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2월 의회에 제출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관련 보고서에서 "한국과의 FTA 협상을 시작하면 한국에 투자하는 미국인들과 미국 기업들을 한국 법률이 아닌 미국 법률로 다루고 보호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음이 밝혀졌다.
한편, 현재 미국은 자국에 투자하거나 혹은 진출해 있는 외국인과 외국 기업들을 미국 법률로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미국 측의 치외법권(治外法權)을 요구하겠다는 것은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법률적 통제와 관련하여서는 속지주의(屬地主義)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만, 외교사절·군함·군대 혹은 국제기구 고위층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치외법권이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 개인에 대한 치외법권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사재판(consular jurisdiction) 제도하에서 인정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은 한국에, 제2차 대전 이후로 자취를 감춘 개인에 대한 치외법권, 즉 '현대판 영사재판 제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사재판권 요구는 상대방 국가의 사법제도에 대한 멸시 풍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점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조선과 미국 간의 기본조약) 체결에서도 잘 드러났다.
영사재판권은 상대 국가 멸시에서 비롯
당시 미국정부가 조선에 대해 요구한 영사재판권은 16세기 터키에서 처음 실행된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 제국(諸國)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유럽의 '선진적인' 기독교 국가가 '후진적인' 비기독교 국가에서 실시하는 것이었다.
선진적인 기독교 국가들이 후진적인 비기독교 국가에서 영사재판권을 실시한 것은, 기본적으로 후진 국가들의 사법제도에 대한 멸시 풍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에서 자국의 국민과 기업이 야만적인 형사 절차 때문에 생명·신체·재산의 손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1882년 당시 미국도 조선에 대해 마찬가지로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조미수호통상조약 제5조 4항에 다음과 같이 영사재판권이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조약문은 한문과 영문으로 표기되었는데, 한문본에 비해 영문본이 치외법권에 대해 더 명시적으로 표기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영문본을 번역해 소개하기로 한다.
"존귀한 우리 양 조약 체결국은 다음 사항에 관해 합의하고 또한 이를 양해한다. 조선 군주가 자국의 법률 및 사법절차를 상당한 정도로 개정·개혁하고, 그것이 미국 측이 보기에 자국의 법률 및 재판절차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조선에 있는 미합중국 시민에 대한 치외법권이 철회되며, 이후 미합중국 시민은 조선 군주의 경내에서 조선 지방당국의 사법권에 복종하기로 한다."
이 조문에 따르면, 미국이 조선에 대해 치외법권을 요구한 것은, 당시 조선의 법률 및 사법절차가 미국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측에서 법률을 개정하여 미국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미국 측의 치외법권을 철회하겠다는 단서를 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미국이 치외법권을 요구한 것은 조선의 주권을 무시하고 침해한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조선의 사법제도에 대한 멸시에서 비롯된 측면도 강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야만적'인 조선에서 자국 국민이 어떤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던 것이다.
치외법권이 정작 실시되어야 할 곳은 미국 아닐까?
그런데 1882년 당시와는 너무나 딴판인 지금 상황에서, 미국정부가 아직도 한국의 사법제도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의 사법제도에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사법제도에서도 상당한 인권의 신장을 이룩했다.
사실 한·미 간의 역학관계로 볼 때에, 인권침해를 우려해야 할 것은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소수민족이 차별을 받지만, 한국에서는 '파란 눈동자'의 미국인들이 특권적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외법권이 굳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치외법권이 본래 비기독교 국가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USTR의 문제제기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요즘에는 한국 기독교가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밤중에 세상을 훤하게 밝히는 십자가도 미국보다는 한국에 더 많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미국보다 더 기독교적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비기독교 국가에게나 요구하던 치외법권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치외법권을 요구해야 할 국가는 한국이고, 치외법권이 실시되어야 할 곳은 미국이다. '관타나모 수용소'가 그 점을 웅변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한국이 '현대판 영사재판 제도'의 부활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국가 주권의 침해를 허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역시 미국의 사법제도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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