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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시민기자의 눈높이에서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하고싶은 말을 할 것."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인터뷰에 앞서 데스크의 주문사항이었다. 한 가지 더. "이광재 의원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 있다는 각오로 질문할 것"이라는 '엄명'도 내려졌다. 으레 정치인들에 대한 '주례사' 인터뷰에 그쳐선 안 된다는 당부였다.

독자들에게 결론부터 고하면, 후자는 실패였다. 데스크의 주문을 가슴에 비수처럼 품고 인터뷰에 임했지만 이 의원이 <오마이뉴스>에 등을 돌릴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몇 차례 얼굴이 굳기는 했지만 이 의원은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으며 차분하게 소신을 드러냈다.

사실 기자는 이 의원이 이렇게 미소가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정치인과 마주치면 기자는 자연스레 농담 따먹기도 하며 '스킨쉽 취재'를 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었다.

아무튼 '뉴스'를 뽑아내지 못한 것은 기자의 능력 탓으로 돌린다. 다만 애초의 예정시간을 넘기며 2시간이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자는 이광재 의원의 '속살'에 착목했다.

'우'광재라는 별칭에서 드러나듯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 의원은 참여정부에 어떤 식으로 참여해왔는지 '대통령 노무현'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는지, 기자는 그 속살을 드러내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비겁한 변명으로 기사를 시작한다.

2번의 특검... "한나라당 용서하려고 기도한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오후 4시 20분께 의원실에서 진행되었다. 방에 들어선 사진기자가 한 마디 내뱉었다. "의원님 방에는 노 대통령 사진 한 장이 없네요"라고.

온 나라의 공공기관이 대통령 사진으로 도배되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 사진은 차츰 사라지더니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17대 여당 국회의원들 중에는 방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한 장쯤 걸어 놓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이 이광재 의원은 노 대통령의 '오른팔' 아닌가. 그는 사진기자의 질문에 별다른 답을 않고 그냥 씩 웃는다.

그의 방은 '창고' 같았다. 사람보다 책과 자료집들이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둘러친 책장으로 모자라 서점이나 책 대여점에서나 볼 수 있는 미닫이식 이중 책장이 들어서 있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의 이 의원은 시민단체가 선정한 '우수의원'이다. 2004년도엔 8권, 2005년도엔 14권의 정책자료집을 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이 의원은 "까먹기 전에 줘야지" 그러더니 책장 한 켠에에서 <용서>라는 책을 꺼내 기자들에게 한 권씩 선물했다. 중국인 빅터 첸이 기록한 티베트의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이다. 티베트와 중국, 그 적대적인 국가에 속해있는 둘은 세계 전역을 함께 여행하며 용서의 대화로 우정을 쌓는 얘기였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했다. '용서'. 이광재 의원처럼 송사에 많이 휘말린 정치인도 없다. 하지만 모두 벌금형 혹은 무혐의로 끝났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는 "한 개인을 놓고 특검(노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러시아 유전개발 특검)을 두 번이나 한 것은 제가 유일하다"며 "저는 물론이고 친인척 수십명이 혹독한 과정을 거쳤지만 한나라당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저들을 용서할 그릇이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불교신자)를 많이 했다"고 말한다. 그는 "털었는데 안 나오지 않았냐"며 결백을 강조했다.

반면 또다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는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1년 옥살이를 했다. '우'광재와 '좌'희정은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한쌍으로 묶여 얘기돼 왔다. 이 의원은 "나, 희정이, 서갑원 의원 셋이 앉으면 우리 중 누군가 총무를 맡으면 생겼을 일인데라는 말을 한다, 그런 면에서 안타깝다"고 부채감을 드러냈다.

안씨와는 지금도 본다고 한다. "희정이 애가 많이 아팠고 (안씨 자신도)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안씨의 정치 복귀에 대해선 "미네르바(지혜)의 숲에 사는 부엉이는 석양이 깃들 때 날갯짓을 한다"며 "때가 와야 움직이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그닥 멀지 않은 시기라는 인상을 받았다.

