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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급식시간에 어머니 도우미가 정말 필요할까. 얼마 전,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 회원 10여 명이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의 직장인 어머니들은 이 문제로 시위까지 벌이는 상황이지만 한국과 가장 비슷한 학교환경을 가진 일본에서는 어떨까.

현재 일본의 대부분 초등학교는 교실에서 자율급식을 하고 있다. 점차 전용식당을 갖추는 학교가 늘어가는 추세이지만, 초등학교 중 전용식당을 갖춘 곳은 10.3%, 교실을 개조한 식당은 11.4% 정도이다. 1, 2학년의 저학년 학생들도 학급 내에서 돌아가면서 직접 배식당번을 맡는다.

7~8세의 어린 아이들에게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이 과정에서 안전사고 발생의 위험은 없는지 일본 도쿄에 인접한 야마나시현 고후시의 한 시립초등학교 1학년들의 자율급식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 (상) 급식준비 끝! 조리실 옆 통로에서 조리사 한 분이 음식을 실은 왜건을 엘리베이터로 옮기고 있다. (중) 왜건을 엘리베이터에 싣기 위해 대기 중인 조리사. (하) 1학년의 급식당번 어린이가 왜건을 밀고 교실로 가고 있다.
ⓒ 장영미
일본 어느 초등학교의 점심시간

3월 2일, 시립 아이카와 초등학교. 이 학교는 1881년 개교해 올해 125주년을 맞았다. 여느 지방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동수가 격감해 현재 재적 아동수 420명가량이다. 그 중 1,2학년은 25명 내외 3학급으로 구성돼있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조리실에서는 각 반으로 갈 급식의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교사 뒤편에 마련된 임시건물이 조리실로 쓰이고 있는데 3~4명의 조리사가 음식을 담당한다. 아동 150명당 1명꼴. 조리사들은 모두 시 직원이다. 여기에 영양사 한 명이 3개교씩 담당하면서 급식지도를 한다.

이날 주식은 콩가루와 코코아가루를 묻힌 튀긴 빵이었다. 부식으로 준비한 녹두당면과 고기단자, 야채 등을 넣은 수프, 청경채와 새우, 메추리알, 죽순 등으로 만든 중화풍 소테 그리고 우유 150ml 냄새도 기가 막히다. 디저트는 푸룬 젤리. 이날 점심의 전체 칼로리는 622kcal, 이 중 단백질은 26.4g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1,2학년의 음식은 3단짜리 스테인리스 왜건에 실어 엘리베이터를 통해 2층으로 보내진다.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조리사가 대기하고 있다가 왜건을 내려놓는다.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학생들의 몫이다.

당번 학생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왜건을 끌고 각 교실로 간다. 급식당번은 12명씩 2교대로 이뤄진다. 주식 2명, 부식 4명, 식기 2명, 쟁반 2명, 우유 2명.

1학년 1반 앞. 당번 아이들이 음식을 가져오는 동안 교실에선 나머지 아이들이 책상 4~5개씩을 붙여 테이블을 만들고, 각자 책상을 닦은 후 깔개와 컵 등을 준비해 놓는다. 보건 당번은 보건실에서 가져온 칫솔을 나눠준다.

"이타다끼마스"

교실로 보내진 음식을 교실 앞에 배열하는 것은 담임교사의 몫이다. 앞치마에 삼각건, 마스크를 쓴 담임교사는 당번들과 배식대를 교실 앞쪽에 배치한 후 아이들이 날라온 음식들을 올려놓는다. 이어 당번들이 각자 맡은 위치에 서면 배식 준비 끝.

▲ (상) 급식 도우미는 교사뿐. 1학년 아이들도 스스로 배식해서 먹는다. 뜨거운 국은 담임이 떠주고, 나머지는 당번 아이들이 배식한다. (중) 모두 급식을 받았다. 이제 "이타다끼마스(잘 먹겠습니다)"가 울려 퍼지면 식사 시작. 영양담당 오시바 선생이 '우유와 칼슘'에 대해 설명한다. (하) 더 먹어야지~, 두 어린이가 반찬을 추가로 담고 있다.
ⓒ 장영미
먼저 우유 당번이 우유와 후식을 나눠주고, 각 아이들은 쟁반과 젓가락을 챙겨서 배식대로 간다. 빵 당번이 비닐장갑을 끼고 빵을 한 개씩 나눠주고, 뜨거운 수프는 선생님이 퍼준다. 반찬 당번에게 반찬까지 다 받은 아이들은 제자리로 가 다른 친구들이 모두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모든 배식이 끝나면 일직 2명(이 학교는 반장제 대신 반 아이들이 2명씩 돌아가며 소위 반장일을 한다)의 구령에 맞춰 "이타다끼마스(잘 먹겠습니다)"를 외친 후 식사를 시작한다. 더 먹을 사람이나 덜고 싶은 사람은 앞에 나가서 각자 양을 조절한다. 많이 먹는 아이들은 반찬 통이 바닥날 때까지 몇 번이고 더 가져다 먹기도 한다. 몇 개 남은 후식을 놓고 가위바위보로 승자를 가리기는 경우도 흔하다.

