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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신혼시대를 담은 카메라 수퍼식스
ⓒ 김정은
선친은 요즘으로 치자면 자칭 카메라 마니아셨다. 전문가만큼 빼어난 미적 감각을 가지지 못했지만 카메라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만은 그 누구보다 월등했다.

유난한 아버지의 카메라 사랑

내가 간난아이였을 때 일이다. 마침 중학교 다니던 큰 오빠가 생애 처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장남의 첫 수학여행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는 큰 맘 먹고 그 당시 신형이었던 캐논 카메라를 처음으로 빌려주셨다. '조심조심 써야 한다'는 당부를 수도 없이 남기면서….

▲ 큰오빠의 중학교 수학여행의 동반자(?) 캐논 카메라
ⓒ 김정은
그 당시 아버지의 당부 말씀과 함께 카메라를 받은 큰 오빠는 잊어버리거나 망가트릴까봐 여관에서 잘 때도 카메라를 가슴 속에 꼭 끼고 잘 만큼 아꼈다는 얘기를 그 뒤 들려주었다. 카메라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자식에게도 잘 빌려주지 않을 만큼 야박해 보이는 아버지의 지나친 카메라 사랑이 그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뿐인가? 어머니는 아버지의 카메라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내두르셨다. 그 이유는 외출이라도 나가 사진 한 장 찍으려면 너무나 뜸을 들이기 때문이었다. 무더운 여름철 땡볕에 오랜 시간 서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짜증이 나곤 하셨단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연들을 품고, 당신이 피같이 아끼던 카메라들도 점점 다양한 성능의 새로운 기종들이 출현하면서 누구도 살피지 않는 고물이 되어 옷장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 중 대표적인 카메라가 바로 접이식 카메라인 독일산 수퍼식스(super six)였다.

1936년 독일에서 처음 제작되었고 렌즈를 열면 주름잡힌 렌즈가 불뚝 튀어나오는 특이한 형태의 카메라가 어느 날 이삿짐을 싸는 순간 불쑥 튀어나왔다. 그 순간 카메라와 관련한 아버지의 생전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원판 필름을 구할 수 없게 된 접이식 카메라

비록 보기만 했지 찍혀본 적도 작동할 줄도 모르는 모양만 신기한 카메라지만, 아버지의 청년시절과 신혼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귀한 골동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가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 이유는 카메라에 부착하는 조그만 크기의 원판 필름을 구할 수 없어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혼시절을 담은 빛바랜 흑백사진들이 하나같이 명함 크기보다도 적은 사이즈인 이유는 그래서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퍼식스(super six)가 장롱 속으로 물러간 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카메라는 독일산 라이카였다. 내 기억으로는 필름을 넣고 돌리는 것이 무척이나 까다로웠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제품은 1985년 집이 빈 사이 들어온 도둑이 그만 들고 가버려 지금 이 자리에 없다.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메라는 오빠가 수학여행 때 가지고 갔던 낡은 캐논 카메라와 노출계, 망원렌즈 등 부속품들이다.

보급형 자동 필름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에도 아버지의 수동 카메라 사랑은 여전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카메라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던 아버지가 이상하게도 자동카메라만큼은 거들떠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전의 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초점, 노출, 필름감기가 자동 조절되는, 일명 '똑딱이' 카메라는 사진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다.

▲ 카메라와 함께 시대에서 밀려난 여러 부속품들...
ⓒ 김정은
솔직히 편리함에 길들여진 나는, 작품 사진도 아닌 인물 사진을 갖고 사진 품질을 논하시는 아버지의 고집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노출과 셔터 속도를 맞춰야 되고 플래시 또한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밤 촬영이 힘든 아버지의 수동 카메라들이 그 당시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첫 월급을 타고 가장 먼저 독단적으로 산 것이 바로 자동 카메라였다. 그 카메라를 사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수동카메라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내가 벌어서 산 카메라지만 그 자동카메라 근처에조차 오시지 않았던 아버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는 내가 2003년 200화소급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구입하기 바로 전 해인 2002년에 돌아가셨다. 당신은 살아생전 디지털 카메라를 직접 보지 못한 온전한 아날로그 카메라 마니아로서 생을 마치셨다.

하긴 아버지가 디지털 카메라를 못 보셨으니 다행이지 만약 필름 자체가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를 보셨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이게 장난감이지 어떻게 카메라냐'며 부인하실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날로그 카메라의 꿈을 담는 디지털 카메라

'꿈을 찍는 사진사'라는 동화도 있지만 아버지에게 이 고물 카메라는 일상 속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김없이 담기 위한 고마운 친구였다. 꾸밈없는 직장 모습이라든가 가족 친지와의 단란한 모습,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변해가는 아내의 꾸밈없는 모습까지도 담아낸 아버지의 사랑스런 친구.

나는 이 카메라들을 큰 오빠에게 보내기 전에 친근하지만 낯선 이 물건들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카메라 액정 속에 이 카메라들이 덩그러니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소중한 무언가를 사진에 담아 자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려 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혹 그러한 행동 자체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기억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아버지의 고물 카메라를 비교적 신형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있는 나 역시 이 사진을 통해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이라면 먼 훗날 지금의 내 행위 자체도 영원히 파일이 삭제되기 전까지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내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근거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아버지의 고물 아날로그 카메라의 꿈을 담고 있는 나의 디지털 카메라, 비록 방법은 다를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추억하기 위한 이 순간만큼은 전혀 친할 것 같지 않았던 아날로그와 디지털 카메라가 어느덧 닮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58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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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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