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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재료를 다듬어서 준비.
갖은 재료를 다듬어서 준비. ⓒ 유성호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훑어보면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할지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남자답지 않은 능력을 부여받은 바, 어쩌면 주방이 안방 침대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뭘 해먹을까' 하면서 냉장고를 열자 야채 몇 가지와 게맛살, 프랑크소시지 등 가공식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망막에 맺힌 식재료의 상(像)은 시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됩니다. 그러면 뇌는 식재료를 재빠르게 조합해 최적의 요리를 출력합니다. 물론 최적의 의미는 '독단적'과 상통합니다.

기호에 따라 재료를 얹습니다.
기호에 따라 재료를 얹습니다. ⓒ 유성호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식재료 중에 오늘 만들 요리에 필요한 것들을 일단 밖으로 모셔옵니다. 먹는 것은 어쩌면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것의 원료인 식재료들은 반드시 '모셔야' 한다는 것이 지론입니다.

지난 설날에 형 집에서 얻어 온 송이버섯을 비롯해 청피망, 양파, 게맛살, 프랭크소시지 등을 필요한 만큼 덜어놓고 나머지는 다시 냉장고 안으로 모셔 놓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식사로 구워먹는 식빵을 준비합니다. 참! 토마토케첩과 모짜렐라치즈도 필요합니다.

토핑을 끝낸 후 전자렌지에 넣기 전.
토핑을 끝낸 후 전자렌지에 넣기 전. ⓒ 유성호
이렇게 하면 오늘 만들 음식 재료 준비는 끝입니다. 이쯤 되면 고수님들은 대략 눈치를 채셨을 것입니다. 만약 눈치를 못 챘다면 하수의 식재료 준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있는 걸로 해먹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오늘 해 먹을거리는 '간편피자'입니다. 물론 임의로 작명한 것입니다. 음식 이름은 만드는 사람 마음 아니겠는지요. 왜 간편피자로 이름 지었냐면 재료만 준비되면 정말 손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만들기를 시작합니다. 아이들에게 손을 씻고 오라고 하고 함께 만들기에 동참시킵니다. 물론 동참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달려들기 때문에 선수를 쳐서 자칫 묻힐 뻔한 인심도 챙깁니다. 아이들에게 칼 사용은 금물이며 피자 토핑에만 참여할 수 있다고 공지를 합니다.

전자렌지에서 노릇하게 구워 낸 간편피자.
전자렌지에서 노릇하게 구워 낸 간편피자. ⓒ 유성호
준비된 식재료를 도마 위에 놓고 알맞은 크기로 칼질을 합니다. 식재료 다듬는 모양은 개인의 기호에 따라 식빵의 크기를 고려해 적당히 썰면 됩니다. 대충 썰은 재료들은 접시 한 곳에 모둠으로 담아 놓고 식빵 한 면에 케첩을 바른 후 토핑을 시작합니다.

'나만의 요리'이기 때문에 토핑 역시 대강 얼기설기 얹어 놓으면 됩니다. 단, 종류별로 적절히 배합하고 색깔도 맞추면 금상첨화입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얹는 발칙한 짓을 할 우려가 있으니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 참에 안 먹는 음식이 있으면 슬쩍 끼워 넣어도 좋을 듯합니다.

오늘은 프랭크소시지를 맨 밑에 깔고 맛살, 버섯, 양파, 피망 순서로 얹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모짜렐라 치즈로 덮으면 토핑이 완료됩니다. 이제는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앗! 오븐이 없습니다. 가스렌지 그릴도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전자렌지에 넣고 돌려도 됩니다. 전자렌지도 없으면 프라이팬에 뚜껑을 덮고 지져도 맛이 납니다. 전자렌지에 3분 가량 넣고 돌리면 야채를 레어(rare)로 맛볼 수 있고 더 익히려면 4분 정도가 적당합니다.

전자렌지 문을 열어젖히자 밀려 나오는 냄새가 사먹는 피자와 똑 같습니다. 생김새도 대충 비슷합니다. 맛은 어떠냐고요? 맛도 오십보 백보입니다. 한 입 베어 물자 피망이 아삭거리며 비명을 지릅니다. 찐득이는 모짜렐라 치즈가 피자와 입 사이를 흔들 다리처럼 이어줍니다. 바로 이 맛에 피자를 먹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빠는 얼렁뚱땅 요리사에요"
"아빠는 얼렁뚱땅 요리사에요" ⓒ 유성호
아이들 표정을 살핍니다. 일단 일그러짐 없이 먹는 데 열중합니다. 1차 관문은 통과한 것 같습니다. 이번엔 맛이 어떠냐고 주관식으로 물어 봅니다. 갑작스런 물음에 대답을 하기 위해 대충 꿀떡 삼킵니다. 아차! 한참 씹을 때는 질문을 피해야 하는데. 대충 삼키느라 목젖을 크게 한번 튕긴 큰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는 얼렁뚱땅 요리사야. 맛있어요"

간편피자 재료비는 어림잡아 2000원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2000원으로 셋이서 식빵 7조각을 해먹었으니 2만원짜리 피자를 주문한 것과 다름없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조미료 한 톨도 섞지 않은 웰빙피자를 먹었으니 이런 횡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빠들도 얼렁뚱땅 손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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