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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 나와 아내는 참말로 눈물겹게 며칠을 고군분투했다. 맞벌이인 우리는 해마다 12월이면 연말정산 때문에 집안을 거의 들었다 놓을 정도로 영수증을 찾아 헤맨다. 거기에다 병원과 약국과 보험회사, 카드회사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환급될 세금에 대한 집요한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월급쟁이인 소위 맞벌이 부부다. 우리 부부는 급여명세표에서 추상 같이 떼어져 나가던 갑근세나 소득세, 4대 보험 등에 대한 시린 추억을 뒤로하고 단 돈 몇 십만 원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이는 비단 나와 아내만이 치르는 연례행사는 아닐 것이다.

매달 떼어가는 세금은 쉽고 간단명료한데 돌려받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렵고 고달프기만 한지…. DMB와 와이브로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최첨단 울트라 IT 시대에 이 무슨 삽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같은 처지의 회사원들이라면 비슷할 터.

그런 고군분투 끝에 소득공제를 받고 지난 1월에 받아든 돈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배반'이었다. 그나마 얼마 후에 찾아온 설 연휴로 그 달콤함을 느낄 새도 없이 공제액은 사라져버렸다. 정말 허무했다.

저출산 대책 위해 맞벌이부부 공제 없애다니...

▲ 노무현 대통령은 연초 양극화 해소 등 재원조달 문제와 관련, "정부로서도 세금을 올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2인 가족 추가공제 혜택 폐지!

그런 전쟁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1일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추상과 같은 정부 정책이 떨어졌다. 재정경제부가 저출산 대책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수공제자의 추가 공제를 폐지할 예정이란다. 여기에 덤으로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의 하나로 비과세·감면제도를 대폭 축소해 노동자들의 세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의 반응. 이 친구 딸 하나 있는 맞벌이다.

"어떻게 생각하냐?"
"연말에 보너스도 없는 회사에서 그나마 연말공제가 알토란같은 돈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없어지는구나."
"더 낼지도 모르는데?"
"한 달 먹고 살기도 빡빡한데 빚낼 일 생겼군."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세무사 개업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 친구 맞벌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냐?"
"나와 무관한 일이다."
"좋겠다. 근데 넌 세금 번만큼 제대로 내긴 하냐?"
"총 맞았니? 지금 애들한테 들어가는 한 달 과외비가 얼만데…."
"……."

나 또한 우려 깊은 저출산 시대의 지탄 대상으로 달랑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당장은 증세를 할 생각이 없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들었던 게 명절 전이었음을 감안하면 에둘러 돌아온 칼끝이 결국 나를 향한 셈이다. 비록 '정식' 증세는 아니지만 추가공제 혜택의 폐지는 사실상 증세의 다른 표현 아닌가?

게다가 그 이유가 '저출산 시대 대책 재원 마련'이라니…. 저출산 시대의 지탄 받을 표상인 나로서는 다른 국민들에게 증세의 단초를 제공했으니 참으로 송구스러워 해야 할 입장이 되어 버렸다.

정부의 세금 압박? 그래도 '고출산' 생각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저출산 대책이 수립된다고 해도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오기나 할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대책이 수립된다고 해도 '고출산'할 생각이 없다.

바야흐로 지금은 정부도 인정하는 '양극화' 시대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 주제도 양극화 아니었던가.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던 '20 대 80'이라는 냉혹한 현실은 이제는 소득뿐만 아니라 교육과 산업, 소비 등의 모든 분야에서 도드라지고 있다.

연간 대학 등록금이 1천만 원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 사회에서 과외 없이는 대학도 없고 대학 없이는 직장도 없다. 그리고 직장 없이는 결혼도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쉽게 말하면 돈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은 죄악이니 회개해서 고출산하라고?

솔직히 말해 맞벌이를 하면 고액 과외는 못해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는 있다. 하지만 시댁이나 친정에 염치없는 손을 벌리지 않고서는 아이 한 명 키우기 버거운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맞벌이는 필수지만 아이 양육은 대책이 없다.

저출산의 원인은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 저출산 가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출산을 못하게 하는 빈약한 사회안전망에 있다. '맞벌이 저출산 가정'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런 빈약한 사회안전망을 대신할 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는 죄밖에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저출산 대책의 재원을 맞벌이 저출산 가정에게서 뽑아가겠단다.

월급쟁이, 그것도 부부 월급쟁이는 세금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봉'이 된 지 오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맞는 걸까. 양극화를 해소하고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던 현 정부도 결국 부부 월급쟁이의 지갑을 선택했다.

기왕이면 있는 사람 돈 좀 쓰면 안되겠니~

이건 밑돌 빼서 윗돌 괴는 형국이고 '없는 사람 털어서 없는 사람 돕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사람 돕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기왕이면 있는 사람 돈 좀 쓰면 안 되겠냐고 반문하고 싶다.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세금 탈루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정부도 인정하는 바다. 매번 대책을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뚜렷하게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이번 정부 정책에서 고출산 가정과의 형평성을 따지기 전에 급여 생활자와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간의 과세형평성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보다 내 주위에도 고출산 가정이 제법 있다. 그들은 대부분 사업을 하는,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회사원이면서 아이 셋 이상을 키우는 용감한 시민도 한 명 있다. 그들은 당연히 맞벌이 부부다.

맞벌이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아마 교육일 것이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정상'적으로 학교를 진학하는 데 필요한 매달 백만 원을 육박하는 사교육비만 줄일 수 있어도 저출산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데 상당한 일익을 담당하지 않을까 싶다. 월급쟁이 세금 더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비뚤어진 사회구조를 바로 세우는 게 아닐까.

그리고 기왕이면 그런 재원은 과정이야 어땠건 간에 지금은 사회지도층(?)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내놓으면 더 좋겠다는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올 해 연말에는 환급되는 세금을 받기는 틀린 일이고 '토해 내야' 할 세금 고지서나 받게 생겼다. 올해부터는 신용카드 공제율도 20%에서 15%로 줄어든다니 더 이상 12월이면 영수증 찾아 집안을 들썩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번거로움을 줄여준 것만큼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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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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