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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조건, 출근 전 따로 출근 후 따로

근로조건은 고용주 맘대로? 오랜 불황으로 일용직 근로자의 생활고가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이를 악용한 사용자의 횡포로 노동자들이 상처받고 있다.

일용근로자로 산다는 것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어려움 속에 놓인다는 것이다. 문학을 하며 시민기자를 겸하는 본인은 건설목수업을 통해 생활고를 해결해 왔다. 이어지는 임금 체불과 반복되는 일자리 찾기에, 사람에 실망하고 노동구조에 좌절하며 일용직 생활에 신물을 느껴 이제 그만 안정을 찾고 싶어 정규직 자리를 찾으려고 구직활동을 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되어 내 앞에 놓였다.

인터넷과 정보지를 뒤지기를 하루 일과로 삼았지만 정규직 구하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해서 겨우 면접을 보게 되었고 임금이 턱없이 적었지만 취업을 결정했다. 가족부양자라면 생활하기에 부족한 그런 임금이었다.

그러나 막상 출근했더니 면접 시 없었던 한 달 견습을 거치라는 것. 게다가 견습 시절엔 임금의 70~80%만 준다고 한다. 경력기술자에게 견습이라니?

그러나 그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사측이 내건 또 하나의 조건은 한 달간 출퇴근. 면접 후 전화로 입사를 통보받을 때는 기숙사 입숙이 약속돼 있었는데, 사규에 의해 수습기간에는 입숙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거부하기엔 정규직 취업이 너무도 절박했지만, 결국 하루 일하고 포기해야 했다.

사용자의 일방적 작업 취소, 교통비도 못 받아

정규직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고자 관련 협회 홈페이지에 정규직 및 일용직 구직 광고를 냈다. 가끔 문의가 왔지만 대부분 가진 기술과 거리가 있거나, 작업조건이 아주 열악한 경우였다. 어떤 곳은 기숙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허름한 가건물이어서 두툼한 겨울점퍼를 입어도 추위가 느껴질 만큼 열악한 곳도 있었다.

그렇게 현실에 좌절하며 나는 임금을 낮추기에 이르렀다. 그런 중에 전화 한 통이 왔다. 일용직 제의였다. 일이 꾸준히 있으니 일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비록 일용직이지만 수락했다. 3일을 기다려 출근한 그날은 일요일. 고속도로를 거치며 두 시간 동안 달렸다. 고용주가 지정한 현장에 도착해 지시에 따라 전화를 했다.

그러나 사용자는 일이 취소됐으니 돌아가고 다음에 보자고 했다. 왜 미리 연락하지 않았냐고 항의하자 고용주는 '잊었다'고 말했다. 그뿐이었다. 워낙 일상적인 일이라 화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었다. 새벽 밥을 먹고 먼 거리를 달려갔는데 지속적 일은커녕 기름값도 보상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안타깝고 화가 났다.

이런 경우 건설현장의 일반적 관행은 출근시나 오전 근무시 일당의 50%를 받는다. 오후가 넘으면 하루를 받는다. 다만 그것은 근거리 기준이었고, 이 경우는 원거리 이동에 따른 교통비와 수고를 생각하면 당연히 일당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용자에게 전화를 했다. 사용자 사정에 의한 '데마'(작업취소)이므로 하루 일당을 달라고 했더니 무슨 하루치냐며 돌아오는 것은 '비양심자'란 비난과 욕설이 이어졌다.

욕설까지 듣고 나는 고발을 고지했다. 맘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 봐야 소용없고, 한 만큼 되돌려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고용자는 전화를 끊었다.

빼앗긴 노동력과 모독에 대해 보상받고 싶었고, 이런 일을 그냥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내가 어떤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강자에 의한 일방적 관행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이름 없는 구인란을 '캡처'한 뒤 인터넷을 통해 노동부 지청에 민원을 냈다. 그리고 기다림…. 그러나 사용자 측에서도 노동부에서도 전화 한 통 없다. 5일 후 민원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일당은커녕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고 처리가 완료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은 노동부 의정부지청의 답변이다.

노동부 의정부지청의 민원완료 답변

"귀하가 인터넷 구인광고를 보고 안산에서 일산까지 갔더니 일이 취소되었다며 일자리를 제공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 구인업체에 유선으로 문의한 결과, 자재가 도착하지 않아 일을 주지 못했다고 하며 구인업체에서도 미안해서 교통비라고 오만 원을 주겠다고 하니 하루 일당 십오만 원을 달라고 하여 서로 말다툼하면서 욕설도 오가고 한 내용 같습니다.

구인업체의 광고 게재내용을 살펴보아도 특별히 허위 구인광고로 단정할 만한 것이 없고 귀하가 지적한 구인자의 이름이 게시되지 않은 부분에는 인터넷상 ID가 대신 등록되어 있습니다.

위 업체에 대하여 유선상으로 일단은 허위광고의 범위 등을 설명하고 구인자 이름이 게재되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는 시정 조치하였습니다. 차후에도 이런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을 시에는 행정지도 등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며, 사법기관(관할 경찰서 및 검찰청)에 형사 고발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이처럼 하루 일당을 요구하는 일용직 노동자 본인에게 욕설까지 퍼붓던 이름 없는 고용자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더욱이 "오만 원 주겠다고…"라는 부분은 피고발인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노동부 담당자는 고발인인 본인에게 반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해 버렸다.

일용직은 노동행정 사각지대

위와 같은 일당 미지급 사례는 흔하다. 그나마 최소한의 권리가 지켜지는 곳은 대형 현장, 근로감독관이나 행정의 손길이 자주 미치는 경우다.

이 경우처럼 그렇지 못한 소규모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오야'(막노동시장에서 일종의 '소사장'을 일컫는 말) 마음이다. 우리나라 건설 노동시장은 현장직의 경우 거의 90% 이상이 일용직이다. 그러다 보니 단체교섭이란 꿈도 못 꾼다.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조차 힘들다. 하청에 도급, 도급에 부분 도급으로 발주되어 채용이 이루어지다 보니 근로자가 근로자를 채용하는 방식이 되어 버린다.

건설노동시장이 구조가 사용자에 의해 사용자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은 최악의 노동층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을 만든 것은 행정의 무관심과 법률적 미비, 기존 노조의 무관심, 건설노동자의 의식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정부는 물론이고 건설노동자 스스로 근시안적 태도를 버리고 미래지향적 권리 찾기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참여 정부가 사회양극화 해소를 외치지만, 지금의 건설노동시장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양극화 해소는 요원하며 산중의 메아리 같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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