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정동영 리더십의 최대 승부처인 지방선거가 두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인물·정책·구도 등 어느 것 하나 가시화된 게 없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금이 최대 위기다."

정동영 의장이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던진 말이다.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당대회를 치르고, 새 지도부를 구성해 5·31 지방선거로 가는 중에" 닥친 위기라며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에 처한 여당의 곤혹스러움을 피력했다.

열린우리당의 위기론은 정동영 체제하에서도 그치지 않고 있다. 전당대회 전후 지지율의 변화가 없고,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당 전략통들 역시 "글쎄"라며 이렇다 할 반전 카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요 당직을 지낸 한 의원은 "파도가 밀려올 때는 맞아야 한다, 이벤트성 정치로 모면하려다간 더 크게 다친다"며 "이 총리 국면이 정리되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로 달려야 하나, '몽골기병'의 피로감

2·18 전당대회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정치를 펼쳐온 정 의장에겐 지난 11일 주말이 첫 휴일. 대구 인혁당 묘소,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경기도 제암리 사건 희생자 묘소에 이어 주말에 '역사의 현장' 방문 차원에서 독도 방문도 예정되었으나 날씨탓에 취소된 덕이다.

의장 비서실에선 "전화기도 꺼놓고 하루 쉬시라"고 휴식을 강권했다. 한 비서실 관계자는 "당의장의 호흡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너무 조급하게 달려왔다"고 말했다.

"비로소 실세대표가 돌아왔다"는 평가 속에 출발한 정동영 체제가 이번 주로 한 달을 맞는다. 그리고 정동영 리더십의 최대 승부처인 지방선거가 두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인물·정책·구도 등 어느 것 하나 가시화된 게 없다. 총리 사퇴를 둘러싸고 당·청 관계조차 불안하다.

[정책] 5대 양극화 해소를 앞세워 현장을 누볐고 당 차원의 양극화 해소 특위도 구성했지만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개혁법안인 금융산업구조개선법과 민생법안인 비정규직보호법안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다음 회기로 미뤄졌다.

정부여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8·31 후속 대책도 아직 시장에서 실효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건설교통부의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 요건의 오락가락 정책은 서민을 두 번 울렸다고 비난을 크게 샀다. 당으로선 곤혹스런 처지였으나 전여옥 의원의 'DJ 치매' 발언 정국과 맞물리면서 살짝 비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서민과 중산층에 어필한 뭔가가 아직 없다.

"고건 만남에서 각이라도 세웠어야" 지적도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고건전총리는 12일 낮 서울시내 한 중식당에서 만나 정국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구도] 구도는 먹히고 있나. 정 의장은 시종일관 '수구삼각편대'에 맞선 미래·평화·개혁 세력의 연대를 설파해 왔다. 요지는 '반(反)한나라당'이다. 당선 직후 정 의장은 대구로 가 인혁당 묘지를 찾는 등 박근혜 대표의 심장부를 겨냥하면서 전여옥·최연희 사태와 관련 박 대표를 압박하고, 방일외교를 비판했지만 소구력은 크게 없었다.

반한나라당 연대를 가시화할 수 있었던 고건 전 총리와의 만남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지방선거 연대무산" 이상, 이하도 없었다. 전당대회를 통해 형성된 '고건 연대론'에 의해 떠밀려 나갔다는 인상을 남겼다.

애초 기대할 게 없는 만남이었다지만 '각'이라도 분명히 세워 고건 전 총리의 기회주의성을 드러냈어야 하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의장쪽의 한 측근은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만남인데 나중을 위해 분명한 메시지는 남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고 전 총리와 '주파수'를 맞춰온 김근태 최고위원측에는 빌미를 줬다. 우원식 의원은 "선거는 구도인데 범양심세력 연대론을 간과하면 나중에 큰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고 우회적으로 경고했고, 정봉주 의원은 "지방선거라는 제한된 틀로 연대범위를 좁히는 오류를 범한 것 같다"며 비판했다.

[인물] "인물 카드도 다 나온 것 아니냐". 여러 면에서 수세에 있는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는 건 인물 중심의 선거다. 외부인사 영입과 장관 발탁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주요 전략지 후보군은 거의 가시화된 상태. 강금실 전 장관, 엄기영 MBC 앵커 등 스타급 인사 영입을 둘러싼 이슈도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그들의 '선언'만 남았다.

여러 악재 속에 '강금실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다. 여당은 단지 '강금실 개인'의 영입이 아닌 국민의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 열린우리당의 체질 개선 등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전체 판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강금실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불만도 터져 나온다. 정 의장의 한 측근의원은 "강 장관 입장을 존중하지만 당과 내밀한 접촉의 끈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손놓고 기다리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정 의장쪽에선 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몇몇 인사를 '파견'하기도 했지만 "공기가 워낙 달라 발걸음을 돌렸다"는 후문이다.

자신의 거취와 관련 "3월중에 말씀 드리겠다"고 밝힌 강 전 장관의 '선언'에 따라 정 의장의 입지도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선지 정 의장쪽에선 진대제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 여지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당 따로 청 따로' 시점 앞당겨지나

▲ 지난 2월 마련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신임지도부 만찬 회동에 앞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노 대통령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 청와대 홈페이지
[당·청]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당·청 관계도 이해찬 총리의 사퇴 여부에 따라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는 일단 총리 골프 파문 초기, 전체 의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는 등 내부단속에는 성공했다. 여느 때 같았으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여권의 내부분열로 상황은 더 복잡해졌겠지만 지도부는 차분히 여론을 등에 업은 채 '사퇴 불가피론'으로 정리, 청와대에 건의할 예정이다.

전략·기획통으로 알려진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정동영 체제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노 대통령의 결단과 구상이다. 총리직 사퇴 문제는 노 대통령의 하반기 국정운영과 관련, 향후 당·청 관계의 중대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정 의장쪽에선 ▲총리의 자진사퇴 ▲노 대통령의 수용 ▲당에서 추천한 인사로 신임 총리 임명이라는 수순을 '희망'하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친노'쪽 의원들은 지도부의 '사퇴 불가피론'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의정연구센터 소속의 한 의원은 "의원총회 한 번 열지 않았다"며 의견수렴 과정에 불만을 드러냈고, 또 다른 의원은 "개인적으로 총리 사퇴가 맞다는 입장이지만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에 왜 당이 앞서 입장을 전달하냐"고 꼬집었다.

이광재 전략기획위원장은 "여러 여론조사를 취합한 결과 사퇴 의견은 50%가 조금 넘는 정도로 나오고 있고,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노 대통령이 설사 '총리 사퇴'를 수용한다고 해도 '당 중심론'과는 무관하다는 게 친노쪽 시각이다. "지방선거는 내 선거가 아니"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도 있었듯 거국내각 구성과 탈당에 준하는 선택이 있을 거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차제에 '당 따로 청 따로'의 시점이 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정 의장의 고민은 총리 사퇴 '이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여러 악재와 부담이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상황, 정 의장이 난이도가 높은 이 '골프정국'을 돌파하고 '새 출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