"안희정은 미네르바의 부엉이... 때가 되면 날개짓할 것"

이광재 의원은 "청와대 생활이 끝나면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다"며 "연구를 하거나 학생을 가르치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꿈은 깨졌다. 2003년 말 미국 스탠포드대학으로 유학할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그의 미국행이 언론에 알려졌고 오비이락으로 썬앤문 사건이 터졌다. 불법정치자금 95억 수수 혐의였다. 한나라당이 특검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미국으로 가면 도망가는 것처럼 비춰질까 싶어 유학을 접었다.

'무혐의'로 결론이 내려지자 그는 "황량한 들판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 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고 운명인가 싶어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국회의원으로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 노 대통령의 권유 아닌가.
"전혀. 대통령은 정치하지 말라고 했다."

- 왜 말린 것인가.
"정치와 제가 썩 잘 맞지 않는다. 저 스스로를 볼 때도 그렇다."

- 강원도를 선택한 이유는.
"좀 더 편한 지역도 있었지만 굳이 고향을 선택한 것은 동계올림픽 유치 여망이 있었고 폐광 지역에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다. 정치란 게 욕을 먹고사는 것인데 좀더 지역에 보탬이 되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일을 하면 욕 먹는 걸 상쇄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했다."

그는 애초에 대통령 국정상황실장직도 고사했었다고 한다.

"한국정치의 특성으로 보아 언젠가는 내가 표적이 되어 공격을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내정이 되었지만 하루 전날 그냥 제가 맡는 것으로 됐다."

- 대통령의 의중인가.
"아니다. 문희상 실장(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이 '명실상부하게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했고 신계륜 실장(인수위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도 그렇게 하는 게 낫다고 해서."

- 다들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하는데 측근 맞나.
"(웃음) 글쎄요. 대통령이 되시기 전에는 그리고 상황실에 있을 때는 가까이 있으니 측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자주 뵙지 못한다.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 다하는 것이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럼 '심정적' 측근인가.
"뭐,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거의 만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의아하겠지만 청와대 들어가서 대통령을 뵌 게 채 아마 10번이 안 된다.(그는 7개월 동안 국정상황실장으로 일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독대를 말하나.
"단독 면담 자체를 안 하신다. 항상 의사결정 과정에서 리스크(위험도)를 체크해야 되기 때문에 독대는 안 한다. 미팅은 해당 사안별로 담당자들과 이뤄진다. 상황실도 문서로 보낸다. 독대는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다. 의사결정 과정의 왜곡을 막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고나서 당선될 때까지는 몇 차례 독대가 있었는데 채 10번이 안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후보 주변에 모여들어서 후보를 객관화시키는 것이 선거전략에 맞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참모는 자신의 확고한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이지 가까이 있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노 대통령은 독대 안 한다... 아주 가까이 있다고 도움되는 것 아니다"

이광재 의원은 인터뷰를 잘 안하는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기사를 뒤졌지만 참고할 내용이 별로 없었다. 그의 관한 기사는 많았지만 그의 '입말'로 처리된 기사는 드물었다. 이번과 같은 와이드 인터뷰는 2004년 초 한 시사잡지와의 인터뷰 이후 처음이다.

"일단 제가 누구의 참모 역할을 하고 있어서…. 참모는 말없이 뒤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확고한 내 생각이다. 국회의원 되어서도 상임위 관련된 것 외에 다른 것은 발언을 일체 하지 않았다. 또 제 성격 자체가 별로 나서는 것 좋아하지 않고 해서…."

그는 인터뷰 내내 '측근'이라는 표현 대신 '참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역대 대통령 중에 국정운영 지지도가 최하위인 노 대통령.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그의 심정은 어떨까?

그는 별로 침울해 하지 않았다. 단호한 투로 긴 설명을 이어갔다.(이 대목에선 미리 메모를 준비한 듯 싶었다.) 핵심은 이렇다. 첫 번째, 3당 합당이나 JP 연합 등이 없었던 소수정권의 한계, 두 번째, 보수와 진보의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양측의 협공.

