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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나팔리스 맥주 광고.
칼나팔리스 맥주 광고.
만약 우리나라 소주광고에 부처나 공자가 헤드폰을 끼고 춤을 추는 모습으로 나와 제품을 홍보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지금 리투아니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형상을 한 인형이 나이트클럽의 디제이로 등장해 음악을 틀어주고, 헤드폰을 쓰고 록 음악을 듣는 광고가 등장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가 된 업체는 리투아니아의 유명 맥주 브랜드인 칼나필리스(kalnapilis). 덴마크의 '로열 유니브류(Royal Unibrew)'가 소유하고 있는 칼나필리스는 리투아니아의 맥주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유명 브랜드 중 하나로 '산성(山城)'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맥주회사는 1월과 2월 두 달간 '컴팩트디스크'라는 문구가 쓰인 칼나필리스 맥주 뚜껑 두개를 모아 지정된 장소에 갖다 주면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히트곡이 담긴 CD를 사은품으로 주는 홍보행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 행사를 홍보하는 지면광고에 리투아니아 민속공예에 자주 등장하는 '예수'의 모습이 사용된 것.

머리엔 헤드폰, 오른팔엔 CD

'예수'의 머리에는 가시관과 함께 헤드폰이 씌워져 있고, 아래로 내려뜨린 오른팔에는 사은품으로 주는 CD가 들려있다. 그리고 즐거운 음악을 감상하듯 '예수'의 입술엔 살짝 미소가 감돈다. 더 나아가 텔레비전에서 사용되는 광고에서는 이런 포즈의 '예수'가 음악을 믹싱하면서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예수'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럽의 성화에 등장하는 위엄 있는 예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리투아니아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보았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민속공예품에 등장하는 예수의 모습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예수상은 하나 같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팔을 괴고 앉아 슬픈 모습으로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유명한 조각상은 바로 루핀토옐리스(Rupintojelis)라고 불리는 민속공예품이다. 루핀토옐리스는 리투아니아어로 '염려하다, 걱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rupinti'와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어미 '-ojas', 거기에 작고 귀엽다는 의미를 첨가해주는 '-elis'라는 어미가 붙어서 생성된 단어다. 직역하자면 '걱정하는 작은 이'라는 의미. 단어 내에서는 이것이 예수를 지칭한다는 의미가 전혀 나타나있지 않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것을 예수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광고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하자 칼나필리스의 관계자는 리투아니아의 여러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루핀토옐리스는 리투아니아의 민속문화적 상징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어떠한 종교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항변했으나 종교계의 반발은 점점 더 심화되는 추세다.

루핀토옐리스는 예수 그리스도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루핀토옐리스는 과연 예수일까. 루핀토옐리스는 리투아니아와 접한 폴란드 북부 지역과 리투아니아 현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당히 독특한 조각상으로 리투아니아적인 상징물 중의 하나지만 그 기원이 정확히 어디에서 나왔는가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이론은 14세기 경 독일에서 만들어지던 예수의 상이 폴란드를 통해서 리투아니아에 들어왔다는 설이다. 초기에는 십자가에서 끌어내린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상 피에타처럼 전 유럽에서 즐겨 사용하던 모티브였으나 다른 유럽국가에선 자취를 감추고 리투아니아에만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목공예가 안타나스 체스눌리스가 소장해 전시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전 지역에서 수집한 루핀토옐리스.
목공예가 안타나스 체스눌리스가 소장해 전시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전 지역에서 수집한 루핀토옐리스. ⓒ 서진석
리투아니아의 목공예 장인 대부분도 루핀토옐리스를 기독교 및 성격적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견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리투아니아 남부 드루스키닌케이(Druskininkai)에서 활동하는 목공예 장인 안타나스 체스눌리스(Antanas Cesnulis)의 말을 보자.

"루핀토옐리스의 배경은 명백히 기독교이지만, 여러 문화가 혼합된 것이다. 이런 슬픈 모습의 예수가 기독교에서 나왔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그 모습이 꼭 예수의 모습이라고 지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꼭 예수의 모티브와 연결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와 연관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전부 고뇌라는 것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이교도 시절에도 고뇌자의 모습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독교의 모티브와 민족 사이에서 자라나는 고유 정서가 혼합된 것이다."

그는 리투아니아 전역에서 만들어진 루핀토옐리스를 수집하여 거대한 전시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곳에 전시된 루핀토옐리스의 모습을 보면 이교도적인 형태의 모습도 많이 등장한다.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루핀토옐리스는 하나 같이 가시관을 쓴 예수와 같은 모습이지만, 이전에는 가시관 대신 이교도 제사장들이 쓰던 월계관이나 화관(花冠)이 머리에 얹혀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 개중에는 그 모습을 명상에 빠진 불상의 모습으로 확대해석하는 예술가의 의견도 존재할 만큼 루핀토옐리스에 대한 이해는 복잡하다.

리투아니아 민속목공예의 장인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알기만타스 사칼라우스카스는 루핀토옐리스가 현재는 예수로 통용되고 있지만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서 광고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는 예수의 형상이지만 기독교화되기 전까지는 백성을 생각하는 이교도 제사장의 모습이었다. 리투아니아 신화나 고대 룬문자로 기록된 사기를 살펴보면, 루핀토옐리스의 경우 천지가 창조되고 나서 세계에 무질서가 창궐할 때 제사장이 세계의 질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염려하는 모습이다. 그 염려하는 모습에서 이름도 나왔다. 그 후 기독교의 영향으로 고난의 요소가 첨가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칼나필리스의 광고는 특별히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 차라리 국가나 민족의 이익이 숨겨져 있는 술, 담배 광고나 성적인 내용의 광고가 갖는 해악이 더 크다."

