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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군은 소위 '뚜벅이'다. 잠실의 집에서 신촌의 학교까지 지하철로 통학한다. 지형지물에 익숙한 두 곳의 길거리를 제외하면 B군의 머리 속에서 서울의 나머지 공간은 그저 잠실 역과 신촌 역 사이에 존재하는 지하철 노선도에 불과하다. 서울이란 도시가 그에게 사실 상 가상공간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어렵다는 취업관문을 뚫고 여의도의 중견기업에 취업한 B군은 큰 맘 먹고 차를 뽑는다. 지하철 대신 이제 운전을 해야 할 B군에게 서울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그간 땅 밑으로만 다니느라 관심 밖이었던 간선도로를 지도에서 새로이 발견하고 아침 저녁으로 올림픽 대로를 달리며 서울에 한강이란 멋진 곳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주차장 없는 곳이면 약속도 피하고 쇼핑도 가지 않게 된 B군에게 서울은 이제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공간마저 그것을 접하는 창이 무엇인지에 따라 180도 달리 보이는 법이다. 따라서 지하철과 자동차는 B군이 인지하는 공간의 감각을 좌우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보느냐에 따라 공간에 대한 느낌 역시 진화한다. 먼저 현실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증명한 것처럼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공간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윽고 인류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매체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사이버 스페이스, 즉 가상공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감각을 체득하게 된다. 물론 사람들은 기존에 익숙했던 습관대로 처음에는 현실공간을 재현하는 수단으로 인터넷을 받아들였다. 캐나다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캐나다 정부는 한 마을을 선택해 초고속인터넷을 가설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이후 어떤 변화를 보이는 지 관찰했다.

하지만 결과는 당초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인터넷을 손에 쥔 사람들은 마을사람과 대화하는 대신 지리적 공간을 넘어 인터넷의 광대한 바다에 뛰어들었고 세계 곳곳의 낯선 사람들과 전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기 시작한다. 인터넷이 현실공간에서는 전혀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글로벌 커뮤니티 즉, 사이버 스페이스를 새로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인터넷의 본격적인 도입 이후 지난 10여 년 세상은 온통 이 새로운 신천지인 가상공간에 대한 환호와 경이로 들끓었고 몇 차례 닷컴 붕괴를 겪고 난 지금도 그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미국이 현실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사이버 스페이스의 가능성에 열광한 것은 비행기를 타고도 무려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커다란 국토 탓도 크다. 지리적 거리로 교류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미국인들에게 사이버 스페이스는 현실공간과는 전혀 다른 제 3의 가상공간으로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인터넷이라도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화 비율이 70% 이르는 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한 때 주말 음식점 예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한국을 휩쓸었던 아이러브스쿨 열풍으로 입증된 소위 '번개' 현상이다. 미국에도 Classmate.com이라는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가 있지만 거대한 국토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동창들이 느닷없는 게시판 공지 한 번으로 주말 저녁 번개모임을 가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의 동창회 사이트는 어쩔 수 없이 사이버 공간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현상으로 제한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한국의 사이버 동창회나 수 십 만개의 카페들은 예외 없이 번개모임을 수반한다. 수도권이라면 1시간 내외면 만날 수 있고 지방도시라도 크게 마음 먹으면 주말 번개 정도는 언제라도 가능하다. 번개가 있으면 반드시 후기가 따르게 마련이고 모임에 참석하지 못 한 사람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번개 참여파들의 대화에서 소외되기 시작한다. 결국 게시판의 주도권을 번개 참여파들이 쥐게 되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현실공간의 상호작용이 가상공간의 운영과 형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 광화문의 탄핵반대집회는 역동적인 '혼성공간'으로 진화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 권우성
신세대 건축가 스티븐 페렐라(Stephen Perrella)가 그의 책 < Hyper Surface Architecture >에서 주장한 혼성공간(Hyper Surface)의 개념은 바로 이 번개모임효과에서 유추할 수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체험을 통해 형성된 공간감각이 현실공간 위로 겹치는 현상(Superimpose)이 벌어지고 현실공간의 경험이 다시 가상공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현실도 가상도 아닌 제3의 공간감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필자는 스티븐 페렐라의 선구적인 개념을 차용해 사이버 스페이스 이후의 세상을 하이퍼 서피스라 칭하고자 한다. 사이버 스페이스를 가상공간이라 번역한 것처럼 하이퍼 서피스는 혼성공간으로 번역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성공간은 어떤 공간감각을 우리에게 심어줄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혼성공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먼저 진정한 혼성공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이 가상공간을 탄생시킨 것처럼 유비쿼터스 환경은 곧 혼성공간을 필연적으로 탄생시킨다.

혼성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차세대 휴대단말기를 지닌 B군이 점심시간에 회사근처의 식당을 찾아 나선다. 한 식당에 다가가자 위치정보서비스에 가입한 그의 단말기 스크린에 식당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와 식당을 이용한 사람들이 남긴 다양한 댓 글들이 즉시 떠오른다. 잠깐 일별만으로 B군은 그 식당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식사를 마친 B군 역시 소감을 현장에서 즉시 댓글로 남기거나 아니면 별 점을 줄 수 있다. 오로지 장소와 시간과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작동되는 가상 게시판이지만 마치 식당 문 앞에 달린 게시판에 손님들이 포스트 잇으로 소감을 남기는 것과 다름 없는 효과를 거둔다. 혼성공간이다.

지난 3월의 탄핵정국으로 돌아가 보자. 탄핵반대진영에서는 광화문 4거리에서 대규모 시민집회를 열었고 거의 6시간에 걸쳐 축제를 방불케 하는 행사를 치렀다. 오마이뉴스 역시 현장을 생중계했지만 무려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시청 앞까지 물밀 듯 밀려들면서 대열의 후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연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결국 어이없게도 현장에 있는 사람보다 오히려 오마이뉴스로 현장생중계를 지켜 본 사람이 행사의 전모를 더 쉽게 파악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만약 오마이뉴스가 위치정보를 이용해 현장에 모인 20만 명의 휴대폰을 타깃으로 삼아 무대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실시간 문자생중계 했다면 참여자들은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집회를 즐길 수도 있었다. 이것은 야구장을 찾은 프로야구 팬이 라디오를 들고 와 전문해설자의 생중계와 함께 경기를 즐기는 것과 비견될 수 있다. 기술과 인프라가 있는데도 아쉽게도 실현시키지 못한 혼성공간의 체험이다.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수많은 여행정보가 올라온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들 역시 여행기나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한 기사를 즐겨 올리는 편이다. 오마이뉴스가 이 기사들을 장소, 시간, 계절에 따라 바코드 처리해 저장하고 위치정보 서비스에 가입한 단말기를 휴대한 독자가 그 지역을 여행한다면 시민기자의 관련기사가 스크린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지능형 서비스를 상상할 수 있다.

독자는 시민기자의 여행기에 현장에서 바로 답 글을 달아 막상 와서 본 그만의 소감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체험이 사건이 벌어지는 그 현장에서 융합되어 혼성공간이 구현되는 순간이다.

사이버 공간이 콘텐츠 공급업자와 소비자의 주종관계가 아니라 네티즌들의 자발적 상호작용으로 풍부해 졌듯이 혼성공간 역시 통신업자의 일방적 정보서비스가 아니라 네티즌들이 현실과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들만의 의견을 교류하는 다이나믹한 장소로서 기능할 때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공간, 가상공간... 이제 혼성공간의 시대다. 유비쿼터스 환경이라는 발음도 어려운 신종 테크놀러지에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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