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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은 여기 저기에서 느껴지는데 아직도 바깥 풍경은 하나도 달아진 게 없이 칙칙한 색깔의 바싹 마른 나무들뿐입니다. 4계절 중 살기 좋고 구경거리 많은 봄과 가을이 조금씩 더 길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금 더 기다리면 오지 말래도 오는 봄을 뭘 그리 조바심 내며 기다리냐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겨울이 끝날 즈음 되면 좀이 쑤실 만큼 봄이 그리워집니다.

따뜻한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간지르며 지나갈 때의 기분은 봄에만 느낄 수 있습니다. 온갖 예쁜 색들로 산과 들이 치장을 하기 시작하는 봄은 겨울나무처럼 건조한 나에게 에너지를 줄 뿐만 아니라 겨울잠을 잔 곰처럼 어리버리한 나를 생기있게 해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아이들 봄방학을 맞아 충남 아산의 세계 꽃 식물원을 방문했습니다. 온실 바깥은 겨울이지만 온실안은 봄이 한창입니다. 아마도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들 때문에 이 큰 온실들은 기름값 들이며 운영해도 적자가 나지 않나봅니다.

▲ 세계 꽃 식물원 입구. 바깥은 겨울이지만 온실 안에는 봄이 한창입니다.
ⓒ 전향화
처음 들어선 곳은 동백정원입니다. 80여종이 있다는데 아주 작은 것부터 큰 장미 만한 것까지 다양합니다. 지난 겨울 2학년 큰 애와 문제를 풀다 보니, 겨울에 꽃이 피는 나무가 무엇이냐는 게 있었습니다. "동백"이라고 외우라고 했는데 그 동백을 이렇게나 많이 보여줄 수 있어 그때 미안했던 맘이 가벼워집니다.

▲ 떨어질 때도 품위를 유지하는 동백. 머리에 꽂고 싶지만 참았습니다.
ⓒ 전향화

▲ 분홍색 동백, "메리브래이씨"라는 품종입니다.
ⓒ 전향화

▲ 주먹만한 동백입니다. "마소티아나"
ⓒ 전향화

▲ 하얀 동백. 하얀꽃은 빛을 받으면 하얀 빛을 품어 신비스러움을 자아냅니다.
ⓒ 전향화
사람들은 꽃 무더기를 발견하면 그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싶어지나 봅니다. 그 맘은 아이부터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인 것 같은데 아마 그 속에서 자신도 한송이 꽃이 되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꽃을 보면 머리에 꽂고 싶습니다. 제가 맘껏 머리에 꽃을 꽂고 사진을 찍어 본 것은 95년 유럽여행을 갔을 때 민들레 밭에서 입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사진 속의 저는 무척 행복해 보이는데 그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못했습니다.

▲ 향기가 유난히 좋은 제주 수선이라고 설명하시는 할아버지
ⓒ 전향화

▲ "고개 좀 들어봐" 부끄러워 얼굴을 안 보여 주려고 자꾸만 고개를 숙입니다. "제주수선"
ⓒ 전향화

▲ 지금 보니 저 아름다운 곳에서 왜 오래 뭐물지 못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 전향화

▲ 크리스마스의 꽃 "포인세티아"
ⓒ 전향화

▲ 아이는 꽃을 물속에 빠췄다 꺼냈다 하며 놀지만 저는 꽃탕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집니다
ⓒ 전향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여유있게 앉아 있을 것을, 끝에는 뭐가 있는지 얼마나 남은 건지가 궁금해서 괜히 바쁜 걸음을 옮기다 보니 구경거리가 금방 동이 납니다.

예쁜 꽃들을 보니 집에 있는 화분들이 생각납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따뜻해지면 새싹이 돋아 날려는지 알 수 없는 화분들. 저는 꽃을 좋아할 뿐 식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거실 한쪽을 차지하며 집안을 지저분하게 하는 것을 감래하며 겨울 내내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이 진짜 봄에 피는 꽃을 감상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다 죽어가는 화분을 길에서 주워서 살려 꽃도 피웠다며 자랑하던 한 아주머니가 생각납니다. 못난 자식을 보듯 보잘것 없는 화분을 애지중지 하던. 오늘은 거실의 화분들을 좀 둘러봐야겠습니다. 머지 않아 찾아 꽃을 피울 잠재력을 기대하며.

덧붙이는 글 | 입장료 일반 6,000원 중고생 5,000원 유초등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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