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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한은희

위의 그림에서 거래①은 실제 거래액보다 금액이 적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함으로써 거래당사자 A, B 모두에게 매출누락에 의한 탈세를 가능케 한다.

거래②는 자료상으로 하여금 공급가액이 100인 가짜 세금계산서에 의해 부가가치세 10을 부당 환급받도록 한다. 이로써 자료상은 7(수수료 차이)의 이익을 본다.

거래③에서 세금계산서 최종수요자는 자료상에 수수료를 10% 지급하였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환급으로 인한 이익을 볼 수 없지만, 가공비용을 통한 소득세 탈세는 가능하다. 즉, '매출 300 - 매입 100 = 이익 200’에 대하여 소득세를 납부해야 할 사업자가 100만큼 세금계산서를 산다면 '매출 300 - 매입 200 = 이익 100’에 대하여 소득세를 납부하기 때문에 탈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앞의 사례에서 음료회사는 거래관계가 없는 단란주점 등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주어 소득세 탈세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써 '① 매출누락에 의한 탈세 ↔ ② 부가가치세 부당환급 ↔ ③ 과다비용에 의한 탈세'의 삼중 탈세 연쇄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간이과세제도는 세금계산서 블랙홀

앞에서 본 탈세의 연쇄고리는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대부분 전문가는 간이과세제도가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무너뜨린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법은 연간 매출이 4800만원 이하인 개인사업자를 간이과세자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자는 원칙적으로 매 거래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하지만,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의무가 없다. 이 간이과세자는 개인사업자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는 일반과세자는 '매출세금계산서상의 부가가치세 - 매입세금계산서상의 부가가치세 = 납부할 부가가치세'의 방식으로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하지만,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를 근거로 부가가치세를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계산서를 받을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세금계산서를 받지 않아야 매출누락이 용이하므로 적극적으로 세금계산서 수령을 거부하게 된다.

간이과세자의 세금계산서 수령 거부는 '소매상 ↔ 도매상 ↔ 제조회사 ↔ 원료 제공업자' 등으로 이어지는 전 거래의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된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질 경우 처음 발생한 물방울 하나가 연못 전체를 흔드는 파장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영세업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반론이 있다. 일면 타당성 있는 반론이다. 그러나 간이과세제도가 주는 폐해의 심각성과 도매상 등 대규모 개인사업자가 그 폐해를 이용하여 가장 큰 이익을 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는 이대로 덮어둘 수만은 없다. 영세업자에 대하여는 불이익을 상쇄할 별도의 대책을 도입하더라도 간이과세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저절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로 하여금 정규영수증을 받도록 유인하기 위하여 근로소득공제제도를 실액공제제도로 전환하는 등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간이과세제도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므로 여기서는 이에 대하여만 언급하기로 한다.)

간이과세폐지, 왜 안 이뤄지나

간이과세제도가 주는 폐해에 대하여는 정부여당과 정치권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왜 폐지하지 않는가?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시 향우회 등을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영업자다. 따라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는 추상적인 1400만명의 근로자보다 자신들 옆에서 도와주는 몇 명의 자영업자가 더 귀한 법이다.

99년도 이전에는 간이과세자 요건이 매출액 1억5000만원 이하로 지금보다 그 대상자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를 99년 말에 매출액 4800만원 이하로 대폭 강화한 것이다. 당시에도 정치권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으나, 시민사회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여당이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보다 조세개혁 의지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DJ 정부 때는 그래도 변호사 등 전문직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시행, 간이과세 대폭 축소와 같은 굵직한 조세개혁을 몇 가지 이루었다. 지금은 증세 여부를 둘러싸고 말만 무성했지 정작 알맹이 있는 조세개혁 논쟁은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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