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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항만'에 넘어갈 '뻔' 했던 볼티모어 부두.
'두바이항만'에 넘어갈 '뻔' 했던 볼티모어 부두. ⓒ PBS 화면 캡처
1라운드는 미국민과 의회의 승리였다.

미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부시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는 우방일 뿐 아니라 미국의 대테러 전쟁 협력국"이라면서 "만일 이 계약이 정말 미국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절대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또 일부 전문가들도 "이 계약이 미국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거들었지만 이미 심하게 동요한 민심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신났다. 민주당은 이제까지 '국가 안보'를 내세워 정권안정을 꾀한 부시를 겨냥해 역으로 '국가안보'를 강조했다. 항만 계약이 미국 안보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시 정부의 의견에 "이 계약으로 미국 항만이 더 안전해진다는 보장도 없다"라고 맞받아친 것. 9ㆍ11 사태 가담자 두 명을 배출한 아랍에미리트연합국에 항만 운영을 맡기면 앞으로 테러 단체가 미국 주요 항만 시설에 접근하기가 쉬워질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논지다.

민주당의 이같은 논리에 공화당 의원 다수도 가세했다.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부시 대통령과 정치적 여정을 달리한 이유는 올 11월 중간선거 때문. 의회 의원들 입장에서는 내년에도 의회에 붙어있으려면 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항만 계약에 항의하는 의견이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의회 의원들에게 봇물처럼 밀려들었다고 한다. 부시 행정부가 진행하던 항만 계약에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마저도 적극 공세를 펼치게 된 까닭이 여기 있다.

의회는 이 계약을 저지하려는 실력행사에 들어갔고, 부시 대통령은 비토를 행사하겠다고 맞섰다. 이 가운데 가뜩이 하락세를 그리던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더 추락했다.

그러던 중 3월 9일, 깜짝 반전이 일어났다. '두바이항만'이 계약에서 손을 떼고 항만운영권을 '미국기관'에 '양도'하겠다고 발표한 것. 백악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의회는 성공을 축하했다. 이렇게 한 달여간 미국을 뜨겁게 달구어온 이슈도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바로 다음날인 3월 10일, 미국 여론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대체 '두바이항만'이 말한 '양도'란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국기관'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등 더 많은 의문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부분은 이 사안을 통해 드러난 현재 미국의 자화상, 그리고 이 사건의 여파가 미국의 미래에 드리울 그림자다.

중동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단 히스테리

우선 이 항만 계약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진 중동에 대한 불신감이 뚜렷이 드러났다. 2월 27일 발표된 미국 CBS 뉴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아랍에미리트 회사가 미국 항만을 운영하는 것에 반대했다. 또 <뉴욕타임스>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데이비드 브룩스는 3월 5일자에 "미국인들은 폐쇄적이지 않다, 단지 중동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라는 요지의 칼럼을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두바이항만'이 계약을 포기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한 3월 9일 당일에는 이 사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3월 10일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의회를 비난하면서 이번 사건의 기저에 중동을 싫어하는 인종 차별주의가 깔려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방국을 배척하면서 미국이 고립주의(isolationism)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나타냈다.

이제까지 다른 나라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국가안보'를 외치던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고립주의를 염려하고 나선 것에서 미국 언론은 부시 정부의 대 중동 노선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3월 13일자 <뉴욕타임스>는 "부시 정부가 2기에 들어서서 1기 때와는 다르게 경제 및 안보 등 다방면으로 새로운 노정, 즉 국제관계를 개선(international engagement)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전했다. 부시 정부는 최근 미국 내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경제 협정을 체결했고 불법 이민자들에게 관대한 이민 법안을 관철하려 노력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변화가 너무 늦게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번 항만 운영을 둘러싸고 일어난 국민 여론에서 엿볼 수 있듯이 미국인들은 아직도 테러의 악몽에 사로잡혀 본능적으로 중동이라면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제껏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정치적 이득을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미국민들에게 안보 노이로제를 부추겨온 부시 정부의 자업자득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 역시 "그동안 방어벽을 쌓고 적을 섬멸하는데 치중해온 부시 대통령이 외교정책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발목 잡은 부시 정부의 '국가안보' 논리

언론은 이번 사건이 불러올 장기적 파장에 대해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신자유주의 신봉자로 자유무역을 전 세계에 설파하며 다른 나라에 무역 장벽 철폐를 부르짖는 미국이 정작 자신들의 문은 닫아거는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

공영텔레비전(PBS)에 나온 골드만삭스의 로버트 호매츠는 이번 항만 건을 계기로 다른 나라들이 달러화를 사지 않는 등 미국 경제에 보복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당장 중동 기업이 손을 뗀다고 해서 미국인들의 국가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글로벌화된 세계정세 속에서 미국도 많은 산업분야가 이미 국제화됐다. 항만 사업이 대표적인 예. 우수한 외국 항만업체들이 지난 몇십 년간 미국 항만산업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는 사이 미국 자체 기업을 대부분 자연도태했다. 이런 마당에 중동기업이 운영권을 미국기업에 넘기겠다고 해도 유수한 외국기업을 대체할만한 규모의 미국기업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게다가 미국 항만은 2001년 9ㆍ11 이후 더 안전해지지 않았다. 미국 항만으로 들어오는 전체 화물 중 10%만이 별도 검색을 거치며 단 1%만이 내용물 육안 검사를 받는 실정이다. 3월 10일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PR)은 최근 공개된 정부 보고서를 보도했는데, 뉴욕과 뉴저지 항만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사 9천 명의 신원을 조회한 결과 트럭 운전사 절반가량이 전과를 갖고 있다고 드러났다. 5백 명은 아예 가짜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부시 정부의 대중동정책과 미국인들의 대중동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표면적으로 안보논리와 경제논리가 충돌한 이번 경우, 미국인들은 압도적으로 안보를 택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항만 운영권 계약의 합리성과 정당성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들끓는 민심과 여론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한편, 이번 사건을 두고 <타임>의 마이클 더피 기자는 "백악관의 안테나가 부러졌다"고 평했다. 그만큼 현재 부시 행정부가 미국인들의 일반 민심과 유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래저래 부시 정부에겐 위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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