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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을 즐기는 모든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 파스칼


한탕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요즘 속칭 '낚시 게임'이 인기란다. 슬롯머신, 파친코 등을 거쳐 주말 경마, 경륜, 경정에 쏠렸던 사람들이 주중 '스크린경마'에 매달리더니 이제는 '바다이야기'라는 성인오락실로 빠르게 모여들고 있다는 것.

한 동네에 하나는 꼭 있다는, 2006년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바다이야기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과연 이번엔 정말 '한탕'이 가능하긴 한 걸까. 푸른 빛깔의 예쁜 바다 속 풍경이 그려진 외관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성인오락실을 찾아가봤다.

한 사람이 기계 몇 대씩... 자동진행으로 알아서

▲ 한 동네에 꼭 하나씩은 있다는 신종 도박 바다이야기. 플래카드의 '고래의 꿈'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나영준
지난 9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부근의 바다이야기 업소. 100여 평이 넘는 업소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150여 대가 넘는 기계가 쏟아내는 소음이 귓가를 따갑게 때렸다. 퇴근 시간이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지만 입장객이 차지하고 앉은 기계는 절반이 넘었다.

"거기 기계 돌리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주위를 살피다 앞에 있는 오락기에 자리를 잡으니 곁에 있던 중년의 사내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인다. 살펴보니 기계의 시작 단추 위에 라이터가 '살포시' 올려져 있다. 굳이 단추를 누르지 않아도 알아서 게임을 진행하는, 법으로는 금지된 '자동진행'을 하고 있는 것. 예전에는 종이를 접거나 이쑤시개 등을 끼워 넣었지만 이제는 단추의 센서가 발달해 라이터를 올려놓기만 해도 된단다. 이렇게 하면 알아서 기계가 돌아가니 한 사람이 여러 대의 기계를 돌릴 수 있다. 물론 라이터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업소에서 제공한 것들이다.

이때 종업원인 듯한 아가씨가 다가와 빈자리를 안내해 준다. 이어 지배인이라는 남자가 깍듯한 인사와 함께 "사장님은 오늘 처음 오셨냐?"고 묻고는 곧바로 지폐 투입구를 일러주고 게임하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바다이야기 기계는 만 원권만 인식한다. 만 원짜리 지폐를 넣으면 기본 10000점이 주어지고 게임 한 판당 100점이 깎인다. 화면 상단에는 각종 산호초와 물고기들이 노니는 바다 속 풍경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7, BAR, 과일 등 가로 4줄, 세로 3줄의 스핀들이 돌아가고 있다. 동전이 떨어져 중간에 있는 바다이야기 그림을 건드리면 아랫부분의 스핀들이 맞춰진다.

고래가 눈앞에서 '아른아른'... 대박은? '가물가물'

바다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예시' 기능에 있다. 상단의 그림에서 고래가 나타나면 잭폿이 날 조짐이고 상어, 가오리, 물보라, 잠수함 같은 것도 좋은 징조다. 밤이 되고 사람들이 늘면 기계가 많이 돌아 소위 '야간 고래' 같은 잭폿이 터지기도 한다고 지배인은 설명했다.

▲ 성인 오락 '바다이야기'의 화면. 상단의 바다 속에서 고래나 가오리, 잠수함이 나타나면 대박 조짐으로 친다.
때문에 모니터에 고래나 상어 같은, 소위 조짐이 보이면 대박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쉽게 손을 뗄 수가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바다이야기가 스크린 경마에 비해 대박이 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업계 측 설명으로는 이 같은 게임기들은 투입 금액의 80% 이상이 손님에게 돌아가게 설계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떼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한 번에 100점이 깎이는 한 판을 하는 데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때때로 200점씩 점수가 쌓이기도 했지만 무섭게 빠져나가는 점수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 돈 10만 원을 넣으면 200점, 500점 같은 자잘한 게 터지기도 한다고.

현행 경품 취급 기준에서 배팅액은 1시간당 9만원 이내, 1회 당첨금은 최대 2만원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바다이야기에는 '메모리 연타' 기능이 있어 수백만원까지 당첨이 가능하다.

