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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인터넷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 박물관에 예약을 하고 드디어 아들아이와 또래 친구 7명은 어린이 박물관에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 박물관은 유리상자속에 유물을 넣어두고 전시하며 멀리서 눈으로만 관찰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며 퍼즐조각도 맞추어 보고, 직접 갑옷도 입어볼 수 있는 체험 중심의 박물관이었다.

안내데스크에서 담당 선생님의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난 아이들은 340평 규모의 전시실을 구경하게 됐다. 전시장은 4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따뜻한 집, 삶의 보금자리

이곳에는 옛날사람들의 주거형태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다(움집-초가집-기와집). 청동기 시대에는 구덩이를 파고 움집에서 생활했다. 땅속은 기온이 일정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그러나 이곳은 심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불편하기에 초가집을 짓게 된다. 초가집은 움집과 달리 땅을 파지 않고 땅위에 집을 지으며 벽은 흙으로 지붕은 짚으로 비와 바람을 막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곳도 겨울에는 추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와집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기와집은 커다란 받침을 놓고 그 위에 큰 기둥을 세워 지붕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하였다. 지붕에는 기와를 얹어 크고 튼튼한 집을 지었다. 초가집 옆에는 '고풍이네 가족이야기'라고 하는 흙 모양으로 만든 집이 있다. 그 속에서 주거문화의 발달과정을 만화로 보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무척 흥미롭고 유익한 공간이었다.

▲ 기와 지붕쌓기를 할 수 있는 체험 공간
ⓒ 송춘희
쌀과 밥 농사이야기

이곳에는 농사도구의 전시뿐 아니라 벼이삭 그리고 재래식 부엌의 모습과 현대의 부엌의 모습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갈돌 갈판에 씨앗을 올리고 갈아보니 돌이 부딪히며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오늘날의 믹서의 역할을 하는 갈돌과 갈판을 아이들이 특히 즐거워하였다.

그릇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모래가 섞인 거친 흙으로 그릇을 만들었다. 그러나 물을 부으면 곧 스며들 정도로 그릇이 물렁물렁하였다. 신라시대가 되자 먹거리가 다양해져 다양한 그릇이 생겨난다. 고려시대에는 귀족들이 반짝이는 유약을 바른 청자를 좋아하였다. 두 번 구워 단단해진 청자는 상감기법을 써서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 고려청자의 모습
ⓒ 송춘희
옛날에는 생활에서 쓰는 그릇과 무덤에 넣는 그릇이 달랐다. 죽어서도 영혼이 그것을 소유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무덤에 그릇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무사와 무기이야기

남자아이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무기와 무사이야기의 코너에 왔다. 이곳에는 전쟁은 왜 시작되었는지, 가장 멋진 성을 쌓기, 무기와 무사의 퍼즐 맞추기 등의 코너가 있다. 물론 아이들이 가장 흥미로워 한 곳은 갑옷과 오늘날의 전투복을 입어보는 곳이다.

▲ 갑옷과 현대의 전투복을 입고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
ⓒ 송춘희
고구려 무용총의 사냥하는 사람들 모형 앞에서 얼굴을 내민 채 고구려의 무사가 된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이나 돌로 칼을 만들어 집단 간의 싸움이나 사냥에 썼으며 원삼국시대에는 철기가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다. 고구려의 무사들은 적의 공격에 대비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쇠로 만든 갑옷과 투구를 쓰게 된다.

목가리개와 투구를 쓴 한 아이가 갑자기 "공격하라!"하고 외치자 다른 아이는 그 옆에 있는 오늘날의 전투복을 입고 "돌격!"하고 외친다.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어느새 고구려의 무사와 현역병이 되어있다.

전쟁놀이를 하던 아들아이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엄마! 근데 왜 전쟁을 하죠?"
"응~ 인간의 욕심이 전쟁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럼 싸우지 말고 자기가 가진 것 나누어 쓰면 되잖아요."
제법 기특한 생각을 말하는 아들아이의 뒤에 대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선호야 네가 자라나는 세상에는 네 소원대로 절대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나도 바랄게.'

마음과 영혼의 소리 음악이야기 코너

전쟁놀이를 마치고 우리는 음악이야기 코너로 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음악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각박해질까? 요즘에는 라디오나 오디오만 켜면 언제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즐겼을까?

옛날에는 사람과 신을 이어주는 제사장이란 사람이 옷에 청동기를 달아서 신성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청동방울을 손에 들고 흔들면서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제법 묵직한 청동방울을 흔들어 보니 딸랑이는 소리가 재미있다.

▲ 제사장이 사용했던 쌍두령과 팥주령의 모습
ⓒ 송춘희
청동방울의 전시장 뒤편에는 백제 금동대향로가 있었다. 부여의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제사를 올릴 때 향을 피우던 향로이다. 이 향로는 산모양의 뚜껑과 연꽃봉우리의 몸체, 그리고 용모양의 받침으로 되어 있다.

▲ 백제금동대향로의 위, 아래, 전체부분
ⓒ 송춘희
큰 뚜껑을 자세히 살펴보면 돌아가며 5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안내책자에 의하면 그 악기는 완함, 배소, 현악기, 북, 퉁소라고 한다. 이 금동대향로는 모형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다.

▲ 백제금동대향로를 만져보고 있는 아이
ⓒ 송춘희
이런 4가지 테마의 전시실 말고도 영상실과 어린이 교실, 체험교실 야외마당이 있었다. 영상실에는 고구려고분벽화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분에 대한 영상이 진행 중이었다.

모든 체험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나도 한마디'코너에서 각자의 소감을 써 본다.

"옛날에 썼던 물건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다른 박물관에는 실습도 못하는데 여기는 달라요."
"내가 모르는 것도 알게 되고 옛날 사람생각도 이해하면서 유익한 시간이 된 것 같아요."

1시간 30분의 짧은 기행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책으로만 읽고 유리상자속의 보물을 들여다보는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갑옷을 입어보기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선진화된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체험을 한 아이들이 다음에 부여박물관에서 진짜 금동대향로를 보게 된다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어린이 박물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이촌역2번출구
                           버스 초록버스:0211 빨간버스:9502
매주 월요일과 1월1일은 휴관
전화번호;02-2077-9000
인터넷 예약인원 하루 6회 1회당 100명씩 현장판매 회당 50명
주말에는 매우 혼잡하므로 되도록 평일이용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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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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