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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라 푸가> 게임 파크의 조감도. 게이머가 마치 온라인 아케이드게임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동선이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라 푸가> 게임 파크의 조감도. 게이머가 마치 온라인 아케이드게임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동선이 구성되어 있다. ⓒ Negone
원형 해치를 열자 좁다란 미로가 나타나고 언덕과 계곡을 넘어 이윽고 질문의 방에 도착한다. 컴퓨터는 게이머에게 퀴즈를 내고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맞추면 게이머는 수천 개의 공으로 가득한 방으로 안내된다. 그러나 컴퓨터와의 퀴즈게임에서 패한 게이머의 단말기에는 '게임 오버'라는 메시지가 반짝거린다.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는 진부하도록 익숙한 전형적인 게임 공식이지만 이 게이머는 지금 컴퓨터 가상공간 대신 현실공간인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게임 파크에서 헐떡거리며 뛰어다니는 중이다. 바로 스페인의 벤처기업 '네고네'가 새로이 선보인 현실공간의 아케이드 게임 <라 푸가(La Fuga: 탈출)>다.

온라인 게임공간이나 인터넷 홈페이지 같은 사이버세상이 당초 현실공간의 물리법칙을 따라 설계되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거꾸로 현실공간이 가상공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따라하는 때가 온 것.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만났다

가상공간의 비주얼과 느낌이 그대로 이식된 이 곳 <라 푸가>에서 게이머들은 마우스 버튼을 끌어오는 대신 두 발과 두 팔을 이용해 지극히 사이버틱한 현실 공간 속의 아케이드를 뛰어다닌다.

게이머가 손목에 찬 무선단말기에는 무선칩이 부착되어 게이머의 현재 위치를 메인 서버에 보고하며, 메인 서버는 이 정보에 따라 각 게임 단계별로 방의 문을 조작하거나 퀴즈를 내 다음 단계로의 이동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네고네는 스페인 현지에서 누리고 있는 인기에 힘 입어 <라 푸가>를 곧 뉴욕의 맨하탄에 소개할 계획이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60여 개 도시에 이 현실공간의 아케이드 게임을 보급할 예정이라고 하니 온라인게임 천국 한국에서도 <라 푸가>를 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왕년에 인기있던 <쥬라기공원> 스타일의 텍스트 기반 머드게임을 휴대전화에 구현한 무선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자신의 사이버 게임 아이템을 심야에 탈취해 간 적수를 공항까지 쫓아가며 추격전을 벌여 되찾아 온 게이머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 위치기반형(LBS) 게임의 중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라 푸가>같은 게임의 출현이 아니더라도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이 융합하리라는 가설은 유비쿼터스 시대의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기술의 특성상 단말기의 위치정보를 사업자가 파악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융합을 이루어내는 핵심 매개가 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라 푸가> 게임을 즐기는 스페인의 게이머들. 손목에 찬 무선단말기가 게임진행을 안내하고 게이머의 현재위치를 서버에 전송한다.
<라 푸가> 게임을 즐기는 스페인의 게이머들. 손목에 찬 무선단말기가 게임진행을 안내하고 게이머의 현재위치를 서버에 전송한다. ⓒ Negone
휴대폰을 들고 걸어다니는 무선 마우스

<라 푸가> 게이머들은 칩 단말기를 통해 게임파크 내의 위치정보를 서버에 보고하지만 휴대폰 사용자들은 도심을 이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현재의 위치정보를 이동통신회사의 서버에 전송한다.

심부름센터의 불법위치추적에 자주 악용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친구찾기서비스'가 바로 그것이다. 또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도입한 PDA를 이용한 전시물자동안내시스템도 비슷한 원리를 활용했다. 이 경우 무선단말기를 휴대한 사용자는 마치 걸어 다니는 무선마우스로 스스로를 탈바꿈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든 사용자의 위치를 송신해주는 단말기와 이를 통해 가상공간의 정보를 사용자의 현실공간과 겹치도록 적재적소에 송신해 주는 것이 핵심 요소다.