처음 넣은 만 원을 다 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9분여 정도. 다시 만 원을 투입했다. 기계가 돌기 시작하면 사람이 할 일은 특별히 없다. 그저 대박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이렇게 해서 최소 5000점을 건지면 오락실에서 주는 문화상품권 5천원짜리 한 장과 바꿀 수 있다. 이런 상품권은 오락실 주위의 '환전소'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이곳 입장객은 40~50대가 대부분으로 간혹 주부인 듯한 사람도 보였지만 대개 남성들이었다. 줄담배를 피워 물며 화면을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고, 아예 의자를 뒤로 젖히고 노곤한 낮잠에 빠져 있는 사람도 보였다. 사람 기다리기 지루해 한판 때리고 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잠시 후 기계는 다시 돈을 요구했다. 이번엔 11분이 걸렸다. 마지막 만 원짜리 한 장으로는 10분을 버틸 수 있었다. 기자가 밑천으로 준비해 간 3만원이 모두 떨어져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한 사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저씨, 그만 하는 거예요? 지금 고래 지나가잖아요. 이거 그럼 내가 합니다."

그는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만 원권 지폐를 바삐 기계에 투입했다. 오락실 밖으로 나서자 근처에는 '상품권'이라고 적힌 가게로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게임장에서 받은 5천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수수료로 10%를 제하고 돈으로 돌려주는 소위 '칩' 교환업소다.

우연찮게 맛 들였다가...혹시나 싶어 못 벗어나

박아무개(45·서울 가리봉동)씨는 원래 솜씨 좋은 목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뛰어든 공사판에서 갈고 닦은 손재주가 좋아 어딜 가든 환영받는 기술자였다. 그랬던 박씨가 그의 표현처럼 '망가지는' 데 든 시간은 불과 3, 4년 정도. 바로 '성인오락' 때문이었다.

▲ 아는 동생들 따라 갔다가 도박에 빠진 박아무개씨. 사흘 만에 180만 원을 날리기도 했다고.
ⓒ 나영준
"어느 날 비가 와서 데마찌(공사장에서 일이 취소됐다는 은어)를 맞고 사무실에 앉았는데 동생들이 스크린 경마장에 가자고 하더라. 원래 노름에 '노'자도 싫어했는데 거기 가면 음료수도 주고 컵라면에 빵도 거저라며 그냥 소파에 앉아 구경만 하라 길래… 그러다 이거저거 다 해보고 작년부턴 바다이야기에 빠지고… 결국 망가지더라(웃음)."

시간 보내려고 발을 들여놨지만 갈수록 오락실에 드나드는 횟수는 늘어났고 나가는 돈의 액수도 불어났다. 이후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성인오락물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그는 "지난달엔 간조(월급) 날 180만원 들고 바다이야기에 가 사흘 만에 모두 잃고 나왔다"며 "그나마 운이 좋아 사흘이었지 하루 만에 전부 잃을 수도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다 보니 부인과의 불화도 깊어져 현재는 '도장'만 안 찍었지 사실상 남남인 상태다. 박씨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며 "누구 탓을 하겠냐. 내가 ×××지. 그래도 돌아갈 수만 있다며 정말이지 다시 돌리고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현재 월 16만 원짜리 허름한 고시원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직 목수 기술이 녹슬진 않았지만 워낙 이곳저곳 빚을 진 곳이 많아 일터에서 그를 대하는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고. 그럼에도 그는 계속 성인오락실을 출입하고 있다.

"가면 안 되는지 누가 모르나. 그런데 이젠 그거라도 없으면 낙이 없다. 바다이야기는 조그만 더 지르면(돈을 넣으면) 고래가 잡힐 것 같은데 그게 안 된다. 모르겠다. 아예 그런 기계가 안 나오면 좋을 텐데. 있으니 하는 것 아니겠냐."

나쁜 거 누가 몰라, 근데 정부가 '게임'이라잖아?

박씨에 비하면 손아무개(37·직장인)씨는 비교적 자신을 '관리'하며 성인오락을 즐기는 편이라고 강조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바다이야기를 즐긴다는 손씨가 한 번 갈 때마다 지출하는 금액은 10~20만원 정도라고.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쉬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바다이야기의 어떤 점이 이들을 이곳으로 부르는 걸까.

"예시 기능이라고, 대충 이제 터질 때가 됐다고 알려 주잖나. 고래 같은 거... 꼭 다 맞는 건 아니지만 한 번 '제대로' 맞으면 200만원 정도도 나오니까. 그런데 사실 다 똑같다. 그래 봐야 도박이고 결국은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잃고 오는 거다."

