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성 혐오와 여성 예찬은 동시에 존재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숭배와 찬미의 대상이지만, 여성이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점은 여성을 비하하고 가치절하 하는 한 이유가 된다. 반대로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여성은 게으르다거나 예의가 없다고 평가된다. 여성인 이상 이 그물을 피해갈 수는 없다. 권장되는 방법은 가운뎃길이다. 외모를 가꾸되,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인상을 주는 것, 즉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는 '뒤로 호박씨 까는 존재'가 될 것이다.

▲ 이케가미 슌이치, <마녀와 성녀>
ⓒ 도서출판 창해
여성의 대표적인 두 이미지는 '어머니'와 '창녀'다. 여성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 두 잣대는 모순적으로 사용된다. '이타적인 어머니'는 '뻔뻔스럽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이기적인 존재'로 비하되기도 하며, '비난받아 마땅한 창녀'는 어느 순간 '남성의 영혼을 구원하는 존재'로 찬미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이중적 이미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어머니'는 성녀를 상징하고, '창녀'는 마녀를 상징한다.

이케가미 슌이치의 <마녀와 성녀>는 마녀의 특징과 성녀의 특징이 거의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마녀와 성녀는 둘 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는데, 마녀는 악마의 환영술을 통해 환시를 보고, 성녀는 신을 통해 성스러운 환각을 경험한다. 마녀는 불가사의한 통찰력으로 타인의 마음이나 미래를 읽어낼 수 있고, 성녀 역시 그러하다. 둘 다 신체에 초자연적인 표시를 부여받는데, 마녀의 경우는 악마의 흔적이고, 성녀는 성흔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마녀사냥으로 많은 여성이 화형대에 세워졌던 바로 그 시기에 또한 많은 여성이 성녀로 추앙되었다는 것이다.

마녀와 성녀의 특징이 유사하다는 것은 그 구분이 상당히 자의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저자는 대표적 사례로 잔 다르크를 제시한다. 그는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 당했으나, 죽은 뒤에 성녀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종교적 갈등, 사회 변화로 인하여 불안해진 공동체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교도인 여성들, 기존의 질서에 위협이 되는 여성들을 마녀로 '지명'했다.

▲ 장 미셸 살망, <사탄과 약혼한 마녀>
ⓒ 시공사
장 미셸 살망의 <사탄과 약혼한 마녀>는 마녀사냥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녀를 식별하는 터무니없는 기준을 보여 준다. 마녀로 의심되는 여성을 묶어 돌을 매달아 강에 빠뜨린다. 만일 그가 마녀라면, 악마는 그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물 위에 떠오를 것이다. 결국, 그는 죽음으로써만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반대하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마녀사냥이 승했을 때에는 반대자 역시 희생물이 되기 일쑤였다. 마녀와 성녀가 함께 모습을 감추는 것은 17세기 중반 이후로, 과학적 합리주의가 고개를 들고 프로테스탄트가 성자 숭배를 비판하였던 무렵이다. 그러나 일그러진 여성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17,18세기에는 여성혐오가 한층 더 심해졌고, 여성 공포와 여성숭배는 19세기 낭만주의의 주요 테마이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이중적 시선은 그 형태만을 바꾸며 지속되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마녀와 성녀>(이케가미 슌이치, 창해, 2005)는 중근세 유럽에서 공존한 마녀와 성녀를 비교하며, 여성에게 부여된 이중적 이미지를 추적한다. <사탄과 약혼한 마녀>(장 미셸 살망, 시공사, 1995)는 마녀에 대한 좀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녀의 탄생과 소멸, 마녀사냥을 다룬다. 200여점에 달하는 그림 자료가 관심을 끈다.


마녀와 성녀 - 마성과 성성을 키워드로 한 중근세 유럽 여성사

아케가미 슈운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창해(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