"역대 대통령들은 80~90% 지지율로 시작해서 10%에서 끝났지만 우리는 30~40%로 시작해서 60~70%에서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영원하다. 나라를 보고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내가 세종이 되려고 했지만 태종이 되어야겠다'고 말했는데 다음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말을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에게 '직언'을 부탁했다. 참모라면 '쓴 소리'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는 "제가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피했다.

- 꼬집을 게 없어서인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때와 장소를 가려서…."

- 참모의 역할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물론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적합치 않다."

결국, 이 질문은 인터뷰 말미에 다시 한번 묻는 것으로 에둘러 갔다.

이 의원은 87년 학생운동 시절에 부산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지금까지 18년 동안 정치적 동지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그가 당시 이끌린 노 대통령의 매력은 3가지. ▲너무 솔직해서 탈인 인간적 매력 ▲'우리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조직과 인간이 되자'던 말씀 ▲직업인이 아닌 세상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사는 태도. 지금도 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월급쟁이가 아닌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살자"는 말을 한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례. 이 의원이 전한 이른바 '노무현의 컴퓨터 따라잡기' 방법은 이렇다. ① 컴퓨터 관련 서적을 본다. 그리고 외운다. ② 아들과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컴퓨터를 산다 ③ 책에 씌여진대로 분해한다. ④ 결국 조립을 못한다. ⑥ 그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원리를 터득한다.

그는 "노 대통령은 굉장히 원리에 천착하는 분"이라며 "그래서 시작은 느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성과가 드러난다"고 평했다.

-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 '대통령 노무현'을 비교하면 어떤가.
"인간적인 면에선 달라진 게 없다. 다만 현격한 차이는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노 대통령의 지적 역량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나이가 들면 떨어지는데….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모 수석보좌관이 대단한 존경심을 표하면서 한 말이다."

- 어쩜 청와대 안과 밖의 평가가 이렇게 다른가.
"그런 것 같죠. 안타깝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 386 참모들이 대통령과 눈과 귀를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청와대 전체구성을 보면 핵심 위치에 있는 수석보좌관에는 386이 거의 없다. 과도하게 해석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정치사를 보면 정치변동과 세대교체는 함께 왔다. IMF를 겪으면서 조기 퇴직자들이 양산되고 동시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막연한 거부감과 불안이 증폭된 결과라고 본다.

- '아마추어'라는 지적은.
"부족한 것은 있지만 아마추어리즘은 아니다. 가장 경쟁이 심한 재계는 이미 40대로 세대교체가 되지 않았나. 정치권은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

'우'광재가 노 대통령에게 던진 쓴 소리는?

- 노 대통령의 임기가 2년 남았다. 이 의원의 정치적 행보는 어떻게 되나.
"모르겠다. 의원으로 있는 것이 내 자리에 맞는 것인지 확신을 못 하고 있다. 다만 현재 이 자리에 있고 국민의 세금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므로 혼신을 다하고 있지만, 내 미래는 모르겠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사실 내 개인의 목표가 없다."

-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말도 했는데 같이 내려갈 수도 있는 건가.
"배제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본다. 누군가는 퇴임 후의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는데 내가 안 되리라는 보장은 또 어딨나. 노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 주이지, 내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주는 아니다."

- 내 인생은 없다니… 엄연한 독립된 객체 아닌가.
"대통령을 누군가 모셔야 하고 내가 지목되면 피할 생각이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인연을 맺었는데 소중하게, 분명하게 하는 것이 사람의 중요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다음 대통령을 만드는 역할은 안 하나.
"이번 지자체에서 5:5 균형을 만들어서 지방정부 혁신을 한 뒤 대선에서 한 번만 더 이기면 그 다음은 어쩌면 우리가 집권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완전히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번 더 집권하는 문제는 민주개혁세력의 과제다. 그 길까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혼신의 힘을 다 할 것이다. 그걸 해야 참여정부가 깔아놓는 역사적 가치가 사실상 완성된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앞서 유보된 답변. 노 대통령에 대한 직언?

"오랜 전부터, 참모 시절부터 항상 드리는 말씀인데 일요일에는 좀 쉬시라. 88년도부터 드린 말씀이다.(웃음)"

헉!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이 '역사를 쓴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은 확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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