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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젊어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우리네 세태에 대한 단상이다. 내 나이 올해 마흔여섯, 중년 들머리에 서 있다. 솔직히 젊어지고 싶다. 요즈막 한창 인기라는 '태반주사'가 그렇게 효과가 좋다니 한 대 맞아봐?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언뜻 스친다. 이마나 눈 밑 주름에 최고라는데 보톡스 한 대 맞아볼까? 그러나….

▲ 나이가 들어도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톡스나 레이저 등의 치료를 받아서라도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어 한다. 자료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가 없습니다.
ⓒ 명지병원
나는 직업이 논술학원 강사다. 학생들만 상대하고 산다. 유행과 신문화, 그리고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것들에 민감한 자식 같은 녀석들과 허구한 날 씨름하다 보면 내가 나이 들었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20대 후반이나 잘해야 30대 초반인 강사들과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단과강사다 보니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눈 밑 주름이 굵어지면서 보톡스를 맞아 볼까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다.

염색을 선택한 일도 어쩔 수 없었다. 학원 근처 떡볶이집 골목으로 접어들다 우연히 듣게 된, "너네 학원 샘 말이야. 왜 있잖아. 얼굴 졸라 크고 머리 허연…, 그 할아버지!"라는 말이 나를 지칭한 말이었음을 우리 반 녀석에게 듣고 난 이후부터 염색만큼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사실 양쪽 시력 모두 1.0 이상이면서도 안경(도수 없는)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 눈 밑 다크서클을 가리기 위해서다.

이게 다 그놈의 밥벌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꼭 밥벌이 때문에만 젊어지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정력에 좋다면 굼벵이인들 못 먹으랴

두 번째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서만 18년 동안 살다 보니 나는 지역 토박이 어르신들과 교분이 깊은 편이다. 아버지뻘인 분들과 막걸리 친구가 된 것. 그런데 평생 농사와 땅밖에 모르고 살다가 아파트 건축으로 비싼 값에 땅을 팔고 거부가 된 어르신들 가운데 몇 분은 나만 보면 항상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야, 잉걸 아범! 오랜만이야. 요즘도 바빠? 낼 모레 우리 사슴피 빨러 가는데 같이 갈래?"

▲ 간에 좋다는 굼벵이도 회춘을 꿈꾸는 한국 남자들에게는 정력제로만 통한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이걸 얻기 위해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까지 다녀오셨다.
ⓒ 윤희경
자식뻘밖에 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왜 사슴피를 함께 빨 동지(?)로 여기시는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손자손녀 잔뜩 보신 어르신임에도 소위 '정력'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연세에 왜 정력 증강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 여쭈면 "늙은 말이 콩 싫어하디?" 하면서 오히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신다. 사슴피가 정력 증강에 효험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허리병에 좋다는 지네술과 간 관련 질병에 그만이라는 굼벵이, 심지어 신경통에 특효(?)라는 뱀술까지 어르신들께는 정력제로 먼저 통한다.

초가지붕 이엉을 교체할 즈음,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에 단체로 가서 썩은 이엉 속에 숨어 있던 굼벵이를 수백 마리나 얻어 왔다고 자랑하던 분들이다. 홍콩에 가서 '해구신(수컷 물개의 성기)'을 사왔다는 그분들과 나눈 대화는 아직도 귓바퀴에 쩌렁하다.

"뭐라고? 이게 효과가 없다고? 잉걸 아범 좀 똑똑한 줄 알았더니만 헛배웠구먼. 없어서 못 먹는 귀하디 귀한 거야. 얼마인 줄이나 알아?"

"그거 잡숫고 정말 효험이 있다고 쳐요. 그래서 뭐 하시려고요? 늦둥이라도 보시게요?"

"이거 왜 이래? 솔직히 회춘 싫어하는 사람 있어? 있으면 나오라고 해! 회춘한다면야 까짓, 목숨도 내 놓을 수 있어."

부부 동반으로 태반주사 맞는다는데...

▲ 정력과 불로장생을 겨냥한 상품들은 이미 거대한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위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가 없습니다.
ⓒ 비트로시스
회춘과 젊음에 대한 욕망은 안방으로까지 이어진다. 화장대 앞에서 연방 얼굴을 두드리던 아내가 뜬금없이 한숨을 내쉰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

"당신 만나서 고생하느라고 이것 좀 봐. 눈 밑에, 어쩌면 좋아? 이 주름!"
"나이 들어 주름 생기는 거 당연하지. 어쩌라고?"

아내는 고개를 돌려 책 속에 코를 파묻고 있는 나를 노려본다.

"남들 다 맞는 보톡스도 못 맞게 하고…."
"몇 달에 한 번씩 돈 처바를 짓을 뭐 하러 해? 정 신경 쓰이면 나처럼 안경 써!"

"누구는 부부 동반으로 태반주사 맞으러 다닌다는데…."
"부부끼리 할 짓이 그렇게 없데? 더구나 그거, 태반이라는 게 여성의 신성한 업보(자궁)에서 나온 거 아냐? 이렇게 말하면 심할지 모르지만 '사람고기' 아니냐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세상인데 거꾸로 가나? 원시시대처럼 다시 인육을 즐기자는 거야? 태반으로 만드는 화장품이고 주사제고 모두 내가 볼 때는 '식인풍습'의 변형일 뿐이야."

"잘났어 정말! 그래도 갱년기 장애에는 효과가 그만이라네요, 피! 사실 과대광고가 좀 문제지 세상에 뭐, 당신만 못 해서 사람들이 난리 치나? 당신 논리대로라면 수혈이나 골수이식, 장기이식 모두 식인풍습이겠네?"

"상품화하는 것을 두고 얘기하는 거야. 사심 없는 인간애로 주고받는 일들과 어떻게 비교를 해? 그래 좋다, 효과 있다 치자! 젊어져서 뭐 할 건데? 샛서방이라도 구해보려고?"

"흥! 왜 어디 찔리는 데 있는 모양이지? 누구는 태반주사 몇 달 맞더니 아내 쪽에서 오히려 밤이 무섭대."
"……."

'억지로' 늙지 않는 게 과연 행복할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성서를 보면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노아는 950세, 성서 역사상 최고령으로 기록되는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단다. 아브라함은 100세 언저리에 아들 이삭을 얻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일은 인류 최대의 꿈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나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태, 즉 무조건 젊게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미모가 여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재력과 정력이 남성을 평가하는 잣대인 세상이니 무조건 탓하기도 좀 그렇지만 사람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주름이 좀 있어야 하지 않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욕이 쇠퇴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물론 치장이야 할 수 있지만 꼭 온갖 약이니 보신제니 고가의 화장품이니 수술이니 해가며 젊어 보임과 정력을 되찾아야 하는지….

"이거 봐요, 잉걸 엄마! 당신도 TV 보면서 그랬잖아. 당기고 펴고 깎고…, 그런 중년 여배우들 보며 흉보지 않았냐고? 나잇값을 너무 안 하려 한다고."

"그건…, 그렇게 못하는 내 신세가 한탄스러워, 질투가 나서, 약 올라서 한 말이고!"

나는 나이가 듦에 따라 그 나이만큼 보이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을 인정하는 자세 또한 나이만큼의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주름 그대로, 세월의 깊이 그대로, 꾸미지 않고 연기로만 승부하는 중년의 여배우들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나이만큼의 외모, 나이만큼의 정력, 그게 자연의 섭리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니 믿고 싶다. 그러나 아내가 던진 한 마디가 두고두고 걸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보톡스 한 대 맞아 보라지. 안경 당장 벗고다닐 걸? 태반주사로 효과 보고도 과연 그런 말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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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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