는 만들었으나 기억을 잘 못한다는 것이 진실이었을까?

며칠 후 번호를 특정해주지 않고 줄기세포 4점만을 주겠다는 것에 합의를 보지 못해 1차 인수에 실패하고 안규리, 문신용 교수의 도움을 요청했다. 안규리 교수는 한학수 선배와 김형태 변호사가 함께 한 자리에서 2005년 논문이 허위라고 믿고 있는 우리에 대해 그동안 무척 걱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의혹을 풀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에게 세포를 주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끔 하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동의했다.

안규리 교수는 처음에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2005년 논문에 대해 실질적으로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것이 허위라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확신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실제로 논문 조작 데이터가 발견되고 공론화 됐을 때조차 믿지 않았다고 하니 안 교수로서는 그런 조작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람이며 따라서 믿기 힘들었을 거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2차 샘플 인수 날, 수의대 회의실에는 10여 명의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세포를 인수하기 앞서 계약서를 작성하길 요구했다. 이미 문구는 다 갖춰놓은 상태였고, 사인만 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우리가 절대 합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심지어 결과가 제보자가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나올 경우 그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에 MBC가 협조해줄 것을 요구하는 문항도 있었다. 1시 간 가량의 실랑이 끝에 문구 하나하나를 고치고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경우 1주일 안에 재검을 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이후 세포를 분리하기까지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고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DNA 분석을 의뢰한 후 기다리는 며칠, 정말 그것이 가짜라면 절대 주지 않았을 텐데, 그럼 진짜 만들었던 것일까? 결과만 나온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말 어이없게도 검사 결과는 오로지 2번 줄기세포 하나에서만 확실히 나왔고, 4번은 불충분한 데이터가 나왔다. 그 날 검사결과를 알리며 만난 자리에서 황 교수는 계약서에 나와 있듯이 재검에 응하겠다며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며칠 후 대리인인 윤태일만 나와 재검에 응할 수 없음을 통보했다.

이후 난자의혹을 방송한 후 쏟아진 엄청난 인민재판과 2005년 논문의 진위여부에 대한 황 교수 쪽과 PD수첨 팀의 끝없는 공방, YTN의 보도와 MBC의 취재윤리 위반에 대한 즉각적인 사과, 그리고 PD수첩의 방송유보 결정까지 일련의 상황들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제작진에게는 이 기간이 취재윤리위반으로 진실이 발목잡혀버린 참담한 상황을 목도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Bric이라는 사이트에서 제기된 논문의 사진 중복과 DNA 자료에 대한 의혹들이 밝혀지면서 '논문의 진위여부'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과학계에선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됐으며, 한국의 젊은 생명공학도들이 앞장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어 노성일 원장의 폭탄선언과 함께 방송이 결정되고 그동안 입에 재갈이 물려져 있던 < PD수첩 >은 지난 15일 밤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를 외치고 있었다.

난자의혹이 방송되기 전 여론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을 때 최승호 선배는 사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믿어달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후에는 다 말하지 못했음에도 믿어준 구성원들에게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비록 취재윤리를 어겨 MBC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죄는 지워지지 않겠지만, 특종에 환장한 꼴통들이 아닌 진실에 환장한 꼴통들을 믿어주신 조합원 여러분께 필자를 비롯한 PD수첩 제작진 모두가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아직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MBC는 언제나 늘 옳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서로가 더욱 신뢰하는 하나의 MBC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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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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