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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3일. 만 29세에 요절한 천재가수 배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다. 종로 2가의 우미관 자리에 있는 뷔페식당 파노라마가 모임 장소다. 시각은 오후 7시. 인천 동암역에서 전철에 오른 뒤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내리니 오후 6시다.

20대 젊은이의 배호 노래 사랑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출발한 것은 오랜만에 영풍문고에 들러 보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풍문고에 들어가니,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주 낯익은 책을 20대 젊은이가 책상다리 자세로 앉아서 읽고 있지 않은가. <배호 평전>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 맹활약하다 1971년 11월 7일에 세상을 등진 가수를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났을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다니… <배호 평전>을 쓸 만큼 배호의 열성 팬인 나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그 책의 저자입니다만…."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20대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60년대 가수 배호를…?"
"저희 아버님이 교감 선생님이신데 배호 노래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듣게 되었죠. 그런데 가짜 테이프가 참 많더라구요."

"대학생이세요?"
"예, 학교를 다니다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마치고 올해 복학합니다."
"무엇을 전공하십니까?"
"음대에 다닙니다. 성악 전공입니다."

그는 배호의 요절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배호님이 살아 계셨으면 좋을 텐데요…."
"우리 대중음악이 더 많이 발전했을 겁니다."
"예."

억양이 특이하여 물어보았다.

"집은 어디입니까?"
"강릉입니다."
"어쩐지 억양이 억세더라구요. 강릉 주문진 아들바위 옆에는 배호의 '파도' 노래비도 세워져 있죠. 작년 가을에 해일을 만나 파손되었는데 다시 세워 놓았더군요. 500원짜리 동전을 환경 보호에 쓰라고 던져 넣으면 '파도'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그건 틀림없는 배호의 노래죠."

"예… 배호님은 병 때문에 일찍 숨졌죠?"
"배호님은 비가 내리는 장면의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이상하게도 비를 많이 맞고 병이 도져서 숨졌습니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 녹화를 마치고 늦은 밤에 야간통행증으로 귀가하는 도중에 비를 많이 맞았죠. 폐렴에 신장병이 합병되어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김광빈옹, '두메산골'을 부르다

그 대학생과 헤어진 뒤 배호 모임이 열리는 파노라마로 향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김광빈(85)옹과 부인 안마미 여사가 참석했다. 이웃에 사는 젊은이가 두 분을 승용차로 모시고 온 것이다.

배호의 막내 외숙부 김광빈옹은 배호의 고향인 중국 제남시에서 배호를 업어 키웠다. 부산에서 중학교를 그만두고 노래로 성공하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배호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예명(裵湖)을 지어주었으며, 배호를 대중음악 무대에 데뷔시킨 스승이 바로 김광빈옹이다.

배호가 배운 것은 노래뿐만이 아니다. 부친이 요절하였기 때문에 가장(家長) 수업까지도 함께 받은 셈이다. 처음에는 외숙부 집에 머물다가, 얼마 후 청량리에 사글셋방을 마련하여 어머니와 막내 여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 자신이 작곡한 노래 <두메산골>을 열창하는 김광빈옹.
ⓒ 김선영
거의 배호 노래를 부르는 배호 팬들의 노래자랑이 시작되자 MBC 초대 악단장을 지내기도 한 김광빈옹이 자신의 곡인 '두메산골'(반야월 작사, 배호 노래)을 신청했다. 김옹은 80대 중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2절까지 불러 배호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몇 해 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뒷머리가 다시 검어지는 젊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마미 여사는 두 분이 함께 "(오랜 기간 음악 활동을 했던) 홍콩에 다녀왔다"고 했다. 홍콩에는 현재 목회 활동을 하는 아들이 있다. "손녀딸만 있었는데 손자를 보게 되어 재롱 받아주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2004년에 정용호 배호 의제와 함께 김옹 부부 두 분을 모시고 김옹의 가묘(假墓)에 다녀오던 일이 생각난다. 김옹의 자택 앞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어땠어요, 내 아파트가?"

김옹의 유머 감각에 나는 "예, 좋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가묘'를 '아파트'라고 말한 것이었다. 왜 "아파트에 들지 않고 만수무강하실 겁니다"라고 대답해 드리지 못했을까.

배기모(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의 새 회장을 회원 투표에 의해 음악인 여종구씨로 뽑고 나서 두 번째 가진 이날 모임에는 회원 90여 명이 참석했는데, 김광빈옹 내외분의 참석으로 더욱 뜻깊은 저녁을 보냈다. 회원들의 배호 노래를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종각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인천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어 있었다.

▲ 배기모 새 회장인 대중음악인 여종구씨도 회원들의 요청을 받고 한 곡 불렀다.
ⓒ 김선영
▲ 2004년 제1회 강릉 배호 파도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박미화씨가 <여자의 일생>을 열창하고 있다.
ⓒ 김선영
▲ 가수 홍지현씨가 <사랑가>를 부르고 있다.
ⓒ 김선영
▲ 김광빈옹 부부를 자신의 승용차로 모시고 온 이웃집 사람들(김광빈옹 부부 맞은편).
ⓒ 김선영
▲ 배호 노래를 즐기며 20대처럼 젊어지는 중장년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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