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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밤 11시가 넘어서야 과외를 마치고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동생이 놀란 목소리로 '서문시장 2지구에 불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부모님 삶의 터전까지 화마가 닿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새 저는 케이블뉴스와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사고소식들을 계속 끌어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을 뿌리는 위치가 부모님 가게 근처라 조마조마 했는데, 새벽 5시에 들어오신 부모님의 하얗게 질리신 얼굴을 보고서는 그제야 그 예감이 적중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 타버렸다"는 부모님 말씀에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새벽 5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 저는 너무 황망한 사실에 잠을 뒤척였습니다.
다음 날 9시가 조금 못 돼서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사태를 확인하시러 먼저 나가셨고, 저는 어머니가 걸려오는 위로전화를 받으시면서 약간씩 훌쩍이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서도 약간은 웃으시면서 "어떻게든 풀리겠지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전화기 벨소리가 멎어지자 어머니도 나갈 준비를 하시면서 말씀하시더군요.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니. 엄마는 형제도 많으니 형제들 도움만 조금씩 받는다 쳐도 너희들 굶길 일은 없을 거다. 걱정 말고 집 잘보고 있어."
나가시는 뒷모습 보면서 저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이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으셨으니 부모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드시겠죠. 그러시면서 '걱정 말라'고 다독이고 나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저도 마음 한켠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어머니가 나가신 이후에도 집 전화는 계속 울렸습니다. '너희 집은 괜찮느냐',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고요.
그날 부모님은 소방서의 화재 진압 과정에서 미숙했던 점들과 전경이 갑자기 막아 '장부밖에 건지지 못했다'는 말씀도 하시면서, 일단 진정하시려 했습니다. 저녁을 드시고는 9시뉴스도 제대로 보지 못하신 채 쓰러져 잠드셨습니다.
저녁을 먹던 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다음날 서울에 친구들을 만나러 갈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집안 분위기가 이러한데 어떻게 제가 놀러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뭐, 안가도 돼.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뭐"라면서 올라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니다. 집에 일이 이렇다고 네가 거기 못 갈 이유는 없다. 기죽지 말고, 신나게 놀다 와야 한다"면서 가라고 종용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제 손에 '기차표 끊을 때 쓰라'며 신용카드를, 아버지는 '가서 경비로 쓰라'며 5만원을 쥐어주셨습니다.
안 간다고 떼를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떼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부모님의 얼굴은 너무나도 지쳐있는 모습이었고, 저까지 이런 사소한 걸로 징징거린다면 그것은 '효의 탈을 쓴 불효'라는 생각에 그냥 부모님 말씀을 따랐습니다(그래도 죄송해서 선물을 하나 샀는데, 아직 전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1박 2일 서울에 갔다 온 뒤 집에 돌아온 날이 서문시장 상인들이 소방파출소를 점거하고 책임 추궁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경찰에게 단지 '책임자가 누구냐'라고 물어본 것 밖에 없는데 '난동을 피우면 안 된다'는 대답을 들으셨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격분하셔서 '지금 이게 난동으로 보이냐'면서 호통을 치셨다고 하셨고요.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데, 지금 서문시장 상인들은 '난동을 부릴 예비범죄자'로 경찰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했습니다.
더더욱 속이 상한 건 점점 이 사건이 묻혀갈 조짐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방송에서는 상인들의 억울한 사연은 자취를 감추고 있고, 중앙일간지에서는 비중조차 없는 기사거리로 전락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부모님이 또다시 상처를 입으실 것 같습니다. 지금도 주차빌딩 사용 문제 때문에 다른 지구 상인들과도 마찰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힘 빠지는 일입니다.
제가 여기에 글을 쓰게 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더 이상 우리네 부모님들이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모진 세월 견뎌 오신 분들이시기에 강하신 분들이지만, 여기저기 '힘을 빼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주저앉기도 쉬우신 분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온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