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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세상의 지붕들을 하얗게 만들고 길도 하얗게 나무도, 자동차도, 지우개처럼 지우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내린 날은 마음이 어려지면서 괜히 마음이 설렌다.
이런 날에는 이른 새벽이라도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워 눈이 온다고 소리치고 싶었지. 이런 날엔 아직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새벽길에 내가 먼저 발자국을 찍고 싶어진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엔 누군가 만나고 싶다. 첫눈 오는 날에도 만날 사람이 없다는 건 늙어간다는 것이리라. 어떤 시인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 눈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던가.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꽤나 조심스러웠다. 미끄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새벽, 이른 새벽인데도 골목엔 발자국이 찍혀 있다. 부지런한 누군가가 새벽을 먼저 깨웠던 것 같았다. 새벽기도 갔다 오는 길에 공원에 올랐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고요한 공원 숲길을 먼저 걷고 싶었다. 이렇게 눈이 쌓인 숲길을 홀로 걷노라니 이것도 괜찮다 싶다. 예전엔 눈이 오면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만날 약속을 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그런 때도 있었는데 고요한 숲에서 하얗게 눈 덮인 숲에서 적요 속에 나를 맡기는 것도 괜찮다.
이제는 누군가 눈길을 지나간 발자국이 보였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공원 숲을 어떤 사람이 깨운 것일까. 소리없이 눈을 맞고 있는 숲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