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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유엔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찾은 부시 대통령(오른쪽)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유엔본부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에 '비밀지하무기시설'이 있을 거라며 여론을 들썩이게 한 2월 15일자 빌 거츠 기자의 <워싱턴 타임스> 기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기사는 중국이 구소련처럼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주입시킴으로써 미국이 현재 처한 진정한 어려움이 무엇인지 호도하고 군수업체들을 돕는 것이다.

보수적인 언론은 세계화의 진정한 위험에 적응하는 대신 1960년대의 소련과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을 비교하면서 이미 폐기되어 버린 냉전시대의 안보체계를 지탱하려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누구라도 인지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진짜 도전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대영제국의 길을 경쾌하게 걸어간 미국

오늘날 미중 관계는 1910~1970년대에 표출된 영미간 경쟁관계와 유사점이 상당히 많다.

비록 영국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널리 퍼지면서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측면도 있고 양국이 무력경쟁을 펼친 것도 아니지만, 영국과 미국은 명백히 세계의 시장·금융·기술·문화를 두고 주도권을 다투는 사이다. 불행히도 지난 세기 경쟁에서 압승을 거둔 미국은 영국이 밟았던 똑같은 길을 더 빠른 속도로 경쾌하게 걸어가고 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대영제국은 경제·외교·군사 분야에서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패권을 누렸다. 경쟁상대는 항상 존재했지만 영국 해군은 세계의 해상통로를 지배했고 영국화폐인 파운드는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었으며 영국문화는 세계적으로 숭상받는 등, 대영제국의 해는 결코 지지 않았다.

세계 패권을 두고 영국과 오랜 경쟁을 벌여온 미국은 군대의 규모를 크게 늘리기는 했지만 영국과 군사 대결은 벌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용히 다른 분야에 노력을 집중해 결국 영국을 밀어내고 정치·사회·경제 분야의 중심국가로 떠올랐다.

오늘날 미국이 중국을 돕고있는 것처럼 실제로 영국도 이 과정에서 미국을 도왔다. 스스로를 함정으로 몰아넣으며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에 참전해 피폐해진 영국은 결국 자원을 바닥내고 자본과 공산품 모두를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이 해상통로를 지배한 것은 미국이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오랜 전쟁과 다른 작전으로 영국 해군이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미 해군이 해상통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미국도 중국에게 어쩔 수 없이 지배권을 넘겨주게 될지 모른다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 핵무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스스로를 몰고 갔기 때문이다.

'테러'라는 용어는 의미부터가 광범위하고,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으며, 미국의 번영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또 전통적인 자유를 축소하고, 미국의 명성에 도덕적인 흠결을 남길 것이다.

스스로 함정에 들어갔던 영국,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20세기에 미국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기술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지배력과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다. 미국이 날로 영악해져 가는 것을 진작에 알아보지 못한 영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도움에 의존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은 총 해외투자의 40% 이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자본 공급국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은 미국에 큰 빚을 진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일년에 지출하는 총재정의 40%를 이자로 지출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한 예로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영국군에 군수물자를 제공하기 위한 무기대여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영국의 모든 생산설비는 수출품을 만들기보다 군수물자 생산에 주력했다. 예상대로 1944년 영국의 총수출은 1938년의 31% 수준에 그쳤다.

영미간 무기대여 프로그램을 비유로 든 것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면, 아마도 현재 중국의 제조업이 미국의 군사활동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달러화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 다른 아시아국가에 채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제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러라고 해서 파운드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미국인들은 더 이상 중화인민공화국이 사들인 미국 채권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미국이 20세기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중국도 21세기 들어 첨단기술과 제조업에서 두드러진 진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인들이 중국이 최고의 기술을 가진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순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놀라운 속도로 줄고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도 미국 경제의 하강으로 타격을 입긴 하겠지만 미국이 집중적으로 중국의 채무국이 되어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시장을 다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경찰보다 반가운 국제파트너, 중국

▲ 지난해 7월 이라크 어린이들이 바그다드의 사드르 시티에서 떠나는 미군 순찰대에 돌을 던지고 있다.
ⓒ AP 연합뉴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경쟁관계는 지난 세기 영국과 미국간 경쟁관계와 놀랍도록 유사한 점이 많다. 미국이 끊임없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시장을 개방해라"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테러는 위험하다"고 설교하는 동안, 중국은 남의 일에 간섭해야만 할 것 같은 양심적 욕구를 억눌러왔다.

이 몇 가지 주제에 미국이 집착하는 동안 중국이 상당히 덕을 봤다. 다른 나라에 대한 판단을 자제하고 경제적 우호관계를 넓혀나간 덕분에 이래라 저래라 말 많은 미국 대신 중국이 더 반가운 경제협력파트너가 된 것이다.

중국의 접근방식은 19세기에 미국이 주창한 문호개방정책과 20세기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선포한 '민족자결주의'의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영국이 식민지 제국 위에 군림한 것과 대조적으로 전세계인의 주권을 걱정해주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서서히 심어 나갔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들은 미국의 간섭과 요구가 자신들의 주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며, 중국이 보다 편한 협상 상대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긴장관계가 조성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비교적 중국에 호의적인 미국의 안보기획 담당관이라도 항상 전쟁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구체적인 전쟁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현 상황을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미국에 훨씬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위협을 단순히 군사적인 측면에 국한시키면서 미국은 기술 및 경제의 성장부진으로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을 편리하게 외면할 수 있다. 전방위에 걸친 진정한 중국의 위협에 진지한 자세로 대응하는 것을 자꾸만 미루게 되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중국과의 대결, 안보 시스템 유지엔 도움되겠지만

마지막으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논의하는 자체가 미국의 대응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늘어나는 무역적자와 이라크 포로 고문 스캔들을 통해 미국은 경제와 문화에서 누리던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이 다양하고 세련된 접근방식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때, 조건반사적인 군사적 대응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가능성이다. 중국을 떠오르는 음험한 군사강국으로 색칠하는 것은 불필요한 분쟁에 개입할 여지를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민영화의 와중에 미 군사력이 껍데기만 남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될 것이다.

중국과 전지구적 차원에서 대결하려는 구상은 현상을 유지하고 이미 낡아빠진 안보 시스템을 지탱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미국이 지금 물질적인 힘의 절대 한계치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번역: 정혜진)

덧붙이는 글 |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는 펜실베니아대학 극동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이며 일본의 진보적 웹진 <저팬 포커스>의 회원입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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