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토요일 아침에 요번에 중학교를 졸업한 첫째가 '아뻐' '아뻐'하면서 아양을 떨었습니다.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약간의 비음이 섞인 '아뻐'라고 하면서 달라붙을 땐 나에게 무슨 부탁이 있는 겁니다.

사실 이럴 땐 기분이 무척 좋지요. 아이를 위해서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애정을 표현하고 싶지만, 제가 다정다감하지 못한 관계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아빠로서 얼마간의 표현 미숙을 한꺼번에 만회할 작정입니다.

"무슨 부탁이냐?"
"음~ 내일요. 코스프레에 갈려고 하는데요. 행사장이 너무 멀어요. 아빠가 차를 좀 태워주세요."

녀석은 샐샐거리며 존대말까지 섞습니다. 저는 일단 한번 째려봅니다.

'그래! 네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뭔가를 할 용의가 있는 내가 바로 너의 아빠야!'

폼 한번 잡는 거지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녀석은 말을 잇습니다.

"푸름이도 데리고 가거든요."

이건 완전히 스커트미사일 수준의 공세입니다. 푸름이는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둘째 아이의 이름인데 워낙이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라 그런 곳에 따라 붙기를 좋아합니다. 자매가 자주 같이 다니고 우애 있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첫째의 공세는 무지막지(?)했습니다. 더 이상 겨뤄보지(?) 못하고 무조건 넉다운입니다.

"몇 시냐?"
"아침 9시30분에 출발하면 돼요."

일요일 아침부터 부산했습니다. 녀석들은 코스프레에 쓸 옷을 챙기고, 가발도 챙기고 왔다 갔다 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도 왠지 들떠 있지만, 속으로는 녀석들의 아양을 한번 더 받아보고자 하는 마음이어서 느긋한 체 했습니다.

다섯 살 셋째는 언니 둘만 어딘가에 나서는 것이 샘이 나는 모양인지 "아빠! 나하고 등산가요"라며 뜬금없이 등산타령을 했습니다. 따라나설 자리는 아닌 것을 알고 있으니깐 투정을 부리는 것입니다. 못 들은 체 했더니, 말이 늘어지기를 시작합니다.

"아아빠아 나아하고오 드응산 가요오 네에?"

몇 번 반복하더니 스스로에 취해서 울먹이기까지 했습니다. 달랠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우리 '하늘'이도 언니들 데려다 주는데 같이 갈까?"

셋째는 금방 "히~"하더니 "네" "네"를 연발하며 폴짝 폴짝거렸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첫째의 친구들 몇을 함께 태워서 코스프레 행사장으로 떠났습니다. 녀석들은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거리낌 없이 반가워합니다.

첫째의 친구들과는 평소에도 안면이 있습니다. 아따~ 녀석들, 어지간히도 재잘거리더군요. 알아먹지도 못하는 지네들끼리의 유행어도 많더라구요. 짐짓 관심이 없는 듯 녀석들의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나의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대하여 바짝 긴장을 하면서 듣고 있었지요.

그 대화들 중에는 "아빠에게 맞는다"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약간 과장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매우 힘들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하던데, 저도 화가 나면 아이에게 윽박지르는 경우도 있어서 저도 자유롭지는 않은 셈입니다.

행사장은 대구 외곽에 있는 지하철 역사였습니다. 생각보다는 의외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코스프레라는 생소한 문화가 궁금키도 하고, 이왕에 나선 걸음이어서 막내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행사장 입구까지 가긴 했는데, 모두가 첫째의 또래 이하 아이들뿐인 것 같아서 쭈뼛거리다가 그냥 돌아나왔습니다.

그들과 다른 낯선 방문객을 용납하지 않을 듯하여 주눅이 들었습니다. 행사장 안은 많이 들뜬 분위기더군요. 만화주인공의 차림새를 하고 즐겁게 논다? 솔직히 말해서 무슨 대단한 재미가 있을까 생각했지요. 쩝.

"아빠 '하늘'이 안전벨트 단단히 채우고 가세요."

첫째와 둘째의 시덥잖은 간섭이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쉬지 않는 막내의 옹알거림은 정말 행복한 울림이었습니다.

"아빠! 어쩌구 저쩌구, 아빠 어쩌구 저쩌구…."

간판이나 표지판의 글씨 중에 읽을 줄 아는 글씨가 있더군요. "아빠! 저거 '약' 맞지요?" 등등, 천사와의 데이트가 있다면 이런 것이겠지요? 아이가 찍어온 사진입니다. 복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찍히고 즐긴다 하네요.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투털이더군요. 녀석들의 입장에선 불만이겠지만, 저는 이 사진의 흐릿함과 어설픔이 더 정겹습니다.

▲ 제일 우측에 있는 녀석이 저희 첫째입니다
ⓒ 정학윤

▲ 첫째의 친구들
ⓒ 정학윤

▲ 우측이 저의 둘째입니다
ⓒ 정학윤

▲ 좌측이 저의 첫째입니다
ⓒ 정학윤

코스프레는 무엇일까요?

코스튬 플레이(복장놀이)가 코스프레의 원어로서, 그 시작은 영국에서 죽은 군인들을 애도하는 뜻으로 복장을 따라하는 것에서 유래되었고, 미국의 할리우드를 거쳐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으로 건너가서 더욱 더 대중화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지금의 코스프레란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 속의 주인공, 만화 주인공의 복장을 따라하고 즐기는 놀이인데, 지금은 대개가 만화 속의 주인공의 복장을 따라하는 것으로 굳어진 것은 일본의 영향 때문이라는군요.

검색을 하면서 코스프레가 의외로 대중화 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에 슬레이어즈(만화영화인 듯)가 방영될 때에 도입된 것이 시초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따라잡기가 예삿일이 아니군요. 그들의 코스프레에 우리나라의 위인들도 등장하고 우리의 동화 속 주인공도 등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이들이 보기엔 이런 생각을 하는 저는 어쩔 수 없는 구닥다리겠지요? 아이들에게 그런 코스프레와 유사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작정입니다. 아우내 장터에서 3·1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퍼포먼스 같은 것이 그런 것 아닐까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