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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이 지나면서 확연히 따사로워진 봄날입니다. 경남 합천군 적중면의 너른 들판이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옴작거리는 것 같고, 새움들이 돋아나오려는 듯, 대지가 가려워집니다.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의 청춘들도 새 학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따스한 봄기운에 마냥 들뜨고 아이들의 표정에 봄빛이 스며 환하게 보입니다.

▲ 전교생 백 명의 이불과 요가 널려 있습니다. 다 다른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 정일관

▲ 공중에도 이불과 요가 널려 있습니다. 어떤 아이의 몸을 덮어주었을 이불이 햇볕에 달구어지고 있습니다.
ⓒ 정일관
그러나 봄이 아무리 좋아도 생활을 놓아버릴 수가 없지요. 원경고등학교 아이들은 모두 3월 22일, 오전 1교시 수업을 할애하여 한 달에 한 번, 월례행사인 이불과 요 널기를 하였습니다. 마땅한 건조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학교 건물 옥상에 임시로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는 테니스장에다 줄을 이어서 이불을 널게 하였습니다.

▲ 줄 위에 이어서 널어놓은 이부자리를 보면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연대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 정일관

▲ 봄빛과 봄기운이 이불 깊숙이 스며들어가 아이들을 따스하게 감싸주겠지요.
ⓒ 정일관
아이들은 먼저 기숙사 방 담당 선생님과 함께 방을 깨끗하게 쓸고 닦은 다음 각자의 장롱을 정리하였습니다. 물론 선생님들은 시범을 보이면서 구체적인 청소 지도를 하여 청소가 곧 공부이고 학습임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힘을 합쳐 청소 공부하느라 기숙사가 떠들썩해졌습니다.

▲ 베개도 뒤질세라 자리를 잡고 거풍을 하고 있습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적중 들판에 봄이 들어와 있습니다.
ⓒ 정일관

▲ 학교를 둘러싼 자연석 울타리와 나무 의자 위에도 이불을 널었습니다.
ⓒ 정일관
청소를 마친 아이들은 이불과 요를 몸에 칭칭 감고 줄줄이 테니스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이불과 요를 촘촘히 널고, 베개도 자리를 보아서 널어 햇볕을 받게 하였습니다. 학교 주변의 자연석 울타리와 벤치에도 이불과 요를 척척 내다 널었습니다.

줄에 따라 아이들이 널어놓은 이불과 요는 갖가지의 모양과 색들로 어우러져서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도 같은 이불과 요는 없었지만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다 다른 것이 아이들인가 봅니다.

▲ 학교 교문 옆 팽나무 아래에서 바라본 테니스장. 이불과 요가 테니스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정일관
따스하지만 병원균(病原菌)들에게는 치명적인 햇볕이 이불과 요, 베개를 훈훈하게 달구는 사이, 아이들은 각자 정해진 교육활동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특성화교과 영화이해반 아이들과 학교 근처의 체육공원으로 가서 봄이 들어온 학교와 들판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체육공원에서 이불이 널려있는 학교 테니스장을 보니 누가 뭐라 해도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생활교육이 필수적이며, 생활상의 자력을 얻는 것이야말로 많은 공부 중에서 으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불과 요를 몸에 감고 학교 옥상에서 내려오는 아이.
ⓒ 정일관

▲ 학교에 입학하여 맨처음 양말 손빨래부터 배운 아이들이 자신의 이불을 내다 널고 다시 거두어가면서 생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깨쳐나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 정일관
수업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이불과 요를 몸에 감거나 걸치거나 개어서 안고 기숙사 방으로 가져갔습니다. 밤에 아이들은 하루 온종일 바깥바람 쐬며 따스한 햇살이 스민 요를 깔고 이불을 덮어 푸근하게 잠을 이루겠지요.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력을 세워나갈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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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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