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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직자들에게 희망을 집단상담프로그램
ⓒ 이명숙
월요일 오후, 갑자기 복이 터졌다. 내 주변으로 건장한 남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씩이나. 그들은 2월 첫 주에 성취프로그램을 수료한 경훈씨와 취업지원 담당인 조 선생, 내 앞자리 파트너인 청년층 직업지도프로그램 담당자들이다.

"어어, 먼 일이어요. 화이트 데이는 다음 달인데."

너스레를 떨자, 모두들 웃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구직자들에게 듣는 말 중 가장 반가운 소리가 '합격했어요' '취업했어요' 소리다. 심신이 지쳐 있다가도 그 소리만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쌀가마니도 들어올릴 만큼, 기운이 펄펄 난다.

"금요일, 면접 보러 간 데서 연락이 온 거예요?"

내 눈에는 경훈씨 외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질 않는다.

"금요일에 면접본 데는 경력이 너무 화려하다고 안 됐고요. 토요일에 면접 본 데서 됐어요."
"역시, 경훈씨 멋져요. 될 줄 알았다니까요."

경훈씨는 한때 여의도 증권가에서 160억을 주무르던 경력의 소유자다. 증권투자연구소에서 기업 분석 및 직원들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증권관련 교육을 하기도 했던 경훈씨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자영업을 시작하고부터였다.

증권 강사를 하면서 모은 돈과 그 전에 회사 다니면서 모았던 돈을 몽땅 투자해 시작한 PC방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2년 3개월만에 투자한 돈을 날린 것은 물론, 문을 닫을 때는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호주머니에 적어도 몇 십만 원 이상씩 넣고 다니던 사람이 버스비마저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경훈씨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끝까지 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짐 보따리를 챙겨서 광주로 내려왔다. 고용안정센터는 작은 형의 소개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용안정센터를 온다는 것 자체가 창피했어요. 배웠다고 배운 놈이 이런 데까지 와야 되나 싶어서요. 그런데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영업관리나 자재, 구매사무원을 희망한 경훈씨는 취업지원담당자인 조창규 선생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조 선생님 말투가 우락부락하잖아요. 그런데 상담을 할수록 남자들만이 알 수 있는 끈끈함이 느껴졌어요. 그때부터는 무조건 조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어요. 조 선생님이 성취프로그램 들어가라고 해서 두 말 않고 그러겠다고 했고요."

조 선생은 혹시나 경훈씨가 프로그램에 선발이 되지 않을까봐 나에게 몇 번을 확인 하고 또 확인했다.

"경훈씨 꼭 성취프로그램 받아야 되거든요. 이번에 꼭 참가하도록 해 주세요."

그렇게 해서 경훈씨는 나와 인연이 되었다.

"실직상태가 6개월 이상 되니까 하고 싶은 의욕도 없고 집에서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폐인처럼 사니까 그 생활에 젖어들더라고요. 그런데요, 성취프로그램을 받으면서 선생님이 첫 날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 사례를 들려주면서 '가난은 죄가 아니라 게으름은 죄다'라는 말을 해 주셨잖아요.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어요."

경훈씨는 취업계획을 바로 실천에 옮겼다.

목요일 프로그램 일정이 끝난 후 경훈씨는 남아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인사서식 1호 이력서가 아닌 자유형식이력서 틀을 만들어나갔다.

지원 분야 : 영업
목표 : 고객과 가까이에서,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가치를 창출하여 기업에게는 이익을, 경쟁시장에서는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사원이 되고자 합니다.


▲ 이력서는 이렇게
ⓒ 이명숙
경력사항은 지원하는 분야와 연관된 경력들을 최근 순부터 구체적으로 써나갔다. 학력사항은 최종학력부터 고등학교까지만 훈련사항은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와 적합한 훈련들을 적었다. 자격사항, 기타 순으로 한눈에 봐도 정갈하고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드러낸 이력서였다.

대부분의 구직자들이 그렇듯 경훈씨도 자기소개서 쓰기를 힘들어 했다. 하지만 끈기를 갖고 써내려갔다. 성장배경, 성격의 장단점, 학교생활과 사회경험, 지원동기 및 포부로 나눠서 가닥을 추려나갔고, 드디어 윤곽이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세 차례 정도 수정을 했다.

취업에 성공해야겠다는 목표를 정한 경훈씨는 이력서에 붙일 사진 20장을 준비했다. 성취프로그램에서 배운 대로 이력서를 들고 사전탐방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의 의지가 통했던지 프로그램이 끝나는 금요일 취업지원 담당자인 조 선생의 추천으로 면접 일정이 잡혔다.

토, 일요일 쉬는 중에도 경훈씨가 면접을 어떻게 봤을까 궁금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물어봐야지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통했던지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들고 와 준 것이다.

합격이 되었다고 해서 당연히 금요일에 면접을 본 업체에 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 업체에서는 경력이 너무 화려하다고 퇴짜를 맞은 후, 집에 들어와 있는데 오후 늦게 조 선생한테 다시 전화가 온 것이다. 구매 및 자재관리직인데 지원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거였다. 물론 그러겠다고 한 후, 경훈씨는 거기에 맞는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면접을 보러 갈 구인업체는 첨단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를 몰라 조심스럽게 조 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같이 가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조 선생은 흔쾌히 동행을 해 주었다.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가 주신 조 선생님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어요. 조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경훈씨는 조 선생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쉬는 날까지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경훈씨가 복이 많네요. 그건 그렇고 면접은 어땠어요."

면접상황이 궁금해 물어본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라 차가 없으면 힘들 텐데 가능하겠어요. 미혼인데 오랫동안 근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성취프로그램에서 배운 대로 바로 단점을 장점화하는 답변을 했어요."
"어떻게 답변을 했는데요."
"차 문제는 작은형이 가지고 다니지 않은 차가 있는데 취업을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과 미혼인 것에 대해서는 이 곳에 취업이 되면 사장님께서 여자도 소개시켜주시고 주례까지 서 주시면, 동지애가 더 돈독해 회사의 이윤을 창출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더니 웃으시더라고요."

경훈씨와 면접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조 선생이 끼어든다.

"경훈씨 면접 겁나게 잘 봐 부럿어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 나와도 척척 답변을 하는데 사장님이 완전히 흡족해 하시더라고요. 면접을 보러 가기 전에 또 우리가 그 회사의 주력품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서 가부럿죠."

JIT(실시간 제고 보충 시스템), RFID(무선주파수전송방식)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면접을 보러 가기 전까지 차 안에서 준비를 했다고 한다.

경훈씨는 1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도 해 보았고, 160억까지 주무르던 시절도 있었고, 실패의 쓰디쓴 잔도 맛을 봤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작하는 제 2의 인생이 더 소중하다고 한다.

밑바닥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이제는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그는 타 지역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이 지역의 물류시스템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람, 회사에서 받은 월급보다 다섯 배 이상의 이윤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한결 밝아진 경훈씨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까지 환해진다.

에너지를 되찾은 경훈씨! 멋진 앞날 기대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정브리핑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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