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어장에서는 동해안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고깃배가 와서 조업을 했었다. 위도 치도리에는 일본인 어부를 위한 유곽까지 들어서기도 했다. 특히 조기떼가 몰려들고 조기울음소리가 칠산바다를 덮을 때면 전국 각지의 고깃배와 장사꾼들이 칠산어장의 중심지인 위도로 몰려들어 파장금항엔 파시(波市)가 들어섰다. 3월에서 6월까지 파시가 들어서면 파장금 맞은 편에 있는 식도에까지 칠팔백 척의 고깃배가 빽빽하게 들어서 밤이 되면 일대가 불야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들이 잡는 조기의 양은 배 한 척당 평균 50~60동이었다. 1동은 1000마리이니 대략 이곳에서만 4천만 마리의 조기가 잡혔던 셈이다. 1970년대 초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던 위도 파시는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서해 3대 파시로 유명했다.
이처럼 어장이 형성되었던 이유는 배후에 드넓은 갯벌이 있기 때문이었다. 갯벌은 조개나 캐다 먹은 검은 땅이 아니다. 바다 생물종의 70% 정도가 갯벌에서 알을 낳고 어린시절을 보낸다. 어린 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조금 큰 고기가 몰려오고 이를 잡아먹기 위해 더 큰 고기가 몰려와 먹이사슬을 이루어 자연스레 어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갯벌은 해양생태계의 출발이며 육지로 치면 1차생산자인 목초지와도 같다. 다시 말해 칠산어장의 풍요는 새만금 갯벌이 있기 때문이었다.
밀물 때 만경대교에서 바라보는 만경강은 참으로 장관이다. 바닷물이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하구 둑으로 다 막아 버린 다른 강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강 하구에 댐이 없는 만경강과 동진강에서만 볼 수 있다. 썰물 때면 치고 올라간 바닷물이 다시 후퇴하기 시작한다. 간조가 되면 끝 간 데 없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고 간신히 갯골을 따라 강물이 육지에서 갯벌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먹이인 온갖 유기물질을 싣고 내려와 풀어놓는다.
따라서 하류일수록 바닷물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 염분농도가 높고 상류로 갈수록 염분 농도가 옅어진다. 다양한 염분 농도가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이처럼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곳에는 서식 환경이 위치에 따라 급격하게 달라진다. 따라서 강 하구를 틀어막지 않은 하구 갯벌은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어족자원의 보고인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를 멀리 둘러서 틀어막으며 하구역 갯벌을 없애는 공사이다. 33km 방조제가 뻗어나가며 전북의 포구가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1방조제 안쪽 부안군 하서면 돈지 포구, 이장이 5명이나 되었던 돈지 포구가 가장 먼저 폐허가 되었고, 108세대 가운데 102세대가 갯벌에만 의지해 살던 군산 내초도 주민들은 이미 갯벌을 포기했다. 젊은이들은 다 빠져나갔고 노인들만 남아 쓰레기 분리수거 작업장에 나간다. 280명이나 되던 내초초등학교 학생들은 9명으로 줄었다. 멸치잡이배의 흥겨운 ‘세노야’ 가락으로 넘실대던 하제포구엔 폐선들만 즐비하다.
보석같은 소금을 담아내던 옥구염전엔 골프장 농약병이 나돌며, 칠산바다를 장엄하게 물들이며 함지로 들어가던 해를 보던 심포항엔 인적이 끊어졌다.
방조제가 뻗어나가며 물길이 달라지자 방조제 밖에서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특히 칠산어장의 중심인 위도 어민들의 피해는 막대한 것이었다.
"저 앞 치도로 들어가는 뻘이 옛날에는 축구를 하고 놀 정도로 딴딴했어요. 그런데 새만금 막으면서 점점 여기 말로 죽뻘이 쌓여 지금은 푹푹 빠집니다."(2003년 7월 위도주민 서대석씨)
유속이 둔화되면서 위도 일대의 해역에 뻘이 차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위도 돌아다니면 도로에 막 그물을 널어놓았는데 이게 일종의 시위를 겸하고 있습니다. 차가 다닐 때 위험하고 냄새도 나고 해서 면이나 파출소에서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닌데 시위적으로 널고 있어요. 이게 새만금하고 연관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방조제를 막아서 물의 유속이 죽다보니까 뻘이 차오릅니다. 어느 정도냐면 어초를 심은 것이 다 묻혀버릴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물을 쳐 두면 때꼽째기라고 하는데 그물에 때꼽째기가 잔뜩 끼어 나오고 그물이 막히는 겁니다. 그러면 고기가 안 잡힙니다. 그래서 이걸 말려가지고 일일이 전부 도리깨질을 해서 텁니다."(2003년 7월 위도주민 서대석씨)
이러다 보니 그물을 말려 터는 동안 1~2천만 원의 돈을 들여 그물 한 벌을 더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어족자원이 줄다 보니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가야 되고 배가 더 커져야 했다. 따라서 기름값도 더 많이 들었다. 어민들은 점점 눈덩이 불어나듯 늘었다.
소득은 줄면서 재투자는 더 늘어나니까 결국 빚이 늘어나게 되었다. 위도에서 어장을 하는 배들이 10여년 사이에 3배로 커졌고 빚도 3배로 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폐기장을 유치하면 위도 발전을 100년은 앞당길 수 있으며 현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 핵폐기장 유치 찬성 도장을 찍어주었다.
해양수산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어획량은 공사 이전의 1/3 수준으로 줄었다. 변산반도 끝머리에 있는 격포항의 어민들도 "그 흔전만전했던 주꾸미, 전어도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며 방조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칠산어장은 위치상으로 보아 서해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새만금 갯벌 파괴로 인한 어장황폐화는 칠산어장에 국한하지 않고 서해 전역으로 파급될 것으로 보인다.
방조제 안에만 어민 2만여 명이 살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이 “새만금사업을 계속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리던 날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서울에 올라왔던 이들 어민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좌절을 안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같은 시각 저녁 전북도청에서는 불꽃놀이 행사가 열렸다. '고등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농악이 울려 퍼졌으며 새만금간척사업 만세삼창이 터져 나왔다. 이날 강현욱 도지사는 새만금 갯벌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510m짜리 타워를 짓겠다고 하더니 지난 1월 2일 도지사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김완주 전주 시장은 익산에서 새만금까지 자기부상열차를 놓겠다고 하였다.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은 채 이들 정치인들의 ‘개발 환상곡’은 그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