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2월에 수료했던 참가자들을 엑셀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 속에서 자꾸만 용트림을 하는 통곡을 목안에서 삼키고, 힘을 줘도, 어느 순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와 버린 골 깊은 울음소리다. 눈이 아닌, 가슴으로 우는, 여인. 저 안에는 어떤 삶이 들어 있을까? 온 신경이 파르르 일어선다.

엑셀 속에 저장된 수료자들 명단이 자꾸만 흔들린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행여나 상담에 방해가 될까봐 컵을 들고 그 앞을 지나간다. 내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취업지원 상담 창구 안에서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구직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두 번 만남도 아니고, 첫 만남에서,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눈물들이 계곡물처럼 흘러내리는 저 여인의 절박함은 무엇일까?

▲ 구직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내부전경
ⓒ 이명숙
그녀는 법학을 전공한 36세 여성 구직자였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했다. 사랑만 있으면, 세상은 저절로 살아지는 거라 여겼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동안 사랑이라는 가면 속에 숨은 세월은 가슴 속에 허전함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텅 빈 집안에 홀로 앉아 있으면, 가슴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이렇게 살려고 대학까지 나왔나.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남편 수발 들고 이런 일 하려고 비싼 학비 내가며 힘들게 공부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자학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 남편에게 매이게 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남편이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시댁 행사가 있을 때는 돈 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다가도, 친정행사가 있어 한 푼이라도 낼라치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전업주부도 일이잖아. 당당한 가사노동을 제공하잖아' 스스로 위안을 해도, 생각을 가다듬기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갖고 싶었다.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인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 주변에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었다. 사방팔방 가로막힌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에 그녀는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노동시장을 대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실내건축 기술이나 기능이 있으면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직업훈련 실내건축과정을 받기도 했다. 공부한 김에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이 쉬워질까 싶어 실내건축기능사, 건축도장기능사자격증까지 취득을 했다. 꾸미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내부 장식을 이리 저리 해 보면서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기회만 된다면 모델하우스 디스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36세 기혼여성이 갈만한 실내건축자리는 없었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절약해가며, 남들처럼 살아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갈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져만 갔다. 우연히 일간지 신문기사에서 정신지체 학습보조교사 교육정보를 배워놓으면 취업이 쉬워질까 싶어 교육을 받기도 했다. 정신지체 학습보조교사를 염두에 두고 혼자 공부를 해 보다 힘들어 내년에는 야간 사회복지 대학원에 진학해 보려고 입학지원서를 제출해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말을 하는 중에도 자꾸만 단어들이 목에 걸렸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셨어요"라는 담당자의 말 한 마디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나 힘들어요. 정말로 일이 갖고 싶어 죽겠어요. 제발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싶어도 마음 속으로 꾹꾹 눌러야 했던 그녀의 외침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다독여주는 취업지원담당자를 보자, 그동안 설움이 그대로 터져 나온 것이다.

"사회복지관련 일을 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사회복지기관을 방문해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알아보는 거예요. 현장에서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보고 그 분야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은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보는 일부터 시작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다 자원 봉사를 하셔도 되고, 직원들이 하는 일을 도와줘도 되고 그러다 보면 이 일을 본인이 할 수 있는지, 맞지 않은지 가장 확실하게 알 수가 있게 돼요."
"……."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복지관련 일을 하려면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봉급도 많지 않을 뿐더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힘들어요. 먼저 확인해 보고 할 수 있겠다 싶으면 공부도 하시고 사회복지사 준비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열심히 하시다 보면 어차피 서로 연계가 되어 있으니까 뜻밖에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해요."

취업지원 담당자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 사회복지사의 업무는 물론 사회복지기관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해 준다.

"일하고 싶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받고 싶은데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가능성이 있다, 희망이 있다는 말 한마디 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남들은 지금 니가 일이 없으면 굶어 죽기를 하냐.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라고만 했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이렇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녀의 눈물은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의 표현이기도 했다.

▲ 취업희망본부 고용안정센터 알림판
ⓒ 이명숙
기혼여성에 대한 일자리 문제가 나오면 가장 먼저 대두되는 것은 육아문제다. 그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고학력자들의 일자리 문제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지고 있는 주부들이 갈만한 일자리는 전문직이 아닌 이상 거의 없다. 그게 현실이다.

자아실현욕구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지만 그것을 실현시켜줄 사회적인 기반이 취약하니까, 마음살을 앓는 것이다. 이야기할 친구도 도움을 받을 만한 기관도 없이 절박한 마음에 혼자서 동동 구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왔다 가슴에 맺힌 이야기들을 편견 없이 들어주니까 절절한 울음을 토해낸 것이다.

그녀는 한 시간이 넘게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일은 생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일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도구다. 기혼여성 고학력자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기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