허. 답이 척척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걸 즐기는 이유는 뭘까.

"딴 거 없다. 딱 '한 방'이다. 1억을 게임으로 잃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에게 1천만 원짜리 한 방만 안겨줘 봐라. 자기가 지금까지 날린 돈은 모두 잊어버리고 희희낙락한다. 도박이란 게 그런 거다. 웃긴 건 정부에서는 이걸 도박이라고 안 하고 '게임'이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요즘 스크린쿼터 때문에 말이 많던데 '미국영화 안 보면 그만이지'라고 말할 수 있나? 그렇게 사람들을 유혹해 놓고 '안 하면 그만이지'가 말이 되나. 이런 사행산업 허가 내 준 것도 정부고. 만들어도 허가 안 해주면 그만 아닌가?"

손씨는 "경마나 경륜은 주말에나 열리지만 365일 24시간 풀가동하는 성인오락실은 언제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며 "오락을 즐기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성인오락실이 가장 무서운 도박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도박' 권하는 사회

▲ '국가가 인정한 노름장'이라는 비난에도 한국마사회는 전국에 장외발매소 32곳과 입장 인원 1618만4637명, 총매출 5조1347억 원(2005년)을 자랑하고 있다.
ⓒ 나영준
생명과 사랑의 공익기업 한국마사회. 1922년 사단법인 조선경마구락부로 시작한 경마는 1989년 서울 뚝섬에서 과천으로 경마장을 이전하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국가가 인정한 노름장'이라는 비난에도 한국마사회는 전국에 장외발매소 32곳과 입장 인원 1618만4637명, 총매출 5조1347억원(2005년)이라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호황에 힘입어 작년 9월 마사회는 주말에만 열던 경마를 평일인 금요일까지 확대했다. 이외에도 88년 경륜, 2002년 경정이 레포츠라는 이름으로 돛을 올렸다. 경마·경정·경륜·카지노·복권 등 국내 사행산업 시장 규모는 14조4700억원(2004년)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행산업 틈바구니에서 최근 들어 각종 스크린 경마와 성인 오락실이 생겨나며 다시 한 번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오락실 업주들로 구성된 '한국컴퓨터게임 산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성인오락실은 전국적으로 1만1천여 곳으로 추산된다. 특히 스크린 경마가 잦아든 이후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황금성·오션파라다이스·대물·나이트호크 등 수많은 오락실들이 목 좋은 지역 상권뿐만 아니라 주택가까지 점령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연간 40조원에 이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인오락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업계는 "성인오락실에서 유통되는 상품권 액수만 10조원 정도"이며 "업소의 실제 매출에 해당하는 손님 이용 요금은 전국적으로 연간 8천억원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합법의 탈을 쓰고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인오락은 도박 아닌 게임?
문광부 게임산업과 정책 수립 → 영상물등급위 허가

성인오락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이용객 대부분이 저소득층과 서민이라는 데 있다. 국회 문광위 소속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에 따르면 성인오락실에 이용자 중 4인 가족 기준 월 소득이 500만원이 넘는 이용자는 단 6.05%에 불과한 반면 200만원 이하는 42.74%를 차지하고 있다. 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가정의 이용자도 13.12%나 됐다.

결국 차상위 계층이나 차상위 계층을 겨우 면한 월평균 소득 200만원 이하 가정의 구성원이 성인오락실의 주이용객인 셈이다('아케이드 게임 이용자 현황', 한국게임 산업개발원. 2005. 04).

정부는 성인오락을 도박이 아닌 '게임'으로 분류하고 있다. 때문에 문화관광부의 게임산업과가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성인오락실을 관리하고 있으며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관련 상품권을 지정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경품용 게임을 도박으로 보고 다양한 규제로 묶어 사법기관의 철저한 감시 아래 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풍속영업법으로 경품용 게임을 매춘과 함께 경찰청이 직접 규제하고 있고, 대만도 철저한 면허제를 통해 무분별한 게임장 증설을 금지하고 있다.

노웅래 의원은 "대한민국에서만 성인오락실을 게임으로 보고 게임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허가를 내줘 결국 사설 도박을 합법화해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문화관광부 게임산업과 조현래 과장은 "현재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며 "법률이 통과될 경우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은 모든 게임물에 대해 재심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임에 대해서는 보류와 거부가 이루어질 것"이며 "24시간 운영 중인 영업시간도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는 금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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