식사가 끝나면 정리하는 것도 아이들의 몫이다. 각자 남은 음식을 처리하고 빈그릇은 한데 모아 당번들이 조리실까지 들고 간다. 이 때는 왜건이나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급식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45분 정도. 배식 20분, 식사 20분, 정리 5분. 갓 입학한 1학년 학생들에겐 다소 빠듯한 스케줄이지만 1학년 1반 담임인 마루야마 에리코(45)에 따르면, 아이들이 배식을 포함해 급식에 적응하는 데는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다고.

초등생 눈높이에 맞춘 급식 여건

일본 초등학교 급식의 특징은 우선, 담임교사 외에 급식 도우미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교사가 힘들지 않을까?

이에 대해 마루야마 선생은 "배식대를 차리고 국을 떠주는 것 정도이기 때문에 교사가 힘들 건 없다"며 "아이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채점도 하고, 알림장도 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식당급식 보다 좋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1학년 학생들을 위해 입학 초기 한 달 동안 6학년이 도우미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카와 초등학교에서는 학급당 학생이 40명일 때도 도우미를 두지 않았다. 교사 경력 21년의 마루야마 선생에 따르면 자신의 경험상 뜨거운 국 등에 의한 안전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고.

두 번째는 학교 내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3단 왜건이다. 교실급식이 이뤄지는 모든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는데 뜨거운 음식을 포함해 많은 음식을 효율적으로 나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왜건은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고. 엘리베이터 설치가 문제가 된다면 1,2학년 교실을 1층에 배치하는 방법도 있다.

세 번째는 반찬 수가 적다는 점. 아이카와 초등학교는 일주일에 세 번은 밥 메뉴를, 두 번은 빵 메뉴를 주식으로 내놓고, 여기에 뜨거운 수프와 두 가지의 반찬을 내놓는다. 가짓수로 따지자면 밥, 국에 반찬 3가지를 내는 한국에 비해 많지 않다. 그러나 여러 재료를 섞어서 조리하기 때문에 열량이나 영양가는 떨어지지 않는다. 저학년 자율급식을 위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 외 아이들의 키에 맞춰 낮게 제작된 배식대도 주목할 만하다. 또 스테인리스 식판 보다 가벼운 소재를 식기로 사용하는 점도 눈에 띈다.

▲ 우리 밥상 어때요?
ⓒ 장영미
학교급식을 통한 '일석다조'

일본 최초의 학교급식은 1889년 야마가타현의 한 초등학교에서 빈곤 아동에게 주먹밥을 제공한 것 이었다. 이후 아동의 영양개선 및 빈곤아동구제를 위한 급식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다가 전후 미군과 유니세프에 의한 구호급식을 거쳐, 1954년 학교급식법이 제정되면서 체계화됐다.

지난해 7월부터는 '식육기본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일본의 3대 학교 교육목표인 지육(知育), 덕육(德育), 체육(體育)에 더해 이 3가지의 기초가 되고,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요소인 '식육(食育)'을 새롭게 교육목표에 추가한 것이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아이들, 혼자 식사하는 아이들의 증가, 아동 비만 등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정부가 '식 환경' 개선에 발 벗고 나선 것. 아이들의 '먹거리'에 일본의 장래가 걸려있음을 의식한 것이다.

학교급식은 일본의 이런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생산과정 및 식 재료를 이해하고, 맛을 알고, 요리를 하고, 먹고, 감사하는 맘을 갖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도록 하는 것 외에 식사 준비와 뒤처리를 학생들 스스로 함으로써 봉사, 협력 정신을 기르고 노동의 결과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익힐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일본의 이런 모습은 1997년 학교급식 시작 이래 매년 학부모 급식당번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이 밥과 공동체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울 기회를 '보호'라는 미명 하에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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