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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에 연횡책을 주장하던 소진이 진나라에 와서 왕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왕의 나라는 서쪽으로는 파촉(巴蜀)과 한중(漢中)을 이용할 수 있고, 북쪽에서 호마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무산(巫山)과 검중(黔中) 등의 천연적인 장애물이 있고, 동쪽으로는 효산과 함곡관이라는 험한 요새가 있습니다. 또 안으로는 천 리의 비옥한 평원이 있으니 이러한 지세를 이른바 '천부(天府)'라고 합니다."<전국책>

천부란 '하늘이 준 곳간'이라는 뜻으로, 토지가 비옥(肥沃)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뜻하는 말로 쓰여왔는데, 변산의 벌목 책임자로 부안에 온 고려조의 문장가 이규보는 변산을 '천부'라 하였다.(邊山自古稱天府-<남행월일기>)

'허천난 장' 부안장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부안군 하서면 청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지금은 계화도 간척사업으로 논이 되었지만 앞에는 너른 갯벌이 펼쳐져 있었고 뒤로는 석불산을 등지고 있었다.

이 마을을 지나면서 어사 박문수는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고 하였다. 암행을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간 박문수는 영조 임금에게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부안현에 있는 청호(晴湖) 마을이라고 아뢰었다고 한다.

이 같은 부안의 풍요를 주도했던 것은 수산물이었다. 부안 장에 오면 산, 들, 바다에서 나는 온갖 물산이 풍부하고 거래도 활발하여 돈이 많이 돌았다. 부안장을 일러 '허천난 장'이라 하였다. '허천나다'라는 이 지방 말은 '게걸스럽게 먹을 것이 풍부하다'라는 뜻이다. 허천나게 많았던 것은 수산물이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부안에서는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값을 주고 사지 않아도 풍족하다"고 하였다.

전북 어업생산량 1/3로 격감

▲ 97년만 해도 하루에 500kg의 백합을 잡던 거전갯벌. 4공구가 막히자 포구는 폐허로 변했다.
ⓒ 허정균
부안이 이처럼 수산물이 풍부한 이유는 하구언으로 막히지 않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흘러드는 하구역 갯벌(estuary)인 새만금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조수가 밀물 때 강을 따라 밀고 올라가는 하구역 갯벌에는 다른 갯벌보다 2배 가량 많은 생물종이 있다고 한다. 또한 바다 생물의 약 70%가 갯벌에서 알을 낳고 성장기를 보내는 데 갯벌은 산란장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새만금 갯벌을 중심으로 황금어장이 형성되었다. 새만금 갯벌을 배후지로 둔 칠산어장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하구역 갯벌을 배후지로 둔 연평어장, 서남해안의 갯벌을 배후지로 둔 흑산어장과 함께 서해 3대 어장으로 모두 파시가 서던 곳이었다.

이러한 칠산어장이 새만금방조제로 갯벌이 죽어가면서 궤멸하여가고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전라북도의 어업생산량은 방조제 공사 직전인 1990년 15만234톤이던 것이 2005년도에는 5만6558톤이다. 거의 1/3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700만 원 받고 빼앗긴 삶의 터전

새만금 방조제 안에만 2만여 명의 어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에게 1995년 7월부터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1999년까지의 1차 보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새만금 어민 1차 보상 내역(1999년까지)

 

구분

건수

금액(평균-단위:백만원)

면허어업

439

223,044(508.07)

어선어업

1637

63,164(38.58)

수산제조업

70

11,588(165.54)

맨손어업

6585

44,638(6.78)

8731

342,434(39.22)

 

ⓒ 전라북도

그레나 갈고리를 가지고 조개를 채취하는 맨손어업이 75%나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내준 대가는 단돈 700만 원이었다. 어선어업의 경우도 4천만 원이 안된다. 배를 당시 시세대로 파는 가격밖에 안되었다. 몇 억 원씩 보상금을 타낸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 갯벌에 발 한번 담가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헐값에 양식면허권을 사들여 서류상으로 양식면허업을 가지고 있다가 돈벼락을 만난 것이다.

어촌탈출 양극화로 이어져

▲ 화옹호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4개월이 지난 후의 남양만 호곡리 포구. 남양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가리맛조개 생산지였다(2002년 7월).
ⓒ 허정균
33km 방조제가 뻗어나가며 전북의 포구들은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1방조제 안쪽 부안군 하서면 돈지 포구, 이장이 5명이나 되었던 돈지 포구가 가장 먼저 폐허가 되었고, 108세대 가운데 102세대가 맨손어업으로 갯벌에만 의지해 아들 딸 대학까지 가르치며 살던 군산 내초도 주민들은 4공구가 막혀 갯벌환경이 악화하자 젊은이들은 다 빠져나갔고 노인들만 남아 쓰레기 분리수거 작업장에 나간다. 280명이나 되던 내초초등학교 학생들은 9명으로 줄었다. 멸치잡이배의 흥겨운 '세노야' 가락으로 넘실대던 하제포구엔 폐선들만 즐비하다.

보석 같은 소금을 담아내던 옥구염전엔 골프장 농약병이 나돌며, 칠산바다를 장엄하게 물들이며 함지로 들어가던 해를 보던 심포항엔 인적이 끊어졌다. 폐교가 늘어가고 있고 전북의 인구는 무장무장 줄어들어 180만 명대로 떨어졌다. 이처럼 새만금사업은 갯벌 생물의 생매장뿐만 아니라 인근 어민들의 생존을 압살하는 사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최우선 민생대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꼽았고 적극적인 양극화 해소 노력을 강조했다. 전북 도민들의 평생 일자리를 파괴해가면서 어떤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농민들을 도시빈민화하면서 양극화 해소하겠다는 말이나 같은 말이다.

현재 새만금방조제 안에는 배를 방조제 밖으로 빼라는 정부의 통보를 무시한 채 1600여척의 어선들이 남아있다. 이들 선주들은 끝물막이공사를 막기 위해 대규모 해상시위를 하겠다고 한다. 부안반핵투쟁에서와 같은 민과 관의 또 한번의 충돌이 우려된다.

덧붙이는 글 | 허정균 기자는 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 회원입니다. 

<부안21>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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