미국의 통신사업자 보잉고의 대표 스카이 데이톤이 상상하고 있는 핵심 서비스 중 하나는 바로 이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융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극장·놀이공원·레스토랑·카페 등 젊은이들이 자주 출입하는 장소에 휴대전화를 소지한 사용자가 접근하면 이동통신사업자의 서버는 각 장소에 대한 기본정보를 휴대폰 스크린에 띄워준다. 사용자는 현장에서 업소에 대한 사용기나 카메라폰으로 찍은 즉석사진을 남길 수 있고, 이전 사용자가 남긴 사용기 역시 현장에서 검색할 수 있게 한다. 식당 문에 화이트보드를 걸어두고 손님들이 메모를 남기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얻는 것이다.

스팸처럼 시도 때도 없이 송신하지 않고 꼭 필요한 장소와 시간, 그리고 경우에만 관련정보를 발신한다면 이같은 '위치연동형 지능서비스'는 광고가 아니라 요긴한 정보로 환생한다. 스카이 데이톤이 상상하는 이같은 서비스는 바로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융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내릴 정거장, 휴대폰이 먼저 알고 깨워드려요

지하철 통근자를 겨냥한 '깨우미 서비스' 같은 아이디어도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지하철에서 졸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쳐 버리는 경험이 있다. 만약 휴대폰을 통해 이동통신회사 서버에 저장된 지하철 노선도에 자신의 위치정보를 송신하도록 설정하고 내릴 정거장을 미리 예약해 두면 지하철이 해당 정거장에 접근할 때 자동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시나리오가 바로 그것이다.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결합이 꼭 게임같은 엔터테인먼트에만 적용될 필요는 없다는 좋은 사례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뭐가 대수겠는가? 수익성이 검증된 가장 확실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이 게임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서울의 지하철 노선 전체를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이 결합한 한국판 <라 푸가>의 거대한 게임공간으로 변신시키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휴대폰 스크린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지하철 열차 내부와 수백 여개에 달하는 역사 곳곳에서 한국의 젊은 게이머 수천여명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숨바꼭질 게임을 벌이고, 서로 사이버 아이템 쟁탈전을 벌이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도 터무니 없는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혼성공간을 사는 사이버 폐인은 인터넷 속 가상공간이 아니라 현실공간으로 뛰쳐나올 것이 분명하니 부모세대는 적어도 자녀들의 운동부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도 한 가닥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LBS(Location Based Service) – 위치기반 서비스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알고 그에 맞추어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거실의 TV로 드라마를 보다 안방으로 들어오면 방금 보던 드라마 역시 안방의 TV로 따라 들어 온다. 외출을 한다면 휴대전화의 스크린으로 드라마 컨텐츠를 자동으로 전환해 송신해 준다.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LBS 기술이 전제가 되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현재 구현된 LBS 기술은 크게 이동전화 회사의 기지국(Cell Network) 기반 기술과 GPS 기술로 나뉠 수 있다.

이동전화 서비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항상 가입자의 위치, 즉 휴대전화 단말기의 위치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기지국 3곳과 휴대전화의 전파발신지를 삼각함수로 계산하면 상당한 정밀도로 가입자의 현재위치를 측정할 수 있다. 특히 도심같이 촘촘하게 안테나가 설치된 곳에서는 거의 블록 단위로 정밀도가 높아진다.

차량위성항법장치는 위성에서 발사하는 GPS 신호를 이용해 가입자의 현재위치를 측정한다. 이 경우 이동전화기지국을 이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정밀한 수준으로 위치정보를 파악할 수 있지만 GPS 단말기 소유자가 건물 내부로 들어갈 경우 위성신호가 닿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블루투스나 Wi-Fi 액세스 포인트 등도 사용자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집안의 각종 전자장비에 블루투스 송수신기를 부착한다면 실내에서도 사용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전파를 발생시키면서 네트워크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모든 전자장치는 이론적으로 위치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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