실제 칼나필리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홍보행사에 사용되는 광고를 잘 살펴보면 암울하고 우울한 것으로 알려진 리투아니아의 고정관념을 개선하자는 의도도 읽을 수 있다. 칼나필리스는 인터넷 홈페이지(www.kalnapilis.lt)에 "이제는 바꿔야할 때?"라는 제목의 플래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로비전에서는 언제나 꼴찌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마다 산 위에 십자가를 세우지만, 누구도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비가 내려도 우울하고 해가 나도 우울합니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기쁘지만, 또 이웃이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이제 바꿔야 할 때가 아닙니까?"

가톨릭 신자들 "예수 이용한 맥주 광고를 당장 멈추라 "

칼나필리스의 플래시 광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전부 산위에 하나씩 자기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다'(위), '우리가 전부 죽으려고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중간), '이제 바꿔야할 때가 아닙니까?'(아래)
칼나필리스의 플래시 광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전부 산위에 하나씩 자기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다'(위), '우리가 전부 죽으려고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중간), '이제 바꿔야할 때가 아닙니까?'(아래)
그러나 어찌됐든 가시관을 쓰고 있는 루핀토옐리스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감옥에 앉아있는 예수를 연상시킨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다. 특히 리투아니아 전체 국민의 90% 이상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광고가 가져온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리투아니아 인들은 칼나필리스 맥주 불매운동을 비롯 맥주회사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반대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주교연합회 시기타스 탐케비츄스(Sigitas Tamkevičius) 대주교는 칼나필리스 회사 및 리투아니아 소비자권리보호회 등에 "루핀토옐리스는 단순한 민속문화의 상징이 아니라 신의 아들인 예수 그 자체"라며 "머리에 가시관을 쓴 고통 받는 예수의 형상이 맥주광고에 사용됐다는 사실로 많은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리투아니아 목공예의 대가 중 한 명인 사울류스 람피츠카스는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 광고로 인해 심기가 불편하다"며 "다른 이들이 루핀토옐리스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루핀토옐리스는 인내, 평화, 염려를 형상화하는 상징"이라며 "이 조각상이 고인들이 잠들어있는 무덤가에 주로 만들어졌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으며, 술에 취해 희희낙락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광고는 리투아니아의 전통에 반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리투아니아의 사회운동가이자 저명한 기자인 로마스 사카돌스키스가 리투아니아 기독교 매체인 <베르나르디네이(Bernardinai)>의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칼나필리스와 로열 유니브류에 보내는 항의서한 내용은 현 사안에 대한 종교계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소련 시절, 신의 형상을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서 모든 신앙인들을 탄압한 적이 있다. 루핀토옐리스 역시 다른 민속예술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독재정권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지켜낸 우리의 종교적 신념이 우리 손으로 잘려나갈 위기에 처해있다. 칼나필리스 회사 측은 그것이 단순히 민속예술측면의 상징이라고 묵살하지만 그것은 과거 소련 시절 공산당이 루핀토옐리스를 폄하하던 태도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시장조사시 이 광고가 종교적 가치에 대한 모욕이라는 논리를 찾지 못했다고 하지만 만약 히틀러와 스탈린이 광고에 등장한다면 그것도 국민들에 대한 모욕이 되지 않는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치와 소비에트 문양 역시 역사의 유물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칼나필리스 측 "불매운동? 맥주판매량 끄덕 없다"

리투아니아 목공예의 대표적 장인 중의 한 사람인 아돌파스 테레슈스와 그의 아들이 만든 루핀토옐리스는 느낌이 다르다. 아버지가 리투아니아의 전통을 이어받아 심각하고 우울한 표정의 루핀토옐리스를 만드는 반면, 그의 15세짜리 아들의 작품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게 많다. 이들 부자의 루핀토옐리스는 현재 칼나필리스 맥주광고를 둘러싼 논란의 현주소를 대변해준다. 사진은 아들의 작품.
리투아니아 목공예의 대표적 장인 중의 한 사람인 아돌파스 테레슈스와 그의 아들이 만든 루핀토옐리스는 느낌이 다르다. 아버지가 리투아니아의 전통을 이어받아 심각하고 우울한 표정의 루핀토옐리스를 만드는 반면, 그의 15세짜리 아들의 작품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게 많다. 이들 부자의 루핀토옐리스는 현재 칼나필리스 맥주광고를 둘러싼 논란의 현주소를 대변해준다. 사진은 아들의 작품. ⓒ 서진석
이 문제는 리투아니아 문제를 넘어 폴란드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리투아니아 내 30만 명 정도 되는 폴란드 인들의 반발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것. 리투아니아의 폴란드어 신문인 <쿠리에르 빌렌스키(Kurier Wilenski)>는 몇 차례에 걸쳐 칼나필리스 광고관련 특집기사를 다루었다. 올 1월 7일에는 리투아니아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성직자 얀 슈트키에비츠의 '모든 것을 돈으로 매매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비판글을 실었으며 2월5일자에서는 "왜 그 광고에는 유대교, 불교, 이슬람의 상징은 없는가? 리투아니아에서는 그 종교가 기독교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인가?"라는 독자의견을 실었다.

현재 리투아니아 내 폴란드인들은 쿠리에르 빌렌스키를 중심으로 칼나필리스 제품불매운동 및 칼나필리스 광고포스터를 떼는 광고훼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에 거주하는 리투아니아 교민들도 칼나필리스 맥주회사에 공개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각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칼나필리스 측은 여전히 문제의 광고를 사용한 홍보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칼나필리스 매출에는 별 차질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 리투아니아 젊은이들이 사이에서는 그 광고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다.

현재 맥주광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에 새로운 뭔가가 더해지지 않는 이상 칼나필리스 맥주 홍보행사는 회사 측의 당초 예상대로 2월28일까지 강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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